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틈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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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광의 제주 산책] 10. 벽극풍동 심극마침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목욕제계하고 청수(淸水)를 불전에 모시고 기도를 시작하면 6시가 된다. 지난 추분이 지난 뒤로 동쪽의 일출의 너물이 조금씩 늦다. 

엊그제는 태풍이 불어와 밤새 법당 창문이 덜컹거렸고 나뭇가지는 꺾이고 키 높이 자란 종려나무 해묵은 잎새도 바람에 크게 흔들리다가 툭하고 떨어지는 소리. 

동이 트고 마당에 나가보니 여기저기 밤새의 흔적이 너절하게 나타났다.

자연의 섭리에 또 다른 자연의 노니는 모습이다.

이처럼 자연도 한 번씩 잠잠했던 세상에 흔들어 놓기도 하고 뒤집기도 해서 또 사람들에게 고마움이 있었다는 것을 깨달게 한다.

부처님은 “세상에 사는 일은 어떤 일이든 고통을 수반하는 일이 많다”고 말씀했다. 그렇기에 마음이 가난하거나, 삶이 가난하거나, 건강이 가난하거나, 또는 얼굴이 가난하거나 모두 가난걱정으로 인해서 일어나는 불편하고 괴롭고 또 번뇌를 머리에 달고 다니게 된다. 

이것을 대오분상(大悟粉狀, 깨달아 살펴본즉)에서 보면, 세상 모두가 생사고락과 함께하기에 동체대비(同體大悲, 부처는 중생과 자신이 동일체라고 관찰하여 대자비심을 일으킴)의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한다.

어제 오후 커피 한 잔을 했더니 밤새 뜬눈으로 잠을 설쳤다. 안하던 짓을 하면 이런 일이 생긴다.

저녁에 조용하게 방석을 깔고 앉아 몸을 편하게 조율하고 조명을 어둠게 한 다음 천천히 내가 살아 숨 쉬는 호흡을 헤아려 본다. 그리면 조금 후 내가 편해지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나’는 이 몸을 “어디가 나인가?” 하고 내가 어디서 왔는가를 헤아려 본다. 

발바닥이 나인가, 아니면 무릎이 나인가. 코가 나인가, 듣고 있는 귀가 나인가, 바람에 나부끼는 흰 머리털이 나인가, 오만가지 끌려 다니는 이 번뇌의 마음이 과연 ‘나’인가. 정말 ‘나’라고 꼭 짚어 말할 때, 이것이다 하는 ‘나’는 없다. 이것저것이 조합해서 ‘나’라 하는 실체이다. 그러니 아플 때도 마음이나 몸이나 순서 없이 아프거나 느닷없이 괴로움이 온다. 그렇게 되면 ‘나’라는 것에 애착이나 집착을 한다는 게 얼마나 어리석음이 있는가. 하는 마음으로 깨달음이 있다. 

제공=정은광. ⓒ제주의소리
저녁에 조용하게 방석을 깔고 앉아 몸을 편하게 조율하고 조명을 어둠게 한 다음 천천히 내가 살아 숨 쉬는 호흡을 헤아려 본다. 제공=정은광. ⓒ제주의소리

이런 뒤 잡념이나 과거나 미래의 생각이 나면 그것은 과거이니 내려놓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는 걱정이니 또한 내려놓는 것이 지혜가 된다. 이것이 선(禪)을 하는 방법이다. 왜 우린 이것을 하려고 할까. 그것은 내가 눈으로 말로 입으로 귀로 마음으로 모든 현상을 내가 저장해놨다가 그것을 써먹으려고 할 때를 기다린다.

수행하는 자들은 이렇게 망상과 번뇌를 바람결로 알고, 흘러가는 강물로 알며, 잠시 꽃잎에 나풀거리는 나비의 그림자로 알기에 수행을 할 수 있고 마음을 스스로 잠재울 수 있는 것이다.

결론은 고요함이다. 

가끔 심상을 메모한 노트를 보고 나를 미소 짓게 하는 글이 있다. 벽극풍동 심극마침(壁隙風動 心隙魔侵)이라. <선가귀감>의 고전에 나오는 글이다.

벽에 틈이 있으면 
찬바람이 들어오고 

마음에 틈이 생기면 
마구니가 들어온다.

그대
무명 속에 
집착과 번뇌는

그대를
에워싸고
건지지 못하리니

돌을 갈아 부처를 만들고
기왓장을 갈아 거울을 만들던
무슨 소용이 있으리오.

산에 사는 산중
들에 사는 들중

다들
방아 찧느라 정신이 없네!
경전을 보지마소

그대는 이미 한 생각 꿈이
환상이라는 걸 알았으니...

어쩌면 세상사는게 이런걸 아닐까 해서 혼자 써본 글이었다.

# 정은광은?

정은광 교무는 원광대학교에서 원불교학을 전공하고 미술과 미학(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원불교 사적관리위원과 원광대학교 박물관에서 학예사로 근무하며 중앙일보, 중앙sunday에 ‘삶과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다년간 우리 삶의 이야기 칼럼을 집필했다. 저서로 ‘그대가 오는 풍경’ 등이 있다. 현재 원불교 서귀포교당 교무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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