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139. 주머니 둘 차는 집 편안치 못한다

* 주멩기 ; 주머니, 돈주머니
* 팬안치 : 편안치, 편안하지

재미있는 말이다. 한 집 식구, 그러니까 부부간에 따로 주머니를 찬다 함이니, 돈 관리를 따로 한다는 얘기다. 반드시 돈을 따로 따로 관리한다는 뜻이 아니기도 하다. 둘 중 한 사람이 가계를 맡아 꾸리되, 자기만의 돈을 갖는다는 얘기 쪽이 보다 현실적이겠다. 어쨌든 돈 관리를 이중으로 한다는 것이라 집안 살림에 좋지 않는 영향을 가져오게 마련이다. 

이를테면 어느 한쪽이 비자금을 갖는다는 것이니, 일단 바람직한 처신이 못된다. 의혹을 사게 되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가정에 풍파가 일 것 아닌가.

비자금(秘資金)의 폐해를 경계하고자 한 교훈이 깃들어 있다. 행간을 읽으면 좋다.

원래 비자금이란 기업이 리베이트, 커미션, 회계 조작 등으로 생긴 부정한 돈을 세금 추적이 불가능하도록 특별관리 하는 돈을 말한다. 한마디로 비밀스러운, 불량한 돈, 안 좋은 돈이다.

하지만 일상에서는 비상자금 또는 비밀한 돈의 뜻으로 쓰인다. 부부간의 돈 관리에 관해 짚어 보면 흥미롭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부부간에는 돈 관계가 투명해야 한다. 배우자 몰래 돈을 숨기는 것은 ‘배신’이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특히 여성의 경우, 비자금이 필요하다. 배신이란 말은 결과가 나쁠 때 쓰는 말일 뿐이다. 때로는 비자금이 가정의 구세주가 돼 줄 때가 종종 있지 않은가. 내밀하게 모아 뒀다 절실하게 또 현명하게 쓴다면 전혀 문제가 될 게 없다. 오히려 남자 쪽이 바람직하지 못하게 쓸 확률이 높다. 퍽 하면 ‘내 비자금인데 혹은 그렇지, 비자금이 생겼네.’ 하고 얘기가 나오는 것만 봐도 냄새가 나는 것 아닌가..

대부분 비자금은 말 그대로 비상자금이니까,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려고 모아둔 이기적인 돈이 아니다. ‘은밀한 성질’을 갖고 있지만, 비상시에 쓰기 위한 돈이라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비자금 하면 개인적 목적으로 사용할 용도라는 뉘앙스가 풍긴다. 축적해 둔 특단의 속셈이 있다. 한자 그대로 풀어 몰래 모은 ‘비밀자금’이니까. 자연히 비밀리에 관리되기 때문에 ‘개인자금’과 동의어로 쓰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은폐성을 지니게 되고 일단 숨긴다. 책 사이, 필름 카메라의 뒤 뚜껑을 열고 넣거나 컴퓨터 본체 안에 든 봉투를 붙여두는 것도 훌륭한 방법이다. 거액일 때는 또 다르다. 땅속에 묻거나 상자에 넣어 보관하기도 한다. 현금을 지하에 묻을 때는 습기에 취약하므로 비닐봉지에 싸 손상되지 않게 해야 함은 물론이다.

딴 주머니를 찬다는 것은 결국 불안감의 표출이다. 그럴 정도로 충족되지 않은 욕구가 있었다는 것을 헤아려 주고 서로에게 믿음을 주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돈을 헤프게 쓰거나 돈에 지나치게 인색하지 않았는지 자신을 한 번쯤 돌아봐야 한다. 성찰해야 할 이런 일을 소홀했다 식구에게서 감정적으로 반목을 사는 것은 화목을 깰 뿐 아니라 더 큰 균열로 이어지질 개연성마저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딴 주머니를 찬다는 것은 결국 불안감의 표출이다. 그럴 정도로 충족되지 않은 욕구가 있었다는 것을 헤아려 주고 서로에게 믿음을 주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조선 왕실에 ‘내탕금(內帑金)’이라는 왕의 비자금이 있었다. 왕에게 그야말로 든든한 돈줄이다.

신하에게 하사금을 내릴 때, 국가의 사업을 벌여야 함에도 신하들이 세금 쓰기를 반대할 때 등 왕이 돈을 쓰고 싶은데 공식저긴 돈줄이 막히면 내탕금을 풀어 여러 사업을 펼쳤다. 왕족들이 사치하는 돈도 내탕금에서 나왔음을 물론이다.
  
정조가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능을 지을 때 내탕금을 풀어서 근처의 땅값을 네 배나 비싸게 쳐주고 이사 비용까지 대주었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영조는 구휼(救恤)사업을 벌였을 때, 경복궁을 중건할 때 조 대비는 내탕금 10만 냥을 내놓기도 했다. 고종황제는 내탕금을 비밀리에 들여서 헤이그 특사 이 준, 이위종, 이상설 셋을 네덜란드까지 보낼 비용을 장만해 주었다.

비자금은 쓰이는 범위가 넓은 돈이다.

개인의 경우는 사뭇 다르다. 또 달라야 한다. 부부간에 돈주머니를 따로 차면 세간이 두 동강 나지 말란 법이 없다. 모으다 보면 점차 통이 커지는 속성을 지닌 게 비자금이다. 부부는 한마음 한 몸이라야 한다. 그러므로 돈줄도 의당 하나라야 할 것이며. /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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