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141. 좋았던 후유증 생전 간다

* 좋아난 : 좋았던
* 더을(더흘) : 후유증

사람은 환경에 대단히 민감한 동물이다. 실제 현실과 일상 속에서 삶을 영위하다 보면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환경에 강한가 약한가, 적응하느냐 그러지 못하느냐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강약과 위‧불위(爲不爲)는 삶속에서 행과 불행으로 갈리기 때문이다.
  
‘금수저’로 태어나 평생 부(富)를 누리는 가운데 호강하며 살 수 있으면 좋은데, 그렇게 뜻대로 되지 못하는 것이 인생이다. 희로애락으로 점철되는 게 인간사 아닌가. 잘 살던 사람이 못 살기도 하고, 못 살던 사람이 언제부터인가 잘 살게도 된다. ‘팔자 고쳤다’ 함은 곧 인생 역전을 뜻하는 말이다. 이해득실, 성공과 실패, 희망과 절망이 수없이 교차하기도 하는 게 인생이란 얘기다.

문제가 있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최상의 환경에서 호의호식하며 살아온 사람이 갑자기 불행한 처지가 되는 경우다. 인생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 하지 않는가.
  
이럴 때, 홀연히 바뀐 좋지 않은 환경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 십상팔구 좌절한 나머지 절망의 구렁에서 헤매게 된다. 호강하던 사람에게는 애초 급작스러운 변화를 버틸 수 있는 ‘근육’이 없다. 인내력도 자생력도 없다. 일하지 않고 놀고먹던, 힘들이지 않고 떵떵거리던 버릇이 몸에 배어 있거나 그냥 눌어붙어 있으니 도리 없는 일이다. 
  
실패의 원인을 찾아 방책을 마련해 재기하려고 자신을 일으켜 세워야만 한다. 한데 기사회생이 쉽지 않다는 말이다. 이것은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니다.

‘좋아난 더을 생전 간다.’

어렸을 적부터 풍족한 가운데 분수 모르고 자라 젊은 시절을 멋대로 생활했던 사람, 행여 순풍에 돛 단 듯 잘 나가면 하려니와 어려운 처지가 되면 곧바로 무너져 내리는 수가 허다하다. 깜냥으로 감내할 힘이 없는 탓이다. 

온상의 화초에게는 들판에서 무서리를 맞으며 꽃을 피우는 들풀 같은 야성(野性)이 없다. 태풍도 아닌 초가을 소슬바람에도 시들어 버린다. 버팀목이 없는 한 그루 나무는 얼마나 불안한가, 위태로운가.

그렇다면 잘 산다고, 많이 가졌다고 으스댈 것만도 아니다. 뜻하지 않은 수난 앞에 쉽게 주저앉아서는 안되는 게 사람의 한 생이다. 좋았던 때의 넉넉하게 먹고 쓰던 습관이 후유증으로 남아 사람을 한없이 나약하게 만든다는 말이다. ‘생전 간다’는 것은 몸에 일단 배어 버리면 고질(痼疾)이 돼 고치지 못한다는 뉘앙스다.

요즘 개천에서 용이 안 난다고 어둡고 무거운 소리들을 한다. 그렇기만 한 세상이 아니라 생각한다. 끈기 있게 시종여일 성취에 매달려 인생의 목표를 이루는 젊은이들도 적지 않은 세상이다. 
  
비근한 예로 신인 가수 탄생에서도 그 예를 본다.

KBS 1TV <아침마당> 수요일은 ‘도전 꿈의 무대’로 가수 등용문이다. 노래 대결로 1승, 2승… 하며, 승수 5승을 거두면 작곡가로부터 곡을 받고 가수가 된다. 무명의 시간을 접고 기성가수로 태어나는 순간이다. 얼마나 감격적인가. 신수가 확 달라질 것은 불 보듯 한 일.

오늘, 일요일 ‘전국노래자랑‘을 보는데, 그 큰 무대에 오른 가수가 어디서 본 듯 낯익어 유심히 뜯어보는데, 그가 바로 ’진해성‘이 아닌가. 바로 ’도전 꿈의 무대‘에서 5승을 거뒀던 그였다. 몰라보게 변신해 있었다. 차림새가 세련되고 얼굴도 때 빼고 광내고 있어 어리둥절할 지경이었다. 

그가 바로 개천에서 태어난 용이다. 큰 박수를 보냈다.

그 큰 무대에 오른 가수가 어디서 본 듯 낯익어 유심히 뜯어보는데, 그가 바로 ’진해성‘이 아닌가. 바로 ’도전 꿈의 무대‘에서 5승을 거뒀던 그였다. 몰라보게 변신해 있었다. 사진은 올해 9월 대전MBC '가요베스트'에 출연한 진해성. 출처=대전MBC 유튜브. ⓒ제주의소리
그 큰 무대에 오른 가수가 어디서 본 듯 낯익어 유심히 뜯어보는데, 그가 바로 ’진해성‘이 아닌가. 바로 ’도전 꿈의 무대‘에서 5승을 거뒀던 그였다. 사진은 올해 9월 대전MBC '가요베스트'에 출연한 진해성. 출처=대전MBC 유튜브. ⓒ제주의소리

사람 나름일 것이다. 다만, 이 말 속에 숨어 있는 본뜻을 제대로 깨달아야 한다. ‘좋았던 후유증 생전 간다.’ 생전 가지 않게 자신을 다스릴 일이다. 사람의 삶은 치열한 것이다. /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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