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137. 키 작은 놈 똘똘하다

* 족은 놈 : 작은 놈, 키 작은 사람. 단신(短身)
* 요망지다 : 똘똘하다

‘족은 놈 동찬다.’(작은 놈 야무진다)
‘지레 족댕 내무리지 말라.’(키 작다고 나무라지 마라)

유사한 속담들이다.

키가 작다고 업신여기거나 나무라는 경향이 있다. 정도 이상 작아 외형상 우습게 보일지 모르나 실제는 똑똑하고 야무진 사람이 있다. ‘키 큰 사람 소갈머리 없다’고 작은 사람이 일을 잘하거나 똘똘하면 외려 돋보인다. 작아도 제 구실한다는 의미다

하긴 옛날 관리를 뽑을 때 심사기준으로 ‘신언서판(身言書判)’을 내세워 평가하던 때가 있었다. 몸 좋고 말 잘하고 글 잘 쓰고 판단력이 뛰어나야 한다고 평점을 매긴 것이다.

‘身’을 첫머리에 세웠다. 그만큼 신체를 제일로 했을 만큼 중요한 게 몸이다. 키 크고 기골 장대하면 위엄이 있어 보이는 건 당연한 이치다. 
  
키가 정도 이상 작으면 아무래도 키 큰 사람만 못한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맞상대를 하게 되면 한눈에 비교가 돼 버린다. 체격은 타고 나는 것이라 작은 사람으로서 억울하지만 호소할 데가 없는 노릇 아닌가. 

‘족은 놈’은 한자어로 단신(短身), 상대어는 장신(長身)이다. 

현행 병역법상 키 140cm 이하 장정은 무조건 병역면제에 해당한다. 그 키로 군에 간다면 소총을 어깨에 메기도 힘들 것이다. 2016년 기준, 대한민국 남성의 평균 신장은 170.68cm, 여성은 157.23cm다.

역사적 인물 중 나폴레옹, 등소평 등은 유별나게 키가 작았다. 우리 어두운 역사 속의 박정희 대통령도 아주 작았음은 다 아는 사실이다.

한 시대를 좌지우지했던 저명한 실력자들 아닌가. 키가 작다고 얕보지 못한다는 확실한 증거가 될 것이다.

키 작은 사람이 돋보이거나 한 몫을 톡톡히 하거나, 키가 작아 결정적으로 불리한 경우가 있다.

비근한 예로, 배구에는 대부분 리베로 선수가 끼어 있다. 유난히 다른 선수들에 비해 유난히 키가 작다. 바로 그 키 작음이 선수로 뛰게 하여 상대의 강한 서브를 온몸을 던져 받아 내거나,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의 공을 디오를 해서 살려 낸다. 신장이 장대 같은 선수보다는 작은 선수가 수비에 훨씬 유리하다.

키가 작아 공격옵션으로서는 아쉬운데도, 수비가 좋은 선수들이 리베로로 전향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연유에서다.

체조 스타 양학선 선수는 160cm로 키가 매우 작다. 바로 그 작은 키가 그로 하여금 금메달리스트가 되게 했을 것이다. 체조는 착지가 생명인데, 키 작은 사람이 안정적 착지에 절대 유리하다.

사진은 2012년 런던올림픽 남자 도마에서 금메달 획득한 양학선 선수. 출처=오마이뉴스.
행여 작은 키로 태어났다손 치더라도 열등감 따위는 갖지 않는 게 인생을 뜻있게 사는 길이다. 인생은 소중하다. 사진은 2012년 런던올림픽 남자 도마에서 금메달 획득한 양학선 선수. 출처=오마이뉴스.

역도 경기에서도 같은 체급이라면 단신 쪽이 유리한 것으로 돼 있다. 들어 올린 뒤 작은 키가 균형과 중심을 순간적으로 잡아 줄 수 있으니 그럴 게 아닌가.

불리하기도 하다. 격투기에는 상당히 불리하다. 골격이 왜소한데다 키 또한 작으니 상대로부터 머리를 가격당할 확률이 매우 높다. 허를 보이면 한 방에 무너지는 게 격투기다.
  
눈에 띌 정도로 작으면 아무래도 남성적 매력이 떨어진다. 어성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키가 유별나게 작으면 나이보다 아주 어려 보이기도 하고, 사람에 따라서는 눈 아래로 깔아보기도 하는 세상이다. 별명도 스트레스를 받게 할 것이다. ‘땅꼬마, 땅딸보.’

‘족은 놈이 요망진다.’

흘려들을 일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게, 작은 고추가 맵다고 했다. 작아도 키 큰 사람을 능가하는 기민한 몸놀림과 출중한 역량을 가진 사람이 의외로 많다. 

행여 작은 키로 태어났다손 치더라도 열등감 따위는 갖지 않는 게 인생을 뜻있게 사는 길이다. 인생은 소중하다. 각자에게 주어진 삶이 있는 법이다. /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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