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로 다가온 제주의 꽃들(38)

여름장마도 마른 장마로 지나가더니만 연일 폭염으로 밭작물은 물론이고 들판의 꽃과 나무들도 타는 목마름의 갈증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무더운 날에는 우리 사회 어느 한 구석에서라도 우리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소식이 들려오면 좋겠는데 들려오는 소식마다 우리의 마음을 더욱더 황폐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더운 여름 날.
지금이야 에어컨을 비롯한 각종 냉방기기로 무더위를 달래지만 옛날에는 정자나 나무그늘에 앉아 부채질을 하기만 해도 무더운 여름을 거뜬하게 날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전깃세를 축내며 또 다른 열을 방출해냄으로 결국은 우리의 여름을 더 덥게 만드는 인공의 기계들보다 훨씬 지혜롭고 시원한 피서법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 소개해 드리는 꽃은 '범부채'와 '애기범부채'입니다.

▲ 범부채.
법부채는 백합꽃과의 여러해살이풀로서 잎은 좌우로 편평하며 2줄로 부채살처럼 배열되어 있습니다. 꽃은 황적색 바탕에 짙은 얼룩점이 있는데 이 모양새가 마치 호랑무늬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범부채입니다.

마치 개구쟁이 아가들의 얼굴에 난 주근깨 같아서 앙증맞고, 아침 바람에 하늘거리며 흔들리는 모양새를 바라보면 어린 시절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곤하게 잠든 손주들에게 부채질을 해줄 때의 그 시원함이 느껴지는 것만 같습니다.

   
범부채는 새를 쏘는 사수의 (화살)과 모양이 비슷하여 '사간(射干)'이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뿌리는 약용으로 해열, 진통 등을 다스리는데 사용한다고 하니 무더운 여름 범부채의 이파리로 부채를 만들어 우리 마음에 부치면 우리를 짜증나게 만드는 모든 것들이 시원하게 해결된다면 좋겠습니다.

애기범부채는 범부채와 거의 비슷한데 꽃의 색이 좀더 진하고 무늬가 없다는 점이 다릅니다. 그리고 제주의 도로변이나 화단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애기범부채입니다. 범부채보다 약간 작은 꽃 모양새와 꽃을 달고 범부채는 꽃을 피우면 위로 향하는데 애기범부채는 아래로 고개를 숙이는 형상이 조금 다릅니다.

▲ 애기범부채와 배추흰나비.
꽃은 그런 것 같습니다.
아래로 향하고 있으면 겸손을 상징하는 듯 하고, 위를 향하고 있으면 이상을 상징하는 듯 합니다. 자연이라는 것의 속성은 결코 남을 해하는 일이 없으니 그렇게 보일 것입니다.

그런데 때로 자연의 일부이면서도 가장 반자연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고개를 숙이면 굴종같고, 고개를 들면 교만한 삶을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자연에서 멀어졌기 때문이겠지요.

오늘 자이툰부대의 선발대가 기어코 이라크로 떠났다고 합니다. 더러운 전쟁, 추악한 전쟁에 국익을 선양한다는 명목으로 떠났습니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그 안에 미국의 추악한 경제적인 계산이 들어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텐데 기어코 남들은 파병철회를 하고, 자국의 군인들을 철수시키는 마당에 우리는 그 더러운 물에 발을 담그기 위해 오늘 떠났습니다. 정말 자주국가인지 의문이 듭니다.

자연은 자기가 더 잘살기 위해서 남을 해치지 않습니다.
때로는 경쟁하며 살기도 하지만 그것은 더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고, 더 살찌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범부채와 애기범부채를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비록 작은 꽃이지만, 작은 이파리지만 우리를 힘들게 하는 모든 것들을 다 날려버릴 수 있는 평화의 부채, 행복의 부채를 만들어 이 무더운 여름, 우리를 더 덥게 만드는 모든 것을 날려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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