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로 다가온 제주의 꽃들(38)
여름장마도 마른 장마로 지나가더니만 연일 폭염으로 밭작물은 물론이고 들판의 꽃과 나무들도 타는 목마름의 갈증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무더운 날에는 우리 사회 어느 한 구석에서라도 우리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소식이 들려오면 좋겠는데 들려오는 소식마다 우리의 마음을 더욱더 황폐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더운 여름 날.
지금이야 에어컨을 비롯한 각종 냉방기기로 무더위를 달래지만 옛날에는 정자나 나무그늘에 앉아 부채질을 하기만 해도 무더운 여름을 거뜬하게 날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전깃세를 축내며 또 다른 열을 방출해냄으로 결국은 우리의 여름을 더 덥게 만드는 인공의 기계들보다 훨씬 지혜롭고 시원한 피서법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 소개해 드리는 꽃은 '범부채'와 '애기범부채'입니다.
마치 개구쟁이 아가들의 얼굴에 난 주근깨 같아서 앙증맞고, 아침 바람에 하늘거리며 흔들리는 모양새를 바라보면 어린 시절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곤하게 잠든 손주들에게 부채질을 해줄 때의 그 시원함이 느껴지는 것만 같습니다.
애기범부채는 범부채와 거의 비슷한데 꽃의 색이 좀더 진하고 무늬가 없다는 점이 다릅니다. 그리고 제주의 도로변이나 화단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애기범부채입니다. 범부채보다 약간 작은 꽃 모양새와 꽃을 달고 범부채는 꽃을 피우면 위로 향하는데 애기범부채는 아래로 고개를 숙이는 형상이 조금 다릅니다.
아래로 향하고 있으면 겸손을 상징하는 듯 하고, 위를 향하고 있으면 이상을 상징하는 듯 합니다. 자연이라는 것의 속성은 결코 남을 해하는 일이 없으니 그렇게 보일 것입니다.
그런데 때로 자연의 일부이면서도 가장 반자연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고개를 숙이면 굴종같고, 고개를 들면 교만한 삶을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자연에서 멀어졌기 때문이겠지요.
오늘 자이툰부대의 선발대가 기어코 이라크로 떠났다고 합니다. 더러운 전쟁, 추악한 전쟁에 국익을 선양한다는 명목으로 떠났습니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그 안에 미국의 추악한 경제적인 계산이 들어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텐데 기어코 남들은 파병철회를 하고, 자국의 군인들을 철수시키는 마당에 우리는 그 더러운 물에 발을 담그기 위해 오늘 떠났습니다. 정말 자주국가인지 의문이 듭니다.
자연은 자기가 더 잘살기 위해서 남을 해치지 않습니다.
때로는 경쟁하며 살기도 하지만 그것은 더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고, 더 살찌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비록 작은 꽃이지만, 작은 이파리지만 우리를 힘들게 하는 모든 것들을 다 날려버릴 수 있는 평화의 부채, 행복의 부채를 만들어 이 무더운 여름, 우리를 더 덥게 만드는 모든 것을 날려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 말입니다.
김민수 시민/객원기자
gangdoll@freech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