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적 인간] 33. 조커(Joker), 토드 필립스, 2019.

영화 ‘조커’의 스틸 컷(자료=네이버 영화).
영화 ‘조커’의 스틸 컷(자료=네이버 영화).

남들 다 웃을 때 혼자 웃지 않고, 남들 웃지 않을 때 혼자 웃은 적 있다. 많다. 가끔 어떤 출연자는 무대에서 유머를 하며 혼자 웃는다. 객석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하다. 나도 가끔 다른 사람들 앞에서 혼자 말하고 혼자 웃는다. 상대방이 웃든 말든 나 혼자 웃곤 한다.

“자, 이제 웃을 준비 해.”

재미있는 얘기를 하기 전에 상대방에게 이렇게 말문을 열 때가 있다. 그가 웃을 준비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기대를 하게 만드는 건 사실이다. 그가 웃으면 좋지만 웃지 않아도 나 혼자 박장대소하면 된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울지는 않았다. 그런데 주위에 몇 사람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눈물이 났다고 한다. 그 마음에 공감한다. 그런 사람은 아마도 평소에 유머 세계가 억눌렸던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재미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 자리에서는 웃지 못하다가 시간이 흐른 뒤 그 얘기를 상상하며 웃을 때도 있다. 유머는 듣는 사람과의 공감대를 형성해야만 완성이 된다. 같이 웃을 수 없는 사회는 고담시와 같다.

유머 코드가 맞는 사람과 있을 때 즐겁다. 이 유머는 시대나 지역에 따라 반응이 달라진다. 왕년에 큰 인기를 누렸던 코미디언이 아침 방송에 나와서는 철 지난 유머를 하는 모습을 보면 쓸쓸하다. 예전에는 손뼉을 치며 웃었던 사람들도 이젠 달라졌다.

웃음에 대해서 너무 많이 말했다고 해서 이 영화가 코미디 영화는 아니다. 이 영화는 위험하다. 우리가 사는 도시가 고담시와 같다면 총을 들게 만드는 위험한 영화다. 그런데 이제 우리에게는 이렇게 위험한 영화가 필요하다. 서로 다른 유머에 우리는 많이 지쳤다.

억지로라도 웃어야 한다.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면 위험하다. 속담도 있지 않은가. 웃는 낯에 침 뱉으랴. 그런데 고담시에서는 이 속담도 통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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