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소리>에 실린 기고에 모처럼 댓글들이 달렸다. 평소에 기고문에 댓글을 달자고 얘기하던 참이어서 무척 반가웠다. 사람은 눈이 앞에만 달려있기  때문에 사물의 일면만 보게 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찬성하는 의견도 중요하지만 올바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반대하는 의견이 더욱 중요하다. 

조선 말엽의 유학자이신 유중교 선생께서는 삼가희(三可喜)란 글을 남기셨는데, 이 말은 남이 나의 잘못을 얘기해 주는 것은 나에게 세 가지 즐거움을 주기 위한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 첫째는 나의 잘못을 듣고 고칠 기회를 얻는 것이며, 둘째는 상대방이 나를 속이지 않는다는 것이고, 셋째는 상대방이 나를 잘못을 지적하면 고치는 사람으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이 글을 읽은 다음부터 다른 사람이 나의 결점이나 잘못을 지적하면 '나에게 이 세 가지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 하시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들으면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며 때로는 기쁘기까지 한다.

그런데 요즘 댓글을 읽다 보면 때때로 반론이 아니라 감정의 찌꺼기를 쓴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이런 글을 유중교 선생이 말씀하신 삼가희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얼마 전에 존경하는 오승주 선생께서 당신이 운영하고 있는 청소년 정치학교의 어려움에 대해 쓰셨기에 반론을 썼는데, 제주의소리 편집진에서 반론 기고문을 게재해 주었다.

그런데 반론 기고에 달린 댓글들이 제 글에 대한 반론이라고 보기에 어려운 글들이 있었다. 물론 어떤 사물을 봄에 있어서 가치관의 차이에 의한 다름이 있을 수 있지만 좋고 싫음과 옳고 그름을 혼동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글도 있었다.

요즘 조국 교수의 따님 대학 입시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의견이 가장 많이 갈리는 부분은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데 왜 떠드느냐!’ 하는 것과, ‘조 교수께서 모른다고 하니 조 교수가 관여하지 않은 것에 대해 책임을 왜 져야 하는가?’인 것 같다. 아직 법적으로 ‘결론이 나지 않은 상황에서 너무 성급히 결론을 내리신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다.

물론 최종 법적 판단이 나기 전에는 ‘무죄 추정의 법리’를 따라야 한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에는 법무부장관이라는 자리는 유죄라야 결격사유가 되는 것이 아니고 도덕적으로도 결정적 하자가 있다면 맡지 말아야 하는 곳이다. 필자는 의사여서 조 교수의 따님께서 제1저자로 발표한 논문이 외국어고등학교 학생이 2주일간의 인턴 활동으로 작성할 수 없다고 판단된다. 물론 결과적으로도 이 논문은 부정한 것으로 결정이 되어 취소가 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여 서울에 있는 외국어고등학교 학생이 아무런 연고도 없는 지방 의과 대학에서 의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실험을 하고(이것은 만일 실제로 하였다면 법적으로 문제가 된다), 의학 논문을 쓸 수 있고, 더구나 제1저자가 되어 SCIe급 학술지에 실을 수 있을까? 

이것은 외부 압력이나 청탁이 없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것을 모른다고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조 교수가 몰랐다면 그 과정을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 햐는 것이다. 선거직이라면 유권자들이 판단해서 할 일이지만 장관이라면, 더구나 법무부장관이라면 ‘기회는 균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를 지향하는 문재인 정부에서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이것은 공도를 무너뜨리는 행위다.

조 교수를 지지하시는 분들 중에는 국회청문회에서 다 해명이 되었으며 아무 법적 문제가 없는데도 언론과 검찰이 계속 물고 넘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필자는 이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청문회를 보니 조 교수의 대답은 대부분 모른다는 것이었다. 조 교수가 많은 부분 모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 오랜 준비기간 동안 무엇을 했단 말인가? 일반 사람들이라면 알 수 있는 것들을 그렇게 많이 모르고 있다면, 과연 조국 교수는 아버지로서, 대학 교수로서 무엇을 했으며, 이런 분이 과연 법무부장관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가장 먼저 실행해야 할 법무부장관으로서 자격이 있는가? 

조국 교수는 몰랐다고 하더라도 지금까지의 상황으로는 적어도 부인께서는 도덕적 책임을 져야할 것으로 여겨지는데,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모범적 가치로 삼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정도 올바로 꾸리지 못 하는 사람이 도덕적으로도 모범이 되어야 할 법무부장관이 과연 합당한 자리인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보수주의자라고 하며 현명관 후보 지지한 건 이해하는데, 안철수 지지한 것은 같은 의사 출신이니까 한 것이냐?’라는 댓글은 일반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애기라고 여겨진다. 그러나 필자는 늘 ‘선거란 입후보자 중에서 누가 가장 적임자인가를 따져서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1995년에 도지사 선거를 할 때에 후배들 중에서 ‘신구범 후보가 동문이니 지지해 달라.’라고 얘기하기에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우리가 동문이니까 찍어 달라고 하면 다른 학교 출신들도 자기 동문들을 찍어 달라고 할 것이 아니냐? 누가 도지사로 가장 적임자인가를 따져서 지지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가 있다. 

2006년 도지사 선거 때에 필자가 현명관 회장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자, 후배들이 ‘동문이 나왔는데 다른 학교 출신을 지지할 수 있느냐!’ 하면서 떼거리로 몰려와 항의한 적이 있다. 그때도 필자는 ‘이게 동문회장 선거냐? 동문이라고 지지하라고 하게’ 하고 되돌려 보낸 적이 있다. 나는 우리나라 선거의 폐단 중 가장 큰 것이 바로 이런 지연, 학연, 혈연에 의한 지지라고 보며 이것을 타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무학대사의 말씀이 생각난다. ‘부처님 눈에는 부처님만 보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

‘자유주의자이며 사회주의를 이루겠다는 어떤 미친*이 생각난다.’라는 댓글도 있었다. 필자는 큰 틀에서 자유주의니 사회주의니, 보수니 진보니 하는 것들이 있을 수 있으나 극단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다. 자유주의를 주축으로 하면서도 사회주의를 염두에 두어야 하고, 보수의 가치를 존중하면서도 늘 진보를 지향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보수와 진보의 두 날개로 난다.’라든가 ‘20대에 사회주의를 생각하지 않으면 가슴이 없는 사람이고, 40대가 되어도 사회주의를 생각하면  머리가 없는 사람이다.’라는 말을 좋아 한다.

이유근 아라요양병원장.
이유근 아라요양병원장.

민주주의 국가에서 자유와 사회주의, 보수와 진보는 배척되는 개념이 아니라 서로 융화되어 중용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의  큰 문제가 바로 이 두 그룹간의 갈등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 하는 데에 있다고 필자는 보고 있다.

우리 모두는 사람이기 때문에 완벽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은 생각을 갖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따라서 내 말이 옳다고 주장하지만 말고 상대방의 말도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라는 생각으로 토론하였으면 한다. 익명성에 숨어 감정의 찌꺼기를 뱉어내는 것은 민주시민으로서는 할 일이 아니다. / 이유근 아라요양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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