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웅의 지금 제주는] (18) '개발만능주의' 탈피 못하는 사업자 중심 개발행정

제주 선흘2리 주민들이 9월 20일 조천읍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조속한 이장 해임과 해임건을 처리하지 않는 조천읍장에 대해 성토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 선흘2리 주민들이 9월 20일 조천읍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조속한 이장 해임을 촉구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동물테마파크 개발사업에 대한 논란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한 주민 간의 갈등도 우려된다. 이미 마을총회에서 대다수의 주민들은 동물테마파크 개발사업 반대 결정을 내린바 있다. 하지만 총회에서 해임된 이장을 비롯한 일부 찬성입장의 주민들은 마을총회 결정을 거부하는 상황이다. 세계자연유산 거문오름과 벵뒤굴이 있는 조천읍 선흘2리 마을의 공동체가 위태롭다.

마을 공동체가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것은 제주도의 안일한 개발행정에서 기인한 측면이 크다. 제주도 입장에서 보면 이미 개발사업 시행승인이 이뤄진 사업에 대한 사업계획 변경승인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행정적 하자만 크게 없으면 변경승인을 해 주려고 했던 사업이다. 사업계획 변경에 따른 환경보전방안을 논의하는 환경영향평가심의위원회 회의 때도 승인부서에서는 변경승인을 전제하고 보완계획을 제시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개발사업의 정상적인 진행만을 먼저 챙기다 보니 이 사업을 우려하는 주민들의 의견은 반영될 수 없었고, 마을 공동체 파괴가 우려되는 상황으로까지 번지고 말았다.

이후에도 제주도 당국이 상황을 수습하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이 문제를 판단할 수 있는 기회는 있었다. 하지만 제주도의 입장은 여전히 개발사업의 정상적 시행에 초점을 맞춘 듯 보였다. 사업계획 변경승인 절차 중 하나였던 도시·건축공동위원회 심의결과인 ‘지역주민 및 람사르습지도시 관계자와 협의하여 진행할 것’이라는 조건부 사항은 충족되지 않았지만 절차는 계속 진행되어 왔다. 지금도 조건부 사항인 지역주민과 협의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고, 최근에는 사업자가 제주도에 제출한 조천읍 람사르습지도시 지역관리위원회와 협의했다는 문서는 조작된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특히 지난 8월 제주도의회 행정사무조사특별위원회의 동물테마파크 개발사업 예정지 현장방문 자리에서 제주도 담당국장은 마을주민들의 공분을 사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제주도의회 행정사무조사특위 위원장이 현재 마을의 입장을 묻는 질문에 제주도 담당국장은 마을회의 공식 입장은 찬성이며, 일부 학부모만 반대한다고 답한 것이다. 이 발언은 마을총회에서 개발사업에 대해 80% 가까운 반대 결정을 내린 주민들의 입장과 정반대의 사실 왜곡이라는 점에서 다분히 고의적인 발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더욱이 도의원들이 방문한 현장에는 일부 찬성주민만 입장한 상황이었고, 입장하지 못한 대다수 반대주민은 사업장 밖에서 항의시위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사업자 중심의 개발행정은 동물테마파크 개발사업의 환경영향평가 재협의 대상 여부 논란에서도 사업자의 편을 들어주었다. 사업기간 연장과 관련해서도 별다른 진척이 없는 상태였지만 사업기간의 재연장을 해주기도 했다. 관광개발사업의 승인업무를 담당하는 제주도 관광국 ‘투자유치과’는 말 그대로 사업자의 자본투자 유치를 우선 목표로 하는 부서이다. 세계자연유산의 정체성과 곶자왈의 보전, 동물권 등도 중요하지만 투자유치가 더 중요한 임무인 셈이다. 개발사업에 대한 환경보전방안은 승인과정에서 진행되는 부차적인 절차일 뿐이다.

이와 같이 개발 중심의 정책과 조직구조의 한계 속에서 제주도의 개발행정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다. 제주동물테마파크 개발사업의 현재 행정적 단계는 계획 변경 절차이지만 실제로는 신규 개발사업이나 마찬가지이다. 변경하는 사업내용은 최초 승인 당시 사업계획과 전혀 다른 사업으로 바뀌었다. 환경영향평가는 지난 2006년에 실시해 벌써 13년이 지났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하는데 이 지역의 생태계 변화를 무시하고 그대로 과거 환경영향평가 협의내용을 기준으로 진행하고 있다. 그 사이 이 지역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고, 국제적 습지보호협약인 람사르협약 당사국총회에서 람사르습지도시로 지정되었다. 이러한 상황변화와 조건들을 무시하고 제주도 개발행정의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 제주개발의 역사에서 일방적인 개발행정으로 인해 농촌 공동체가 파괴되고, 주민들의 삶의 터전마저 빼앗기는 상황을 봐왔다.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투자자 중심의 행정과 개발만능주의가 불러 온 폐해를 또 다시 반복하고 있다. 인구 400여명의 작은 마을 선흘2리의 공동체가 그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된다. 세계자연유산이 지정되고, 마을의 작은 학교가 활성화되면서 모처럼 생기를 되찾은 마을이다. 주민의 삶이 질이 우선이고, 생태계의 보전과 복원을 전제한 개발행정을 펴 나가길 바란다. / 이영웅 제주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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