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 제주4·3-여순항쟁 71주년] ⑤ 여순사건 희생자 합동추념식 4·3도민연대 및 유족회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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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시와 여순사건 지역민 희생자 지원사업 시민추진위가 지난 19일 오전 11시 전남 여수 이순신광장에서 개최한 '제71주년 여순사건 희생자 합동 추념식' 현장. 송승문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을 비롯해 일동 묵념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71년 전 현대사 최대 비극에 함께 휩쓸렸던 제주와 여수·순천. 아직 우리는 그 역사를 '4·3사건'과 '여순사건'이라는 미완성된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10월19일 청명한 가을하늘 아래 '여순사건'으로 인한 희생자 영령을 기리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제주4·3의 상징과도 같은 애기동백꽃 모양의 여순사건 추모 배지를 달고 마음을 모았다.

제주4·3유족이 단 제주4·3 동백꽃 배지(위)와 여순사건 동백꽃 배지. ⓒ제주의소리

여수시와 여순사건 지역민 희생자 지원사업 시민추진위원회가 지난 19일 오전 11시 전남 여수 이순신광장에서 '제71주년 여순사건 희생자 합동 추념식'을 열었다.

추념식 시작에 맞춰 올해 처음으로 여수 전역에 1분 간 묵념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이날 오후 2시 순천에서도 여순사건 추모의 시간을 가졌다. 전남도와 여순항쟁유족연합회가 순천시 장대공원 야외무대에서 '여순항쟁 민간인 희생자 합동 추념식'을 거행한 것.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 19일 여수 제14연대 소속 군인들이 제주 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고 봉기한 사건으로, 여수·순천 일대를 거쳐 전남 동부까지 확장한 이들 세력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민간인과 군경이 숨졌다.

여순사건 희생자 유족들도 제주4·3과 마찬가지로 동백꽃을 희생의 상징으로 삼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동백꽃은 여수시의 상징 꽃이고 꽃말은 사랑이다. 여수시는 지난 4월 여순사건의 아픔과 갈등, 후손들의 화해를 그린 웹드라마 '동백'을 발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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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시와 여순사건 지역민 희생자 지원사업 시민추진위가 지난 19일 오전 11시 전남 여수 이순신광장에서 '제71주년 여순사건 희생자 합동 추념식'을 열었다. ⓒ제주의소리

추념식에는 제주4·3도민연대와 제주4·3희생자유족회 80여명을 포함해 여순사건 유족회원, 안보·보훈단체 회원, 지역 정치인, 시민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

제주4·3도민연대는 제주4·3과 여순항쟁 71주년을 기념해 지난 17일부터 2박 3일 동안 여수와 순천을 순례하고 이날 추념식에 참여, '쌍둥이사건' 여순사건에 연대의 힘을 불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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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생존수형인 오희춘 할머니. ⓒ제주의소리

제주4·3사건으로 전주형무소에 수감됐던 생존수형인 오희춘(89) 할머니도 이날 추념식을 찾아 형무소에서 만난 여순사건 희생자 분들과의 기억을 되살려내기도 했다.

오 할머니는 "살아서 여순 사건 합동추념식까지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여순사건에 대해서는 형무소에 가 있을 적 형무소 내 죄수복 제작 공장에서 일하며 여수, 순천 사람들을 만나 그 때 얘기를 들어 알게 됐다"고 회상했다.

이어 "제주4·3은 재심 청구 후 사실상 무죄 취지의 '공소기각' 판결로 명예를 회복했지만 여순사건의 경우 아직 못한 것 같아 아쉽다. 제주와 여순이 함께 단합해 하루 빨리 명예회복이 이뤄졌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2000년 제주4·3사건 특별법이 제정됐지만 여순사건의 경우 희생자 명예회복 및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의 심의조차 난항을 겪고 있는 상태다.

여순사건특별법안은 지금까지 4차례 발의됐지만 보수정권의 반대, 정부의 미온적 태도 등으로 전부 폐기된 바 있다. 2017년 여야 의원들이 각각 대표발의한 5개 법안이 2년여 만인 지난 6월에야 다시 심의가 시작됐다. 희생자와 유족들이 점차 고령화되는 가운데, 여순특별법만은 한 자리에 멈춰 있어 여순사건 희생자들을 애타게 하고 있다.

불법 군사재판도 2011년 재심을 청구했지만, 검찰의 항고로 대법원까지 가면서 올해 3월 21일에서야 재심 개시가 결정돼 재판이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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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승문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사진 왼쪽)이 박성태 여순항쟁 보성유족회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제주의소리

황순경 여수유족회장은 "오늘 연로한 유족분들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어려운 걸음을 함께 해주셨다. 이분들의 명예회복과 진실규명을 위해 20대 국회 임기 내에 여순사건 특별법 제정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말했다.

주승용 국회 부의장은 "특별히 여순사건과 쌍둥이 사건인 제주에서 유족분들이 참석해 여순사건에 힘을 실어주신 것에 감사드린다"며 "국회 계류 중인 여순사건 특별법이 내년 총선이 있어 올해 내 통과되지 않으면 어려운 상황이다. 제주4·3유족분들께서 여순사건에도 힘을 실어주시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송승문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은 "제주4·3과 여순사건은 역사적 공동체다. 제주도민 학살 명령을 거부한 14연대의 봉기는 우리 제주도민이 꼭 알아야 하는 역사다. 올해부터는 여순사건 유족회와도 교류를 시작해 연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선명한 붉은 빛깔, 그래서 더 처연한 애기동백꽃. 겨울을 앞둔 시월 여·순에서 움튼 애기동백꽃이 한겨울 서릿바람과 하얀 눈을 뚫고 나와, 이듬해 사월 제주사람들의 가슴에 다시 핀다. 지고 피고, 다시 피고 진다. 71년 전 그날처럼. / 여수=최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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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시와 여순사건 지역민 희생자 지원사업 시민추진위가 지난 19일 오전 11시 전남 여수 이순신광장에서 '제71주년 여순사건 희생자 합동 추념식'을 열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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