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연구소 학술대회...이재승 교수 “분단 극복 위해 봉기 가담자 품어야”

2001년 제주4.3희생자를 구분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예비검속 희생자들의 피해를 인정한 법원 최근 결정과 상충된다는 지적이다. 나아가 ‘화해와 상생’으로 나아가는 4.3의 역사에 있어 사실상 걸림돌이 된다는 비판도 나왔다.

제주4.3연구소는 11일 오후 아스타호텔에서 제주4.3 제71주년 기념 학술대회 <4.3희생자 배제와 포용>을 개최했다.

이번 학술대회는 4.3희생자 영역에서 배제된 집단을 정부와 사회가 포용하는 방법을 고민하기 위한 자리다.

참가자들은 국내 민주화보상법, 독일의 나치보상법, 반군과 갈등이 깊었던 콜롬비아·페루 등 남미, 내전을 치른 베트남 등 국내외 다양한 사례를 살펴봤다. 이를 반면교사 삼아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민중을 보다 넓게 ‘4.3희생자’로 아우르는 상상력을 고민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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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연구소는 11일 학술대회 '4.3희생자 배제와 포용'을 개최했다. ⓒ제주의소리

학술대회는 1부와 2부로 나눠 진행했다. 1부는 ▲희생자 인정에서 위계[位階](발표 : 이재승 교수, 토론 : 고웅 변호사) ▲승전의 그늘-베트남전 기념과 애도의 정치(심주형, 심아정) ▲4.3과 재일 제주인 재론[再論]-분단과 배제의 논리를 넘어(문경수, 허호준)까지 세 가지 주제발표와 토론으로 이어졌다. 2부는 4.3희생자 배제자 유족들의 이야기를 듣는 순서다.

참가자들은 2001년 헌법재판소가 정한 4.3희생자의 범위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않은 현실을 문제 삼았다. 국가범죄, 인권의 차원에서 희생자 인정을 고려한다면, 새로운 화합의 가치를 만들 수 있다고 조언했다.

# 희생자에 대한 정의

이재승 교수(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는 각종 법령부터 해외 사례까지 찬찬히 망라하며 4.3희생자 규정이 개선돼야 함을 강조했다.

그는 한 사회가 ‘상대’를 적으로 볼지 쓰레기로 취급할지 나누는 기준이 ‘정치적 위계’라고 봤다.

이재승은 “정치적 위계는 상대를 정치적 경쟁자 또는 박멸의 대상으로 볼 것인가에 의존한다. 프랑스와 같이 공산당 자체를 합법화하는 경쟁적 정치질서라면 정치적 위계는 미약하게 작동한다. 나치에 저항했던 공산당원은 사상을 이유로 레지스탕스로서의 명예를 거부당하지 않을 것”이라며 “반면, 좌익을 체제의 적으로 불온시하는 적대적 정치가 자리 잡은 사회에서는 강고한 위계가 작동한다. 남로당, 진보당, 혁신계 정당, 통진당 해산과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의 적용사가 이를 증명한다”고 예를 들었다.

더불어 “적대 세력을 산출하는 기제들이 잘 직조돼 있는 사회에서는 좌익계열의 피해자와 그 유족들은 자신의 존재를 거부당한다. 한국전쟁 전후에서 널리 관행화된 양민과 폭도는 이렇게 희생자를 구별하는 개념이 됐다”며 “한국에서 이행기(移行期, 다른 상태로 옮아가는 시기) 정의는 바로 이러한 위계의 해체를 통해서만 완성된다. 제주4.3사건에서의 ‘적극적 봉기자’의 인정 문제는 이행기 정의에서 결정적인 시금석”이라고 자신의 주장을 요약했다.

이재승은 적극적 봉기자를 ‘2001년 헌법재판소가 제시한 4.3희생자 배제 그룹’이라고 규정했다.

헌법재판소는 2001년 9월 27일 ‘수괴급 공산무장병력지휘관 또는 중간간부로서 군경의 진압에 주도적·적극적으로 대항한 자, 모험적 도발을 직·간접적으로 지도 또는 사주함으로써 제주4.3사건 발발의 책임이 있는 남로당 제주도당의 핵심간부, 기타 무장유격대와 협력해 진압 군경 및 동인들의 가족, 제헌선거관여자 등을 살해한 자, 경찰 등의 가옥과 경찰관서 등 공공시설에 대한 방화를 적극적으로 주도한 자와 같은 자들은 희생자로 볼 수 없다’고 결정했다. 정부는 이를 근거로 4.3희생자 명단을 결정지었다.

이재승은 ▲국제형사법의 근간이 되는 유엔선언 내용(피해자[victim]는 가해자와의 가족 관계를 따지지 않고, 동시에 희생자의 정치적 의견에 상관없이 희생자도 인정된다) ▲삼청교육대, 급진적 통일운동, 동의대 사건 등을 제외하며 순수한 민주화운동이라는 제한적인 틀을 비판받은 민주화보상법 ▲폴란드인, 탈영병, 병역거부자, 강제노동자, 강제불임자 등은 제한한 독일 나치보상법 ▲내전 당시 전복세력의 구성원까지 희생자로 인정하나 보상대상자에서는 제외한 페루 ▲시민운동가뿐만 아니라 반역죄인, 테러리스트 집단도 인권법 적용을 인정하는 미주인권법원 등을 예로 들며 희생자의 개념을 나열했다.

# 헌법재판소의 4.3희생자 결정 “폭력 정당화”

이재승 교수는 4.3사건 희생자를 구별한 18년 전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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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발표 중인 이재승 교수. ⓒ제주의소리

▲항쟁가담자 개인에 대해 유무죄를 밝히는 사법적 판단을 내리지도 않고,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입각해 위로부터 이들을 집단적으로 배제함 ▲헌법재판소가 나중에 고착된 분단 체제의 이데올로기와 1958년 헌법에 존재하지 않고 유신헌법에서 처음 도입돼 현재까지 이어지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4.3사건 당시에 소급해 적용한 것은 거지논법 ▲국가중심적 관점에 편중돼 학살의 구체적인 피해와 피해자의 트라우마를 고려하지 않음. 더불어 이행기 정의에서 지역적 공동체 차원의 노력, 화해와 상생을 배격함으로써 역사적 퇴행을 강조 ▲집단적 폭력의 본질과 전개 양상 및 4.3사건의 역사적 전개상황을 전적으로 무시 ▲항쟁자들의 정치적 목표가 특정한 정치질서의 거부가 아니라 고착화 돼가는 국가분단의 거부라는 점을 평가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이 공산정권을 지지했다고 단호히 평가 ▲과거사정리위원회 결정을 근거로 예비검속 살해 피해자들의 유족에게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한 2015년 법원 판단과 비교하면,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차별금지원칙에 반함(동일한 사태의 관련자들 중 일부에게는 구제를 제공하고 일부에게는 가해자라는 이유로 배제) 등을 꼽았다.

여기서 차별금치원칙은 UN 인권피해자 권리장전 제25조에 근거한다. 권리장전에는 ‘이 기본원칙과 가이드라인의 적용과 해석은 국제인권법과 국제인도법에 일치해야 하고, 이유를 불문하고 예외없이 온갖 유형의 차별을 허용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한다.

이재승은 “헌법재판소의 배제 결정은 4.3사건법이 추구하는 화해와 상생을 배격하고 국가폭력을 정상화했다”면서 “헌법재판소는 ‘순수한 희생자’(innocent victims) 범주를 과도하게 적용함으로써 피해자를 더욱 피해자화하고 4.3사건의 정당한 봉기의 측면도 외면하고, 집단살해에 해당하는 국가범죄도 백안시하고, 오로지 공권력의 과도한 행사라는 수준에서 합리화했다. 이 같은 합리화와 이에 입각한 배제적 해법은 당시 폭력적 지배를 전반적으로 정상화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재승은 4.3희생자 인정·보상 관행에 대한 개선안을 다섯 가지 제시했다. ▲적극적 봉기자를 희생자로 인정하고 상징적 보상에만 반영(평화공원 각명비, 위령비 및 각종 기념시설에 희생자로 기록) ▲적극적 봉기자를 보상대상자로 인정하지만 그들의 심각한 인권침해행위를 증명할 수 있는 한에서 보상액을 감액하는 방안 ▲적극적 봉기자에게 희생자 지위를 인정하고 유족에게는 연관피해(간접·직접 피해)를 고려해 완전한 보상을 인정하는 방안 ▲적극적 봉기자를 국가범죄의 피해자로 구성하고 완전한 보상을 제공하는 방안 ▲적극적 봉기자를 정당한 저항자로 인정함으로써 일정한 영예를 부여하는 방안이다.

특히 적극적 봉기자에 대해서는 "이들의 정치적 대의-압제에 대한 저항, 분단거부와 통일지향의 민중항쟁-를 인정하게 된다면, 이들은 국가폭력의 피해자성을 넘어 정당한 봉기자로서 명예를 얻게될 것이다. 여기서 적극적 봉기자들의 위상은 반란범죄자에서 국가폭력 피해자로, 다시 정당한 저항자로 변모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마지막 단계는 자유민주주의에 입각한 적대적 정치의 해체와 함께 도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재승은 “제주4.3사건은 정당한 봉기라는 측면을 가지고 있으며, 정치적·역사적 평가의 전회를 통해 분단에 대한 민중항쟁으로 자리 잡을 여지가 있다”면서 “정치사회학자들의 표현에 따르면 4.3사건은 이데올로기적 좌우에 입각한 학살로서 정치적 제노사이드다. 당시 국제법(뉘른베르크 재판소헌장)에서 제노사이드는 독립죄목이 아니라 인도에 반하는 죄의 대표적인 유형으로 간주됐다”고 4.3의 국가폭력을 문제 삼았다.

또 “정부 당국이 해안선에서 반경 5km 바깥쪽에 있는 사람들을 무조건 살상하라는 초토화명령을 발표하고, 대규모 학살을 자행했다는 점에서 4.3학살은 인도에 반한 죄에 해당한다. 그들은 무장대원이거나 도피자라는 이유로 교전과정에서 죽고, 사로잡혀도 죽고, 투항해도 죽는 상황에 저항할 수 밖에 없었다”면서 “따라서 4.3사건은 국제인권법의 총체적 위반, 국제인도법의 심각한 위반으로서 전형적인 국가범죄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미군정과 한국 정부는 봉기자와 그 동조자들을 하산시키는 정치적 노력 없이 제주도를 빨갱이 섬으로 낙인찍고, 제주도민을 체제의 적으로 규정하며 적대 정치를 관철시켰다”며 “분단의 극복이 유의미한 정치의 열망이라면, 70여 년 전의 저항과 봉기에 가담한 희생자들의 목소리에 시민권을 부여해야 한다. 4.3사건과 관련해 죽은 사람이라면 모두 평화공원에서 4.3사건의 희생자로서 영혼의 안식을 누려야 한다. 애도에서의 차별은 금지돼야 한다”고 보다 폭넓은 화해와 상생 정신을 피력했다.

# 내전의 상처 베트남과 재일제주인

심주형(인천대 중국학술원)은 베트남전 사례를 들며 한때 적이었던 상대를 인정하고 포용하는 자세를 중요히 여겼다.

그는 “남베트남에는 1954년 제네바 회담 이후 북부에서 100만 여명이 이주해 왔기 때문에 프랑스에 대한 항전으로부터 기원하는 ‘민족해방 항전’의 역사와 친족 관계 모두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실제로 남베트남의 전쟁 희생자 가족들의 경우 ‘이쪽 편’과 ‘저쪽 편’ 영령들을 모두 한 재단에 모시고 향을 피우는 경우도 많다”며 “사실상 전쟁의 희생자들을 여전히 과거의 정치적 관계에 근거해 분리하고 근본적인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은, 살아남은 사람들과 미래세대를 혈연적 혹은 계보적으로 분리하는 효과를 낳을 수 밖에 없다”고 베트남 사례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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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발표 중인 심주형. ⓒ제주의소리

문경수(일본 리츠메이칸대학) 교수는 남한, 북한, 일본의 경계에서 살아가는 ‘재일조선인’들의 사례를 통해 탈분단 시대에 필요한 정의가 무엇인지 제안했다.

그는 “4.3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진전되지만, 명예회복의 대상이 된 것은 ‘빨갱이’ 낙인이 찍혀서 희생된 압도적 다수의 무고한 도민들이었고, ‘항쟁 지도부’는 4.3위원회가 정한 희생자 인정 기준으로부터 배제돼 있다”며 “다른 한편, 학살의 장본인이라 할 수 있는 군인이나 경찰에 대해서는 법제처가 ‘군인 및 경찰도 해방 전후의 혼란스러운 이데올로기 대립 과정으로 발생한 희생자의 범위에 포함된다’고 판단했고 4.3위원회도 이를 따른다”고 상반된 인식을 비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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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발표 중인 문경수 교수. ⓒ제주의소리

문경수는 “항쟁 지도부도 희생자로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이라는 이데올로기에 ‘항쟁설’이라는 별도의 이데올로기를 대치하려는 것이라면 제주사회의 분단과 균열은 피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항쟁 지도부의 희생자 인정 문제와 ‘정명’ 문제는 위상을 달리한다고 보아야 한다”면서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재일 동포사회의 현실은 남북화해가 추진되는 오늘의 상황을 선취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가 대치하는 냉전시대의 논리는 오늘의 탈분단 시대에 걸맞은 ‘정의’의 논리로 대체돼야 한다”고 재일 동포사회를 분단 극복의 롤모델로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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