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시선] ‘제주4.3희생자 대마도 위령제’ 참여 단상

대통령의 언급이 있어서가 아니다. 위안부가 인류의 양심과 보편적 인권의 문제라는 건 누구나 안다. 양심과 양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류석춘은 그걸 저버렸다. 

따라서 류석춘(연세대 교수)을 파면하라는 제자들의 요구는 양심과 양식의 발로이다. 

소녀상도 마찬가지다. 양징자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 전국행동’ 공동대표는 “소녀상에 대해 ‘반일’이라든가 ‘헤이트(증오)’라고 하는 것은 사실 오인이자 중상(中傷)”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소녀상을 반일로 봤다면,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8월14일) 일본의 심장부 도쿄에서 일본 시민들의 자발적인 연대·추모 행사는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소녀상을 일본(인)에 대한 증오의 표시로 받아들였다면, 80을 넘긴 일본 노파가 나고야 도심에서 소녀상 전시 재개를 요구하며 절규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한·일 갈등이 최고조에 다다른 상황에서도 일본의 양심세력이 움직이는 건 위안부 혹은 소녀상이 의미하는 보편적 가치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역사에 가정이란 없다지만, 과거 한국과 일본의 처지가 정반대였어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양심세력은 어느 시대 어느 곳에나 존재하는 법이니까.   

인류의 양심과 보편적 인권이 걸린 문제는 내편 네편을 가르지 않게하는 그 무엇이 있다. 

약 70년 전 억울하게 숨진 제주인·한국인들의 넋을 달래기 위해 인생을 걸다시피 한 일본인 나가타 이사무(72)와 대마도 주민 에토 유키하루(62)에게서, ‘인간에 대한 예의’ 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한 일종의 숭고함마저 느끼게 된다.  

왼쪽이 에토 유키하루, 오른쪽이 나가타 이사무.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해마다 일본 대마도에서 제주4.3희생자 위령제를 열고 있는 일본인들. 왼쪽이 에토 유키하루, 오른쪽이 나가타 이사무.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에토는 2007년 2월 세상을 떠난 부친(에토 히카루)의 유지를 받들어 그해 5월 대마도에 희생자 공양탑(供養塔)을 세웠다. 그 뒤로 해마다 부인과 함께 이곳을 찾아 정성껏 공양했다. 그의 부친은 1950년 즈음 대마도로 떠밀려온 수백구의 제주인·한국인 시신을 일일이 수습했다.

시신들은 한국현대사 최대 비극인 4.3사건과, 예비검속을 비롯한 한국전쟁 전후 제주에서 수장당한 민간인 희생자들로 추정된다. 제주항 인근 옛 주정공장 터는 참혹한 과거를 말해주는 생생한 역사의 현장이다. 시신들은 이곳에서 해류를 타고 대마도까지 떠밀려온 것이다.     

나가타는 2014년 5월 재일제주인 김시종 시인과 함께 대마도에서 ‘제주4.3사건 희생자 대마도·제주도 위령제’를 처음 열었다. 대마도와는 아무런 인연이 없었던 그였다. 2018년 9월16일 개최한 두 번째 위령제부터는 에토와 함께 했다. 그리고 세 번째 위령제는 올해 9월29일 열렸다. 올해 위령제에는 <제주의소리>도 참여했다. 위령제 비용은 어떠한 외부의 도움 없이 전액 일본인 참여자들이 십시일반 충당했다. 개인당으로 치면 적지않은 금액으로 알려졌다. 

에토는 인터뷰에서 “감사!”를 연발했다. 이렇게 여러 사람들이 모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날이 올 줄 상상도 못했다는 것이다. 정작 누가 감사해야 할 일인지 모르겠다.  

울림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시신을 수습하던 아버지의 심정이 어땠을 것 같냐는 질문에 그는 한치의 주저함도 없었다. 

“이것은 국경과 소속의 문제가 아닌, 같은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이다. 아버지는 생전에 ‘피해자들이 희생당해 여기까지 떠내려 왔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냐’고 자주 말하셨다. 한국인, 일본인을 떠나서 나도 기꺼이 그렇게 할 것이다”

나가타의 말도 짠하게 다가왔다.  

“인간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자기가 이 세상에 살았다고 증명을 남기는 일이다. 대마도에 떠밀려온 제주도민과 한국인들은 이런 의미에서 인간으로서 존재를 말살당한 것이다. 그렇게 버려진 사람들이 대마도까지 떠밀려왔다. 이것은 운명이다. 그들의 운명은 살아있는 사람들이 책임져야 한다”

올해 대마도 위령제는 제주 측의 참여, 일부 실물 지원 문제를 놓고 작은 곡절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한·일 관계가 극도로 냉각된 탓에 예기치 않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 측의 문제였다. 

에토 역시 최근 양국 간 기류를 의식한 듯 조심스러워 했으나, 그가 제시한 해법(?)은 의외로 단순했다. “민간 차원에서의 이런 교류는 정부 관계와 다르지 않겠나”라고 했다.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앞으로는 한국 정부나 제주도 측에서 위령제에 드는 실비만이라도 부담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해봤으면 한다. 아예 진상조사부터 시작해도 좋다. 

이게 인간에 대한 예의를 다하려는 두 일본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희생자들의 후손으로서 당연한 도리가 아닐까 싶다. <논설주간/상임이사>

9월 29일 대마도 위령제를 마치고 모든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9월 29일 대마도 위령제를 마치고 모든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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