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시선] “사파리 아니다” 국감 답변 사업자 편들기 논란...진의는?

지난 9월 제주동물테마파크 사업자가 배포한 사업설명 자료. 좌측 상단에 'SAFARI PARK(사파리 파크)'라고 표기돼 있다.
지난 9월 제주동물테마파크 사업자가 배포한 사업설명 자료. 좌측 상단에 'SAFARI PARK(사파리 파크)'라고 표기돼 있다.

‘정치인 원희룡’은 달변가(達辯家) 보다는 다변가(多辯家)에 가깝다. 정가의 대체적인 평가가 그렇다. 깎아내리려는 게 아니다. 사전적으로도 다변가는 ‘입담 좋게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가치중립적인 표현이다.   

하지만 정치인으로서 ‘다변’은 양날의 칼이다. 박학다식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제 무덤을 파는 흉기가 되기도 한다. 정치인은 자신의 말에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말에 팩트상 오류가 있다면 치명적일 수 있다. 

맥락은 다르지만, 툭하면 ‘아무말잔치’가 벌어지는 여의도에서 이미 뱉어놓은 말을 주워담지 못해 곤욕을 치르는 정치인이 한 둘이 아니다. 물론 원희룡 지사를 이런 극단적인 부류로 분류하는 것은 천부당만부당하다.   

알쏭달쏭한 화법을 구사하는 여느 정치인과 달리 웬만해선 복선을 깔지 않는 솔직함이나 때론 즉문즉답도 마다않는 스타일은 원 지사의 장점 중 하나다. 이럴 땐 인간적 면모가 느껴지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사안을 꿰고있다는 자신감의 발로라고도 볼 수 있다.  

그래도 다변은 근본적으로 위험하다. 그 많은 말을 다 기억해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수석 인생’을 산 원 지사라고 예외가 아니다. 손바닥 뒤집듯 까지는 아니어도, 같은 사안을 두고 시점에 따라 말이 달라진 경우를 종종 봐왔다. 이럴 땐 애초 발언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된다. 

입을 닫을 수는 없다. 정치인, 특히 리더의 경우엔 한마디 한마디 신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너무 솔직한 것일까, 아니면 감추고 싶었지만 여러 국회의원 앞에서 예의를 차리느라 그만 속내까지 드러내고 만 것일까.  

주민 갈등이 첨예한 동물테마파크 사업과 관련해 원 지사가 국정감사장에서 내놓은 답변 몇마디가 환경단체와 주민들을 자극하고 말았다.  

지난 9월 제주동물테마파크 사업자가 배포한 사업설명 자료. 사업자는 사업설명 자료를 통해 사파리 시설을 도입한다고 밝혔다.
지난 9월 제주동물테마파크 사업자가 배포한 사업설명 자료. 사업자는 사업설명 자료를 통해 사파리 시설을 도입한다고 밝혔다.

발언의 핵심 요지는 동물테마파크가 사파리 형태는 아니라는 것이다. 람사르습지 지정 등 그간 중대한 상황 변화가 있었으니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한 의원의 질문에 응하면서다. 

동물테마파크는 제주시 조천읍 선흘2리 곶자왈 인근 58만㎡에 사자·호랑이·곰·코끼리 등 23종 524마리를 사육하고 관람하는 시설과 4층짜리 호텔 등을 짓는 사업이다. 눈·비가 많은 제주 중산간에 열대 맹수가 사는 동물원을 만든다는 발상 자체가 어처구니 없다는 비판을 비롯해 논란의 소지는 차고도 넘친다. 

처음에 이 사업은 조랑말 위주의 체험 시설로 출발했으나 2016년 대명그룹이 사업을 인수하면서 프로젝트의 내용이 확 바뀌었다. 현재 대명은 제주도의 사업계획 변경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문제는 대명 측도 사업의 성격을 사파리형 동물원이라고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추석 전 마을에 배포한 사업 설명 자료에도 ‘SAFARI PARK'(사파리 파크)라고 표시했다.  

동물테마파크 반대 측은 원 지사의 발언이 명백한 허위사실이라며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사업부지가 곶자왈이나 습지가 아니라는 답변도 성을 돋웠다. 사업자를 두둔한다는 오해 소지가 다분했다. 

반대 측은 사업 예정부지의 약 20%가 지하수보전지구 2등급으로서 곶자왈에 해당하며, 2018년 조천읍 전체가 세계 최초의 람사르습지도시로 지정된 점 등을 들어 도지사가 기본적인 사실 관계도 파악하지 못했다고 발끈했다. 이른바 팩트의 오류를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면서 원 지사가 거짓말을 통해 사업자를 도와주려는 것으로 의심했다.  

원 지사는 말미에 앞으로 찬·반 의견을 충분히 듣고 결정하겠다며 신중모드를 취했으나, 버스는 떠난 뒤였다.   

원 지사의 이번 발언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홍길동과는 반대의 경우다. 사업자도 고백한 사파리를 사파리라 부르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복잡한 감정이 교차했다. 

나름 사파리의 개념을 정확히 짚고 넘어가자는 의도였다면 또 모르지만, 이건 단순히 다변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논설주간/상임이사>

* 소리시선(視線) /  ‘소리시선’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편집자]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