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조림돌림을 이유로 생략한 현장검증을 고유정이 돌연 재판과정에서 요구하면서 실제 실행에 옮겨질지 관심을 끌고 있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정봉기 부장판사)는 16일 오후 2시30분 살인과 사체 손괴 및 은닉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 된 고유정을 상대로 3차 공판을 진행한다.

수사과정에서 내내 기억이 파편화 돼 있다며 구체적 범행에 대해 묵비권을 행사하던 고유정은 앞선 2일 열린 2차 공판에서 느닷없이 현장검증을 요구하고 나섰다.

5월25일 전 남편을 살해하고 1차로 사체를 훼손한 제주시 조천읍 모 펜션이 현장검증 대상지다. 고유정은 범행 직후 미리 준비한 락스 등 청소용품으로 혈흔 등을 닦아 증거를 없애려 했다.

경찰은 6월1일 고유정을 충북 청주시의 자택에서 붙잡은 이후 취재진의 현장검증 물음에 “피의자가 지속적으로 우발적 범행을 주장해 실익이 없다”는 의견을 고수해 왔다.

사건 현장에 남아있는 혈흔 등의 분석으로도 충분히 범행을 유추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사건을 지휘한 제주지방검찰청도 이에 대해 별다른 이견은 없었다. 

이 과정에서 제주동부경찰서 형사과장 등이 경찰 내부망에 “당시 박기남 경찰서장이 현장검증이 고유정에 대한 현대판 조리돌림으로 비춰질 것을 염려했다”는 글을 게시하기도 했다.

조리돌림은 죄를 지은 사람을 벌하기 위해 끌고 돌아다니면서 망신을 시킨다는 의미다. 이 내용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살인사건 가해자에 대한 조리돌림 표현의 적절성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고유정측은 펜션 내부에서 피고인과 피해자의 동선, 혈흔 분사 흔적 등을 설명하며 당시 범행 과정에서 고유정이 주장하는 정당방위의 사유를 입증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현재 대부분의 혈흔이 지워졌지만 경찰이 현장에서 촬영해 증거로 제시한 사진만으로도 충분히 현장 검증이 가능하다는 논리를 폈다.

다만 재판부가 고유정측의 요구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2차 공판에서도 추후 논의를 거쳐 결정하겠다며 판단을 미뤘다.

고유정측은 정방당위 입증을 위해 범행 과정에서 다친 손을 처음 치료한 의사도 증인으로 신청했다. 고유정은 펜션 퇴실 직후인 5월27일과 28일 도내 모 정형외과를 방문해 손을 치료했다.

경찰에 체포된 후에는 변호사를 선임해 치료를 받은 오른쪽 손과 허벅지 등에 대한 증거보전을 법원에 신청했다.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관련 의료기록은 증거물로 남아 있다.  

검찰은 이에 맞서 고유정의 상처에서 정당방위 흔적을 찾기 어렵다는 의견을 낸 제주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증인으로 내세웠다. 두 의료인의 진술도 정당방위를 다툴 핵심 증언 중 하나다.

3차 공판에서는 고유정의 차량에서 발견된 이불에서 피해자의 혈흔과 졸피뎀을 검출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관 2명이 검찰측 증인으로 나선다.

검찰은 증인신문 과정에서 피해자의 혈흔과 졸피뎀을 특정해 고유정에 대한 계획적 범행을 입증할 계획이다. 대검찰청 감정관도 추가 증인으로 내세워 증거의 신빙성을 높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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