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타파 휩쓸고 간 농경지] 서귀포시 성산읍 월동무 재배 강동만 씨 “농사는 지어야 하고...” 깊은 한숨만

ⓒ제주의소리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난산리에 위치한 강동만 씨의 월동무 밭. 태풍 타파는 지나갔지만, 거대한 연못으로 변해버린 월동무 밭에는 아직도 폭우의 흔적이 역력하다.ⓒ제주의소리
강동만 씨가 태풍 타파에 피해를 입은 자신의 밭에서 할말을 잊은채로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강동만 씨가 태풍 타파에 피해를 입은 자신의 밭에서 할말을 잊은채로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살아있는 것처럼 보여요? 이미 다 죽었어요. 농사는 지어야 하고 다시 갈아엎는 수 밖에 별다른 방법이 없어요. 어떻게 지은 농사인데…. 휴~”

23일 오전 서귀포시 성산읍 난산리에 위치한 월동무 밭. 지난 여름 뙤약볕 속에 밭을 일궜던 강동만(성산읍월동무생산자산지협의회 회장)씨는 연거푸 한숨만 내쉬었다.
 
지난 22일 제주를 강타한 제17호 태풍 타파(TAPAH)로 인해 제주 곳곳에서 농작물 피해가 속출했다. 강씨도 이번 태풍 타파에 직격탄을 맞았다. 
 

강 씨의 월동무 밭은 아직도 빗물이 빠지지 않았다. 멀리서 보면 연못으로 착각할 만큼 밭 곳곳에 물이 흥건이 고여 있다. 질퍽거리는 진흙으로 변한 밭에는 새끼손가락보다 작은 새싹들이 겨우 빗물에서 빠져나왔지만 힘없이 축 늘어진 모습이다.

 
밭농사의 경우 어린 새싹이 오랜 시간 물에 잠기면 대부분 힘없이 죽어가는데, 농민들은 그걸두고 ‘녹는다’고 표현한다. 강씨의 월동무 어린 싹들도 벌써부터 녹아내리고 있었다.  
 
침수되지 않은 밭에서도 피해가 발생했다. 유난한 가을장마와 앞선 제13호 태풍 링링을 고맙게도 잘 버텼던 어린 싹들이 이번 태풍 타파의 강한 바람과 폭우로 꺾이고 말았다. 
 
연못처럼 침수된 물이 빠지지 않고 고여있는 강씨의 월동무 밭. 물에 잠긴 싹은 다시 살아나기 힘든 상태다.
가까이서 바라본 월동무 새싹. 강풍과 폭우를 이겨내지 못한 새싹들이 힘없이 꺽여 있다.

강씨는 인터뷰로 쫓아다니는 기자에게 연신 “바쁘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태풍 피해를 입은 밭이 더 있는지 둘러봐야 하기 때문이다.

 
강씨는 “지난 7일 제주를 할퀸 태풍 링링 때도 살아남았던 월동무 싹들이 이번 태풍으로 모두 죽어버렸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멀리서 보면 괜찮은 것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이미 줄기가 꺾여 다시 살려낼 수 없다”며 “일부 살아있는 싹이 보이지만, 살아있는 싹을 관리하는 것보다 밭 전체를 모두 갈아엎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말했다.
 
최대한 빠른 시일에 밭을 갈아엎어 다시 파종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것도 파종시기와 출하시기, 비용 등을 고려하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다만, 다른 선택 카드가 없기에 재파종이라도 해야할 상황이다. 
 

강씨는 “대체 작물도 월동무밖에 없다. 서둘러 밭을 갈아 월동무를 파종해야 한다”며 “다른 밭 피해 상황도 확인해야 한다. 이번 태풍으로 제가 농사짓는 월동무 밭의 약 30%는 죽었다”며 취재진 곁을 떠났다.

강씨가 자신의 밭을 보면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고 있다.
강풍을 이기지 못해 꺾여버린 새싹들. 강시는 밭을 갈아엎어 다시 파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태풍 타파는 지난 21일부터 이날까지 제주에 최대 70mm가 넘는 물 폭탄을 쏟아냈다. 주요 지점 강수량은 어리목 783mm, 삼각봉 705mm, 성산 303.5mm, 제주시 282.2mm, 서귀포 136.7mm, 고산 69.6mm 등이다.

 
태풍의 강풍 위력도 대단했다. 서귀포 지귀도에는 순간 최대풍속 초속 40.6m에 강풍이 불었다. 성산도 초속 30.4m, 고산은 초속 29.9m의 강풍이다.

제주도 소방안전본부에 따르면 지난 23일 오후 4시 기준, 농경지 침수 등 총 242건의 태풍 피해 신고가 접수됐다. 제주도가 합동조사반을 꾸려 오는 10월11일까지 농경지 침수 등 현장 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라 피해 규모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강씨와 같은 월동무 외에도 감자, 당근, 양배추, 브로콜리, 콩, 마늘 등 대부분 제주가을 들녘의 밭작물들은 이번 태풍 '타파'로 쑥대밭으로 변해버렸다. 
 
올해 지독히도 유난했던 가을장마와 연이은 가을태풍, 농민들의 가슴에 깊은 생채기만 남기고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서둘러 제주를 떠났다. 폭탄 맞은 농경지를 둘러보는 농민들 머리 위의 가을하늘은 야속하게도 푸르기만 했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