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서 빛, 日 대마도 4.3위령제] ② 제3회 4.3 희생자 대마도 위령제 포토뉴스

제주4.3과 예비검속,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로 수장 당한 사람들을 위해 일본 대마도에서 위령제가 열렸다. 한국과 일본 시민들이 힘을 합친 ‘제3회 제주4.3사건 희생자 대마도·제주도 위령제’다. 

29일 제주, 서울, 오사카, 도쿄, 대마도 등 양국에서 모인 시민 50여명은 1950년 전후로 한국인 시체들이 떠밀려왔던 대마도 북쪽 사고만(佐護 湾)에 모여 고인들의 넋을 달랬다. 제주 희생자들은 쿠로시오 해류를 타고 대마도 해안까지 흘러간 것으로 보인다.

이른 오전에 시작한 위령제는 대마도 주민 에토 유키하루(62)가 세운 희생자 공양탑에 먼저 들렸다. 이어 사고 만 인근 공원(미나토하마 씨랜드)에 모여 제주큰굿보존회가 희생자를 위로하는 굿을 치렀다.

무더운 날씨 속에도 참석자들은 진심 어린 마음으로 억울하게 바다 속에서 눈감은 희생자들을 위로했다. 한국, 일본 국적이나 나이, 직업을 초월한 하나의 인격체로서 마음을 모은 자리였다. <제주의소리>는 29일 대마도 위령제의 전 과정을 사진으로 남겼다. / 일본 대마도=한형진 기자

ⓒ제주의소리
29일 아침 일본 대마도 사고 만 지역에 세워진 한국인 표류 희생자 공양탑에 위령제 참석자들이 모여 고인들을 추모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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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들을 위로하는 참석자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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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인, 한국인 희생자를 위해 대마도 주민 에토 유키하루가 세운 공양탑.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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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 주민 에토 유키하루가 세운 공양탑. 적힌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옛날부터 대한해협은 파도가 높고 왕래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최근 한국전쟁에 희생된 남녀 노소 시신이 한반도에서 해협의 거센 파도를 타고 이 해안에 밀려왔다. 그 수는 수 백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 시신을 돌아가신 아버지 에토 히카루와 섬 사람들이 협력해 해안에 매장했다. 외국의 불쌍한 영혼을 위로해주고 싶다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여기 공양탑을 건립한다. 발기인 에토 히카루(2007년 2월 사망), 건립인 에토 유키하루. 2007년 5월 길일'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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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양탑에 모인 사람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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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양탑을 세운 에토 유키하루가 합장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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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69년전 제주인, 한국인 시신들이 떠밀려왔던 대마도 해안.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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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령굿 준비 중인 제주큰굿보존회.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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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의 첫 순서는 술, 빗, 쌀을 물에 넣어둔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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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중영장 순서. 수장된 영령의 혼을 건져올린다.ⓒ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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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에 필요한 물품을 만드는 참석자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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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자들이 무더위에 땀을 흘리며 위령굿을 기다리고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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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령굿상에는 4.3 70주년을 맞아 특별히 만든 한라산 소주가 올려졌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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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위령제는 제주4.3을 기억하는 일본인들의 모임 '한라산회'가 주관했다. 인원 섭외부터 홍보물 제작까지 전 과정을 회원들의 마련한 비용과 노력으로 해결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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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가져온 메밀로 죽을 만들고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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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령굿에 쓰일 '문지기'를 만들고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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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우 순서. 수장된 영령들이 짠 바닷물을 씻고 오도록 깨끗한 물을 가져다 놨다. ⓒ제주의소리
일본 현지 경찰이 확인 차 현장을 찾아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일본 현지 경찰이 확인 차 현장을 찾아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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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취재진(좌우)과 위령굿을 앞둔 서순실 심방(가운데 붉은 옷).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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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령제가 열린 사고 만 공원.ⓒ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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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취재진에게 위령굿을 설명하는 서순실 심방.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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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회 나가타 고문(왼쪽)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안행순 씨(오른쪽)가 통역을 맡았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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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령제에는 재일제주인 김시종(맨 오른쪽) 시인도 참석했다. 오른쪽부터 순서대로 김시종 시인, 송승문 4.3희생자유족회장, 서순실 심방.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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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위령제는 2014년, 2회는 지난해 열렸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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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종 시인의 인사말에 일본, 한국 취재진들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주목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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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종 시인의 원고.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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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을 수습한 아버지의 뜻을 이어 위령탑을 세운 대마도 주민 에토 유키하루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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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가 안복자의 춤사위로 본격적인 위령제가 시작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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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령굿의 시작을 알리는 악기 소리.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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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감제 순서. 신에게 굿의 내용을 알리고 영령들이 찾아올 문을 열도록 청한다. ⓒ제주의소리
위령제 전경. ⓒ제주의소리
위령제 전경.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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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장하는 서순실 심방.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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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햇볕에 참가자들이 각자 더위를 피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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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유닦음 순서. 영령들의 서글픈 사연을 심방이 대신 설명한다. 서순실 심방이 눈물을 흘리며 연유닦음을 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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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서영맞이 순서. 심방이 용왕문과 저승문을 지나가면서 차사와 영령을 함께 맞이한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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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닦음 순서. 거친 3700리 저승길을 영혼들이 무사히 오기 위해 돌을 치운다. 왼쪽부터 송승문, 에토 유키하루, 나가타 이사무.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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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서영가다리 순서. 영혼들이 오는 길을 만들고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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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다리 순서. 영령들이 나비와 새 몸으로 환생하라는 의미를 담았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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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사관장 순서. 차사가 영령을 데려오는 과정을 보여준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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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방의 마이크와 옷무새를 정리해주는 모습. ⓒ제주의소리
혼부르기 순서. 영령과 차사를 청하는 단계. 수장 당한 희생자임을 고려해 용왕의 차사를 부른다. ⓒ제주의소리
혼부르기 순서. 영령과 차사를 청하는 단계. 수장 당한 희생자임을 고려해 용왕의 차사를 부른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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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부르기 순서. 참석자들이 끈을 잡고 위령굿이 열리는 장소로 함께 이동한다. 영령을 다함께 모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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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자들이 줄을 잡고 이동하는 모습.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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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종 시인(맨 앞 가운데)도 줄을 잡았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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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시작 당시에 넣어둔 빗, 술, 쌀을 꺼내 망자들의 상태를 예언한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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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의 상태를 보고서 심방이 판단해 설명한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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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의 상태를 확인하는 심방.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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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가져온 떡과 영령들을 위한 돈이 함께 놓여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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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열림 순서. 영령들이 문을 하나 하나 열고 들어오는 과정.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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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다시 순서. 위령굿 참석자들에게 나쁜 기운이 오지 않도록 한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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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다시 순서.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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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종 시인도 푸다시에 참여했다. 질끈 눈을 감고 합장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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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다시 순서에서 열의를 다해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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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자들이 죽으로 만든 '원미'를 받아간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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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미 순서. 영령들이 죽을 먹고 무사히 돌아가라는 의미에서 바다에 죽을 뿌린다. ⓒ제주의소리
위령굿을 마치고 인사하는 서순실(왼쪽), 오용부 심방. ⓒ제주의소리
위령굿을 마치고 인사하는 서순실(왼쪽), 오용부 심방.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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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령굿을 마친 서순실 심방.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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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방들이 나쁜 기운을 씻기 위해 술로 손을 씻고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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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종 시인(오른쪽)이 서순실 심방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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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토 유키하루(오른쪽)와 서순실 심방이 포옹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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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앞줄 왼쪽부터 나가타 이사무, 송승문, 에토 유키하루, 김시종. ⓒ제주의소리
위령제를 마치고 모든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위령제를 마치고 모든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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