[김길웅의 借古述今] 136. 친척은 옷 위의 바람이다

* 괸당 : 권당 곧 친척
* 우잇 : 위의
* 보름인다 : 바람(風)이다
 
‘괸당’은 권당(眷黨)의 제주 방언이다. 제주에서는 표준어인 권당보다 괸당 쪽이 흔히 쓰인다.
 
바닥이 좁은 섬인데다, 예전 농경사회에서 친척들이 한 마을 혹은 한 동네에 모여 살았다. 긴 골목에 서너 집이 몇 촌 형제들이 집을 짓고 들어서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다 보니 시골 한 동네 열 몇 가구가 모두 한 집안이 씨족공동체를 이루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 원형이 이른바 집성촌(集姓村)이다.
 
당연히 좋은 점이 많았다. 큰 행사로 일 년에 한 번 하는 초가집 지붕을 새로 이거나, 봄에 밭갈이 가을 들어 수확할 때 그야말로 상부상조했다. 수눌음과 품앗이가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다. 그렇게 정분이 돈독했다.
 
그뿐이랴. 어느 한 집에 경조사가 나면 온 동네 친척들이 모여들어 제 일처럼 맡아 했다. 특히 장례식장이 없던 옛날에는 집안에 상이 나면 장례를 치를 때까지 해야 할 그 많은 치다꺼리를 친척들이 알아서 척척 해냈다. 남남이 아닌 친척이라 일을 함에 성의를 다했음은 물론이다. 사람 사이에 따스한 정이 오가니 온 집안이 화기애애했다.
 
나는 실제 그런 분위기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동네에 선친 함자 ‘永’자 어르신이 모두 동행(同行)이라 밖에서 보기에도 다들 형제간으로 인식하게 됐다. 크면서 6촌간인 걸 알아가게 됐다. 아버지뻘들이 6촌지간이니 내게는 7촌 숙이다. 그러니까 7촌 숙질 간, 집안에 열대엿 분이 더 됐다. 호칭은 제주 식으로 ‘삼춘’이었다. 그분들의 자녀와 나는 8촌 형제가 되고, 다시 그 아이들은 10촌, 오래지 않아 친족 간의 간격이 벌어져 갔다.
 
세대교체가 이뤄지면서 친족과, 가문이 해체돼는 수순을 밟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임을 깨닫게 됐다.
 
그래도 제주는 연고사회다. 꼭 혈연이 아니더라도 한 마을 좁은 바닥에 살다 보니 정 들어 임의로운 사이가 된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모두 ‘삼춘’이었다. 친척도 아닌데 삼촌 조카가 되는 곳, 사람 냄새가 나는 정겨운 사람들이 사는 고장, 사람 사이에 따뜻한 정이 흐르는 사회가 제주도다.
 
실은 괸당은 친척(親戚)이니, 친족과 외척(고종, 이종)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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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괸당은 옷 우잇 보름인다.’

서로 마음을 터놓고 살아가는 모습은 곧 밖으로 가문의 위세를 과시하게 된다. 다들 부러워할 것 아닌가. 그 ‘위세’를 ‘옷자락을 흔드는 바람’이라 빗댄 것이다. 집안의 누구가 고위직에라도 올랐다면, 이야말로 집안의 얼굴이 된다. 살랑살랑 왜 바람이 일지 않겠는가. ‘집안 바람’, 친척의 존재가 이쯤 되면 사뭇 당당해 기죽을 일이 없게도 된다. 인지상정이다.
 
‘옷이 놀개여’(옷이 날개다)라 한 옛 어른들 말이 떠오른다. 밥 굶는 것은 몰라도 겉으로 드러나는 옷을 좋게 입고 나서야 반반한 법이다.
 
그리고 예전엔 아이를 많이 낳으려 했다. 여럿이 장성하면 그게 곧 가세(家勢)를 내세우는 게 됐으니까.
 
5포니 7포니 하면서 아이 하나도 낳지 않으려는 요즘 세상이고 보니, 그야말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또 늘 듣는 말이 있다. ‘이 당 저 당 해도 괸당이 제일이여.’
 
귀에 어지간히 익은 말이 있지 않은가. ‘괸당’도 정당(政黨) 축에다 줄 세워 놓을 정도다. 선거철이 되면 집안은 말할 것 없고 먼 친척, 심지어는 사돈의 8촌까지도 입에 오르내리며 찾아다닌다. 알게 모르게 제주도의 선거 때 표 계산 방식이다. 이왕이면 다른 당 말고 괸당을 찍어달라 호소한다. 팔은 안으로 굽는 법 아닌가. ‘괸당 문화’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괸당 바농질 혼다’(권당 바느질한다)고까지 할 정도로 괸당이란 말이 대단한 존재감을 갖는다. 표준어로는 ‘권당질’이다.
 
옷 속이 뚫리어 통하도록 꿰매야 할 것을 양쪽이 마주 붙게 잘못 꿰맨 바느질을 뜻한다. /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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