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교육 칼럼] 5. 학교 밖에서 제주를 논하다(下)

 

틀림이 아니라 다름이다. '학교밖청소년'에 대한 우리사회의 시선은 여전히 비뚤어졌다. 패배자, 문제아, 혹은 낙오자…. 그들에게 붙는 왜곡된 꼬리표다. 제도권 학교를 떠났어도 학교밖청소년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꿈을 찾아 끊임없이 날개를 펴려 한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대안교육 현장 전문가의 목소리를 통해 학교밖청소년 이야기를 연재한다. [편집자 글] 

 

학교밖청소년들에 대한 제도적 지원 문제는 돈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당국 의지의 문제라는 지적이 높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학교밖청소년들에 대한 제도적 지원 문제는 돈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당국 의지의 문제라는 지적이 높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성장기가 행복했던 아이들은 성장해서도 행복하다는 것이 이미 수많은 연구들의 결과로 증명됐다. 행복감의 근원은 자존감에서 비롯된다는 이야기도 한두번쯤은 들어본 이야기다. 제주에서 자라면서 제주사람으로서 자존감을 갖고 행복감을 만끽한 아이들은 어떤 어른으로 성장해갈까? 성장기 아이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학교생활은 그래서 중요하다. 

‘1등만 행복한 것이 아니라 나머지 99명도 행복한 교육’ ‘상위 1%만이 아니라 99% 아이들도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교육’ 이런 말들의 상찬은 세상에 차고 넘친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보자. 정말 그러한가? 이젠 말뿐이 아니라 실제 이런 교육으로의 전환이 시급하다.

대안교육은 태동하던 때부터 아이들의 자존감에 주목하고 행복한 배움터를 만들기 위해 많은 애를 써왔다. 물론 그렇다고 지금의 대안교육이 완벽하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다만 최소한, 기존 제도권 교육이 대안교육을 주목했을 만큼의 결과들을 얻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서울특별시는 올해 1월  ‘2019년 학교 밖 청소년 종합지원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에 따르면 기존 비인가 대안학교를 ‘서울형 대안학교’로 흡수하고 시비 지원을 기존 전체 운영비의 40%에서 70%까지 확대해  대안학교 학생 1인당 연간 교육지원비가 공교육비 942만 원에 준하는 수준인 880만 원(기존 1인당 500만 원)까지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본인도 학교 밖 청소년이었음을 상기시킨 경기도 이재명 도지사는 “학교 밖 청소년에 공정한 기회를 주는 것이 우리 사회의 책임”이라며 도 관계자들에게 특단의 대책을 주문했다. 경기도는 올해 비인가 대안학교 아이들에게도 교복비부터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여러 지원 정책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왜 서울과 경기도는 대안교육에 주목하기 시작했을까? 깊이 상고할 대목이다. 
한편 제주의 사정은 어떠한가? 서울과 경기도의 사례들을 열거해가며 행복한 교육으로의 전환이라는 측면에서 대안교육의 필요성과 그에 따른 지원 문제를 줄줄이 설명하고나면 제일먼저 재정자립도와 경제규모 등의 차이를 이유로  “제주는 서울이나 경기도와는 사정이 다르지 않느냐?”는 현실론을 맞닥뜨리게 된다. 하지만 이런 식이라면 제주는 늘 서울과 경기도의 뒤꽁무니만 쫓아가야 한다. 서울의 대안학교는 80여 곳이 훨씬 넘지만 제주는 그것의 10분의1도 안된다. 경기도와 비교하면 아마 20분의1도 안될 것이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는 아닐까?

제주도 교육청의 입장은 또 어떠한가? “학교 안에 있는 아이들은 교육청 소관이지만 학교 밖 아이들은 교육청 소관이 아니”라는 입장에서 지금껏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아왔다. 그럼 그동안 비인가 대안학교 아이들에게 의무 취학 대상이기에 교육청 및 각 학교 관할이라며 시도때도 없이 연락을 해왔던 것은 과연 누구였던가? 

청소년 복지와 관련한 사무는 도청 소관이지만 ‘교육과 학예’에 관한 사무는 교육청의 소관업무다. 학교 밖 청소년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며 이들의 복지 관련해서는 도청이 관할하듯 학교 밖 청소년의 교육문제는 교육청 책임이 맞는 것이다. 그러니 대안교육기관의 교육관련 담당 사무도 교육청 소관이다. 서울과 경기의 교육청들이 학교밖 청소년과 비인가 대안교육기관을 어떻게 지원하고 있는지 벤치마킹이라도 해주면 좋겠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올해 2학기부터 비인가 대안학교에 친환경 무상급식 지원을 시작했다.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고 환영할 일이다. 그런데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다'는 말이 있다. 무상급식 지원을 받으려면 도가 요구하는 조건들을 충족시켜야 하는데 과연 그 조건들을 충족시킬 학교가 몇 군데나 될까.  

대안학교보다도 먹거리에 더 엄격해야 할 어린이집도 50명 미만일 경우에는 조리사 자격증까지 요구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50명도 안되는 대안학교들에게, 꼭 직접 조리를 할 것과, 조리시설을 일정 정도 이상 갖출 것, 게다가 조리사 자격증까지 반드시 갖출 것을 원칙적으로 요구했다. 물론 복잡한 각종 요구 서류들은 덤이다. 이번엔 적용 첫 학기라 일부 예외를 인정해주었지만 내년부터는 이 조건들을 다 충족시켜야만 한다. 최저임금 수준의 교사급여도 겨우겨우 감당해나가고 있는 판국에 자격증을 갖춘 조리사를 채용하라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 

제주에 있는 한 대안학교는 자립을 주요 교육철학으로 두고 아이들 스스로 장작불을 때가면서 아궁이에 밥을 해먹는다. 그러기에 지원신청을 하지 못했다. 다른 어떤 학교는 큰 단체의 부설 학교라서 300여명이 동시에 식사를 할 수 있는 대형 급식 시설을 갖추고 있으나 ‘친환경 무상급식’을 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소수의 아이들만을 위한 식단을 별도로 꾸릴 수 없어 한참을 망설여야했다. 또 다른 어떤 학교들은 도시락을 싸오거나 부모님들이 돌아가면서 반찬을 보내는 방식이어서 직접 조리를 하지 않아 주저해야만 했다. 어떤 학교는 도에서 요구하는 다른 조건을 웬만큼 충족시키지만 학교가 처음 세워질때부터 동고동락해온 조리선생님을 단순히 조리사 자격증이 없다는 이유로 내보낼 수 없기에 내년에는 아예 포기를 해야할까 고민한다. 

제주도의 행정이 공무원의 보신(保身)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제주도민을 위한 것이라면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으로 해결책을 찾아주면 좋겠다. 사실 다른 지자체의 사례에서는 이 정도의 요구를 하는 곳은 없다.

관료주의 풍토는 어제 오늘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렇기에 이를 견제하고 새로운 정책의 든든한 밑바탕이 되어줄 제도를 마련하기 위해 의회가 있는 것이겠다. 제주특별자치도의회 교육위원회 소속 송창권 의원이 대표 발의한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 학교 밖 청소년 교육지원 등에 관한 조례’가 지난 9월 도의회에서 통과됐다. 보건복지안전위원회 소속 김경미 의원 역시 ‘제주특별자치도 학교 밖 청소년 교육·복지 지원 조례’ 개정안과 ‘제주특별자치도 대안교육기관 지원 조례’ 제정을 준비하고 있다. 

조례는 현행 법률로 다 해결하지 못하는 일종의 사각지대를 보완하는 것에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조례마저 상위법이 없다는 핑계로 관료주의적 판단에 그친다면 지자체에 더 이상 기대할 것은 없게 된다.  

이제 곧 서울형 대안학교가 본격화되면 서울에서는 거의 무상에 가까운 교육비만으로도 대안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렇게되면 경기도가 곧 그 뒤를 이을 것이다. 제주에 여유로운 삶을 바라며 이주했던 이들도 대안교육을 쫓아 다시 유턴할 수도 있고, 제주 사람도 대안학교를 가기 위해 서울로의 유학도 마다하지 않게 될 수도 있다. 최근에 서울시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는 서울의 대안학교 학생을 제주 대안학교 교환학생으로 보낼 계획까지 세우고 있다하니 그들의 큰 그림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지방소멸의 문제를 서두에서 언급했다. 그 해법은 제주의 앞날을 이어갈 아이들의 시선에서부터 찾아야 한다는 일반론에 입각한 이야기도 언급한 바 있다. 바라기는 그 중 일부는 학교 밖 청소년들의 시선도 포함돼있다는 사실을 늘 인식해주었으면 한다.

# 유양희는?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했다. 평범한 목회자의 길을 택하기에는 공부가 체질이 아니란 자각을 거쳐 종교전문언론 기자로 바로 현장에 뛰어들었다. 언론 현장 역시 녹록치 않아 흘러 흘러 식품산업 전문지 <식품음료신문> 차장대우를 끝으로 짧은 기자 생활은 마무리 지었다. 시골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어 간디학교에서 대안학교 교사양성과정을 거쳐 경기도 파주시와 고양시에서 대안학교 교사 생활을 10년 가까이 했다. 새로운 길을 간다는 건 그만큼 실패를 염두에 뒀어야 하는데, 10년 끝에 맛본 좌절로 훌쩍 떠나고 싶어 제주 이주 열풍에 슬쩍 몸을 실었다. 이제는 제주의 보물섬학교 부모 입장에 서서 대안교육운동을 복기하고 있다. 이와 함께 보물섬교육공동체의 간사 일과 제주대안교육협의회 간사를 맡아 학교밖청소년의 교육기본권 보장을 위한 생각들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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