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항소심서 택시 내 동물털 국과수에 재감정...피고인 “할말 없다”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10년 전 제주 보육교사 살인사건에 대해 검찰이 증거물 재감정으로 반전을 노리고 있다. 

검찰은 광주고등법원 제주제1형사부(이재권 수석부장판사)의 심리로 열린 박모(50)씨의 강간 살인사건 항소심 첫 공판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증거물 재감정 계획을 알렸다.

재감정 대상은 박씨의 택시에서 발견된 동물털이다. 실종 당시 피해자 이모(당시 27세)씨는 동물털로 내피를 감싼 밤색 무스탕 외투를 입고 있었다.

검찰은 추가 감정 결과가 나올 때까지 2차 공판 기일을 늦춰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이에 변호인측은 1심에서 이미 미세섬유 증거에 대한 동일성이 인정되지 않았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재판부가 검찰측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2차 공판 기일은 정해지지 않았다. 재판이 끝난 후 박씨는 심경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할 말이 없다”며 서둘러 법원을 빠져나갔다.

1심 재판과정에서 검찰은 간접증거인 의류 속 미세섬유와 폐쇄회로(CC)TV 영상을 범행 입증의 핵심 증거로 제시했다.

미세섬유는 피고인과 피해자가 접촉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CCTV 영상은 피고인이 범행장소로 이동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유일한 증거다.

반면 1심 재판부는 공산품인 미세섬유만으로 두 사람의 접촉을 단정 지을 수 없고, 번호판이 식별되지 않은 CCTV 영상도 직접 증거가 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이 항소장을 제출하면서 채증법칙 위배로 인한 사실오인을 내세우면서 항소심에서도 치열한 법리다툼이 벌어질 전망이다.

항소심의 쟁점 역시 간접증거에 대한 증명력이다. 최근 살인의 추억으로 불리는 화성 연쇄 살인사건에 대한 피고인의 DNA가 33년 만에 확인되면서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화성 연쇄 살인사건의 경우 발전된 과학기술로 피의자의 직접증거인 DNA가 확보됐지만 제주의 보육교사 살인사건은 혈흔이나 체액 등 DNA를 특정 지을 직접증거가 없는 상황이다.

검찰이 피고인의 차량 이동 동선과 택시와 피고인의 옷에서 발견된 미세섬유 등 간접증거의 증명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씨는 2009년 2월1일 새벽 제주시 용담동에서 자신이 운행하는 택시에 탑승한 이모씨를 성폭행 하려다 살해하고 애월읍 고내리의 배수로에 사체를 유기한 혐의를 받아 왔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는 7월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공소사실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입증됐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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