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광의 제주 산책] 11. 천도와 인도

며칠 전 한림읍 금악리에 ‘탐나라공화국’에 다녀왔다. 

지인의 소개로 처음 갔을 때는 늦봄이었는데, 어느덧 억새가 자랄 때로 자랐고 메밀꽃도 이제 지고 있는 가을의 속살을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달이 휘영청 떠있으면 섬으로 이사 온 나의 영혼은 외롭고 적적하며 또한 무심해지기 까지 했다. 때마침 초청을 해온 그곳에선 ‘노자처럼 살자’의 세미나였다.

어떻게 살아야 노자(老子)처럼 사는 것인가?

노자(초나라 때)는 이 시대에 무엇을 이야기 하고 무엇을 꿈꾸어야 하는가 하는 말도 생소했다. 때마침 점심이 되어 탐나라공화국 강우현선생은 이런 제안을 했다. “그때 2500년 전, 노자가 살았던 그때처럼 점심을 먹읍시다. 고구마. 감자. 옥수수. 호박잎 그리고 조와 쌀을 넣은 죽 한 그릇, 그것으로 족하지 않습니까……”하며 파안대소하였다.

얻어먹는 처지에 같이 웃을 수밖에 없는 그 날의 모임 자들은 오전에 노자이야기와 자기소개 그리고 중국의 화가가 가져온 커다란 화폭의 노자상(像)까지 들고 왔고 이런저런 파안대소를 나누었다. 

그렇게 노자처럼 먹자고 한 것과 더불어 인근 해녀들이 따온 미역국도 상에 올려놨다. 멀리서 보내온 육지 송이버섯도 몇 개 올라 사람들의 마음을 흐뭇하게 했다. 중국 노자의 탄생지에서 온 학자들에게 후한 대접이 되었다.

보여주는 것은 찬바람에 갈대꽃과 억새가 나부끼는 들녘이었고 또 따스한 햇볕 아래 도란도란 차담(茶談) 이었지만, 노자가 보았다면 “웃기고 있네” 하고 빙긋이 웃을 일이었다.

그렇게 오후까지 모두 이런저런 아름다운 노자의 사상과 도덕경의 명구를 외우며 덕담을 나눴다. 하나의 태마가 묻을 거쳐 섬까지 오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대륙의 문화가 아닌 동양철학의 한줄기 획을 그은 ‘노자처럼놀자’의 세미나가 바위돌과 바람 그리고 맑은 하늘과 해풍의 언덕바지인 곳에서 성대해진 것이다.

들은바 대로라면 노자의 묘는 없단다. 공자묘는 있는데……. 그는 5000여 글자의 노자 도덕경을 남기고 신선이 되어 사라졌다는 전설인데, 노자의 공부를 학부시절에 귀동냥하였던 때와 귀밑머리가 희끗한 지금 노자 이야기를 들으니 감홍이 새롭다.

이 가을에 노자 이야기는 역시 천도와 인도(天道, 人道)의 넉넉한 조화로움을 말하는 것으로 결말이 난다. 제공=정은광. ⓒ제주의소리
이 가을에 노자 이야기는 역시 천도와 인도(天道, 人道)의 넉넉한 조화로움을 말하는 것으로 결말이 난다. 제공=정은광. ⓒ제주의소리

그는 도(道)에 대해서 심오한 뜻을 전했다 하는데 그중 하나 인간에게 본질적인 관계는 인도(人道)와 천도(天道)의 관계라고 했다. 삶과 사회의 모든 관계는 인간의 도리와 하늘의 도리 관계에 포함되어 있으며, 하늘의 그물은 넓고도 넓어 듬성하지만 새어나가지 않는다고 말을 전하는 것이다. 천망회회 소이부실(天網恢恢 蔬而不失)의 의미이다. 

다시 설명하자면 하늘의 도는 우주자연으로 체계가 형성해나가는데, 사람의 도는 그 안에 무위자연과 아울러 하늘도 크고 땅도 크고 사람도 역시 크다는 말과도 통한다. 아마 천자문의 우주홍황(宇宙洪荒) 첫 글자가 바로 노자의 이론인 듯하다.

이 가을에 노자 이야기는 역시 천도와 인도(天道, 人道)의 넉넉한 조화로움을 말하는 것으로 결말이 난다.

즉, 하늘에는 하늘에 도(道)가 있어 비, 구름, 바람, 눈보라, 따스한 빛 등의 자연이 인간을 이롭게 하거나 또는 자만하지 않게 하고, 사람의 도(道)는 사람의 차별과 우열 강자와 약자 등의 차이로 부족함이 있지만 조화롭게 우주자연의 무심함처럼 받아들이는 마음도 포함되어 있다. 

무위이 무불위(無爲而 無不爲)의 뜻을 이 시대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받아 들이냐는 문제다.

# 정은광은?

정은광 교무는 원광대학교에서 원불교학을 전공하고 미술과 미학(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원불교 사적관리위원과 원광대학교 박물관에서 학예사로 근무하며 중앙일보, 중앙sunday에 ‘삶과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다년간 우리 삶의 이야기 칼럼을 집필했다. 저서로 ‘그대가 오는 풍경’ 등이 있다. 현재 원불교 서귀포교당 교무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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