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소리] 전 4.3유족회장 양윤경 시장 이끄는 서귀포시 ‘권위주의 민낯’

제주4.3을 소재로 다뤘다는 이유로 전시 주최 측이 초대작가 동의도 없이 개막식에서 작품을 일방적으로 가려버리는 초유의 사건이, 4.3 71주년을 맞는 2019년 제주에서 일어났다. 권위주의 시대에나 있을법한 검열의 칼을 휘두른 셈이다. 그 주인공은 전 4.3유족회장이 시장으로 있으면서 문화도시를 지향하는 ‘서귀포시’다. 

문제의 전시는 10월 16일부터 11월 17일까지 서귀포시민회관에서 진행하는 ‘서귀포예비문화도시 기획전시-노지문화’다. 이 전시는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문화도시’를 준비하는 서귀포시가 마련했다. 문화도시로서 서귀포시의 매력을 소개하는 취지를 담았다. 

문화도시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진행하는 정부사업으로 ‘문화를 통한 지속가능한 지역발전, 지역주민의 문화적 삶 확산’을 목표로 한다. 지난해 5월 지자체 신청을 받아 첫 번째 심사(조성계획 승인)를 거친 1년간의 예비사업 결과를 바탕으로, 올해 하반기 첫 선정을 앞두고 있다. 서귀포시는 조성계획 승인까지 통과해 현재 예비문화도시로서 ‘문화도시’ 선정 여부의 최종 결과를 기다리는 상태다.

서귀포시가 문화도시를 준비하면서 내세운 브랜드는 ‘노지문화(露地文化)’다. 노지문화를 소개한 자료집에는 ‘예비 문화도시 서귀포가 표방하는 노지는 파괴되거나 변형되지 않은 본연의 모습, 생태적·자연친화적 상태, 꾸미거나 거짓되지 않은 진솔함의 개념을 포함한 상징이다. 서귀포시민들이 서귀포만의 문화원형을 발굴해 콘텐츠로 개발, 활용, 발전시키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한다.

16일부터 서귀포시민회관에서 열린 노지문화 전시. 문체부 문화도시 사업을 맞아 열린 자리다. ⓒ제주의소리
16일부터 서귀포시민회관에서 열린 노지문화 전시. 문체부 문화도시 사업을 맞아 열린 자리다. ⓒ제주의소리

‘노지문화’ 전시는 서귀포의 여러 가치를 담은 회화, 사진, 영상을 비롯해 시민들이 메모지를 붙이는 아트월 프로젝트 등 10여개의 예술 작품으로 구성돼 있다. 

문제가 된 작품은 연미 작가(본명 최진아)의 ‘걸어 들어가고 걸어 나오고’(복합 재료, 211x170cm)다. 4.3이 발발한 1948년부터 1990년대까지 매년 4월 3일 제주에서 발행된 신문 1면을 모아 나열한 구성이다. 시민회관 대강당 출입문에 설치했다. 

작가는 작품 소개 글에서 “노지에서 자란 귤나무는 나뭇가지에 태풍의 상흔이 남아있지만 그만큼 더 꽉 찬 과실이 된다. 그것처럼, 제주의 4.3도 그렇게 상흔 속에서 일상이 구축되고 있다고 믿는다. 매일 역사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걸어 나오고 매일 똑같이 일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걸어 나오며 상흔의 땅 위에서 우리의 일상은 삶과 역사의 결실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취지를 밝혔다.

그런데 전시 개막날인 지난 16일, ‘걸어 들어가고 걸어 나오고’ 작품은 무슨 일인지 ‘노지가 미래다!’라고 적힌 커다란 흰색 천으로 가려진채 진행됐다. 노지의 거친 환경에서 온 몸으로 역사의 상흔을 버텨온 제주사람들의 삶을 표현하고자 4.3을 주제로 다뤄 작품을 낸 연미 작가에게는 사전에 어떤 동의도 구하지 않은 조치다. 

그리고 이 천은 개막식이 끝나자 재빨리 치워졌다. 개막식에 참여한 사람들이 4.3작품이 전시됐는지 전혀 알 수 없도록 한 셈이다. 초대작가에 대한 예의도 아니거니와 작가의 동의도 없이 정상적으로 출품된 작품을 ‘사전검열’한 것이란 비판이 당연한 대목이다. 

'걸어 들어가고 걸어 나오고' 작품(붉은색 원)이 전시된 모습. ⓒ제주의소리
'걸어 들어가고 걸어 나오고' 작품(붉은색 원)이 전시된 모습. ⓒ제주의소리
16일 개막식에서는 작품(붉은색 원)이 흰색 천으로 가려져 있다. ⓒ제주의소리
16일 개막식에서는 작품(붉은색 원)이 흰색 천으로 가려져 있다. ⓒ제주의소리

분개한 작가는 물론 기획자를 더 황당하게 만든 일은 닷새 뒤인 21일에 벌어졌다. 서귀포시 문화예술과에서 “정부(문체부) 문화도시 심사위원들이 전시장을 찾는 시간 동안, 한 번 더 ‘걸어 들어가고 걸어 나오고’ 작품을 가리겠다”는 뜻을 작가와 기획자에게 전한 것이다. 

작가와 기획자는 모두 “절대 동의할 수 없다”는 뜻을 즉각 서귀포시 측에 전했다. 나아가 표현의 자유가 침해받는 심각성을 인지해 “작품 검열과 배제에 대한 해명과 공식 사과를 요구한다”는 성명서를 주최·주관 기관인 서귀포시와 서귀포 문화도시센터에 22일 전달했다. 성명서에는 ‘노지문화’ 전시에 참여한 작가를 포함해 총 15명이 연대 서명했다. 

예술 검열이라는 상식 밖의 상황이 벌어진 배경을 두고 기획자 박민희 씨는 “서귀포시에서는 전시 개막 전부터 일찌감치 4.3 작품에 대해 불만을 보였다”는 입장이다.

박 기획자는 [제주의소리]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개막식 이틀 전 문화예술과, 문화도시센터 관계자들이 전시장을 방문했다. 그들은 잘 보이는 자리에 4.3작품이 있다는 게 불편하다는 의사를 다양하게 피력했다”고 밝혔다. 

마뜩치 않다는 취지의 의견들은 “4.3은 작년에 70주년까지 해서 다 해결되고 끝났는데 또 4.3을 작품으로 할 필요가 있느냐”를 비롯해 “작품에 여러 제주지역 신문들이 섞여있는데 서귀포지역 신문이면 더 좋겠다”, “제주4.3 보다 서귀포가 드러나는 4.3이 낫지 않냐” 등의 1차원적인 지적이었다는 설명이다. 

박 기획자는 “기획자 입장에서 작품과 전시 취지를 풀어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가 안된다’는 분위기였다. 이번 ‘노지문화’ 전시는 문화도시를 설명하고 정책을 알리는 성격이자 여러 사람이 함께 하는 대중적인 참여형 행사다. 개막 전에 최대한 내부의 이견을 원만하게 조율하려고 노력했다”면서 “그런데 초대작가 작품을 동의도 없이 아예 볼 수 없도록 가려버리는 행위는 너무나 폭력적이다. 예술 종사자 입장에서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다. 성명서를 22일 서귀포시에 전하고 나서도 명확한 답변 대신 회피하려는 인상을 주면서 원만한 해결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생각”이라면서 분을 삭이지 못했다.

졸지에 작품을 사전검열 당한 연미 작가는 “4.3에 대한 민감한 정서가 아직 남아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내 작품이 4.3의 피해를 직접 드러낸 것이 아닌데도 4.3 예술에 대한 무조건적인 난색과 우려는 이해하기 힘들다”며 “역사를 마주하는 예술 표현에 있어, 다양한 입장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과정이 생략되지 않는 자세가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서귀포시의 예술 행정을 비판했다.

1948년부터 1990년대까지 매년 4월 3일 제주지역 신문 1면을 모은 전시. ⓒ제주의소리
1948년부터 1990년대까지 매년 4월 3일 제주지역 신문 1면을 모은 전시. ⓒ제주의소리

이와 관련해 양승열 서귀포시 문화예술과장은 “개막식에서 4.3작품이 천으로 가려진 모습은 확인했지만 어떤 이유에서 누가 했는지는 실무자에게 확인해봐야겠다. 문화도시 심의 때 재차 작품을 가릴 것을 요구한 건도 현재 정확히 알지 못한다. 알아봐야 하겠다”고 즉답을 피했다. 

제8대 4.3희생자유족회장을 지낸 양윤경 서귀포시장도 “관련 내용을 보고 받은게 없다. 정확하게 진위를 파악하고 나서 입장을 말하겠다. 작가나 기획자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답했다. 

서귀포시는 파괴되거나 변형되지 않은 진솔한 '노지문화'로 문화도시가 되겠다는 포부를 내세웠다. 그러나 일부 공무원들 시각에서 4.3이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작품 검열’을 저지르는 행위가 과연 문화도시에 어울리는 태도인지 비판이 거세다. 극우세력 압박으로 ‘평화의 소녀상’ 전시를 개막 사흘 만에 전격 중단한 일본 아이치트리엔날레 사례와 비교해도 별 반 다르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자연·문화·사람의 가치를 키우겠다’는 원희룡 제주도정, 전 4.3유족회장인 양윤경 시장이 이끌고 있는 서귀포시, ‘4.3 전국화·세계화’를 내건 2019년 4.3의 현주소가 한없이 부끄럽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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