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138. 조천에 가면 칡잎도 달다

* 조천관 : 제주시 조천읍 지역을 가리킴
* 가민 : 가면
* 끅닙 : 칡잎, 葛葉(갈엽)
* 돈다 : 달다

제주 지역에 칡이 너무 무성하다. 무성한 정도를 넘어 창궐(猖獗)하고 있다. 제주시 변두리서부터 동서 번영로며 평화로 길섶이며 일주도로 노변, 남조로 길 어디든 칡이 우거져 있다. 칡은 넝쿨식물인데 번식력이 왕성한데다 성장 속도가 무섭다. 넝쿨이 뻗기 시작하면 걷잡지 모한다. 나무를 친친 감아 오르고 숲을 온통 덮어 버린다.

칡이 싸 버린 숲이나 나무는 제 본래의 모습을 잃고 만다. 칡에 덮인 거대한 숲도 숲 본래의 얼굴이 흔적도 없이 지워져 버린다. 마치 커다란 보자기로 싸 버린 것처럼 나무도 숲도 밋밋해 단조롭다. 초록빛만 띠었지 나무도 숲도 아니다. 전체가 칡넝쿨이요 칡잎일 뿐이다. 

획일적인 것은 자연이 아니다. 제주는 자연의 풍광이 아름다운 섬이다. 칡이 삼켜 버린 이런 풍경은 일찍이 없던 것이다. 아름다운 제주 본래의 자연이 아니다. 그냥 방치할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여름내 생장점 극한까지 뻗고 또 뻗어 제주의 산야를 온통 뱃속에 삼켜 버리는 맹렬한 포식자요 염치를 모르는 무소불위의 폭군이 바로 칡이다. 겨울에 앙상한 넝쿨과 마른 잎이 흉물로 이리저리 얽히고설켰다 봄이 되면 벌떡 소생해 슬슬 근성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앞으로 제주 산야를 뒤덮은 칡넝쿨을 헤쳐내야 할 것이다. 여간 걱정스럽지 않다. 행정력의 동원이 필수적이지만 결국에 애를 먹을 것은 도민이다. 인력의 뒷바라지 없이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옛날, 마소를 방목했을 때는 맥을 못 추던 칡이다. 새 순이 나오자마자 마소가 뜯어먹었으니까. 사료비도 들지 않고 가축도 건강하게 자랐다. 그뿐 아니다. 칡넝쿨을 걷어다 커다란 고리를 엮고 구덕이며 바구니를 싸 긴요하게 사용했다. 그러니 칡은 근근이 살아남을 지경이었다. 지금처럼 멋대로 뻗어 좋은 경치를 덮을 수가 없었다는 얘기다. 언제부터 편리만을 찾게 됐는지 격세지감을 금치 못한다.

배가 고프면 무엇이든 달게 먹게 돼 있다. 그래서 칡잎을 질근질근 씹어대는 모습이 눈앞으로 그려져 더욱 쓴웃음을 짓게 한다. 사진은 칡잎이 무성한 숲속. 출처=오마이뉴스. ⓒ제주의소리
배가 고프면 무엇이든 달게 먹게 돼 있다. 그래서 칡잎을 질근질근 씹어대는 모습이 눈앞으로 그려져 더욱 쓴웃음을 짓게 한다. 사진은 칡잎이 무성한 숲속. 출처=오마이뉴스. ⓒ제주의소리

‘조천관만 가민 끅잎도 돈다’는 말에 감회 새롭기만 하다.

조천은 제주시 동쪽에 위치한 첫 읍내다. 시내에서 12km 지점이다.. 예전엔 몇 시간을 발품 팔며 걸어서 다니던 거리다. 걸어서 조천읍에 이르면 몸도 지치거니와 안 그래도 출출하던 빈 뱃속이 허기질 것은 빤한 일. 시장하니 길가에서 칡잎을 뜯어먹는다는 얘기다. 시장한데 눈앞의 칡잎인들 마다할까. 

시장이 반찬이라지만 밥이 있을 때 하는 소리다. 

‘끅 잎도 돈다.’ 

이 말에는 앞에 밥 한 그릇 받아 앉지도 않았다. 밥은커녕 푸나물 쪼가리 하나 없다. 배가 고프면 무엇이든 달게 먹게 돼 있다. 그래서 칡잎을 질근질근 씹어대는 모습이 눈앞으로 그려져 더욱 쓴웃음을 짓게 한다. 1950~1960년대, 우리에겐 이렇게 못 살던 절대빈곤의 시절이 있었다.

식당 밥을 먹을 때마다 느끼는 게 있다. 한국인이 지나치게 음식에 탐한다는 것이다. 먹다 남을 음식으로 어질러진 그릇과 탁자를 보며, 제발 단출한 식사문화가 이뤄졌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먹을 만큼만 떠주는 식당, 먹을 만큼만 먹는 고객이 될 수 없을까. 
  
풍요하다고 흥청망청하는 건 꼴불견이기도 하거니와 문화민족답지 않은 풍경이다. 결국 남는 건 넘쳐나는 음식물 쓰레기다. 얼마나 골칫거리인가 말이다. /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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