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홍의 세상 사는 이야기] 71. 영화 ‘조커’의 첫 대사

[아래 글에는 영화 '조커'의 내용이 일부 서술돼 있습니다.]

 

“사람들이 미쳐가고 있다.”

영화 <조커>는 주인공 아서의 이런 독백으로 시작된다.

아서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이코 패스인데 오히려 타인들을 향해 미쳐가고 있다고 말한다. 이런 역설은 이 영화 곳곳에 등장한다. 아서의 일기장엔 이런 구절도 보인다. 

‘죽음은 삶보다 더 가치가 있다’, ‘정신질환자의 가장 어려운 점은 미치지 않은 척 하는 것이다.’

이 영화가 간과하고 있는 점은 바로 이거다. 정신병자는 자신이 미치광이란 사실을 모른다. 알고 있다면 그는 미친 자가 아니다. 모르기 때문에 광인은 어린아이처럼 행복한 것이다. 지구상에는 암에 걸리지 않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 광인과 백치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때문에 암에 걸리지 않는다.

주인공 아서의 직업은 어릿광대다. 원래 어릿광대는 진짜 광대가 아닌 보조광대로서 막간에 등장하여 익살을 떠는 사람(조커)이다. 

현대의 어릿광대는 상품이나 상점을 선전하기 위한 거리의 홍보맨이다. 아서도 이런 류의 인물인데, 그는 입양아로 정신병력이 있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환경 때문에 그의 인생은 멸시천대와 소외로 인해 늘 불행했다. 아서의 어머니는 아들을 ‘해피’라고 부르지만 그건 소망사고에 불과했고 아서는 가진 자(돈, 권력)들에 대한 적대감으로 언제나 충혈돼 있어서 누가 불을 던지면 곧 폭발해 버릴 화약고 같은 인물이다.

이 영화에서 아서 역을 맡은 배우의 연기는 경이롭다. 온몸으로, 영혼을 쥐어짜는, 신들린 연기를 펼치면서 연기술의 전범을 보여준다. 나는 모든 배우들에게 ‘연기란 무엇인가?’를 알려면 <조커>를 보라고 권하고 싶다.

영화 '조커'의 한 장면. 출처=네이버 영화.
영화 '조커'의 한 장면. 출처=네이버 영화.

이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시정(市政)에 반발하는 과격 시위대가 폭력과 방화를 저지르는 가운데 아서가 그들의 영웅으로 추대되어(?) 환호하는 장면은 우리 시대,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안한 상황을 반추하게 한다.

광화문과 서초동에서 악쓰듯 구호를 외치고 광기에 휩싸이던 군중들은 누구인가? 맹목적인 신념을 위해 맹목적인 행동을 불사하는 저들은 누구인가? 저들을 이성과 양식을 지닌 교양인 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니, 그냥 상식과 순리를 따르는 건전한 시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지만 나도 저들 군중 속에 섞여 있다면 아마도 저들처럼 목청이 터져라 외칠지 모른다. 다행이 나는 집회 현장과 멀리 떨어져 있어서 집단 광기에 감염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거리를 두고 저들의 행동을 관찰하면서 입 속으로 중얼거린다.

“사람들이 미쳐가고 있어…….”

그런데 어쩌면 정말로 미쳐가고 있는 것은 저 분노한 군중들의 함성과 광란을 보면서도 못 본 척 눈과 귀를 닫고 있는 뻔뻔한 집권자들인지도 모른다. / 장일홍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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