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주 하민 저냑 못 얻어먹나
존재주 하민 저냑 못 얻어먹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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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의 借古述今] 142. 잔재주 많으면 저녁 못 얻어먹는다

* 존재주 : 잔재주
* 하민 : 많으면 (하영→ 많이)
* 저냑 : 저녁, 저녁밥, 석반(夕飯)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주어진 환경 속에서 제 능력 따라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각자도생하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들에 눈을 보내다 보면 묘한 상념들이 스쳐지나간다. 도대체 어떻게들 삶을 영위할까. 타고날 때부터 부유하다면 무엇이 어려울까만, 혹독하게 불우한 형편일 때는 살 길이 막막할 텐데….

그래서 이것저것, 이일저일 손에 대면서 익히는 게 잔재주다. 먹고 살기 위해서라면 닥치는 대로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 건설 분야에서도 큰 목공이 하는 일이 있고 작은 목공이 하는 보조적인 역할이 따로 있다. 작은 목공은 큰 목공 밑에서 일을 하면서 배우는 과정이라 보면 된다. 일정하게 체계적으로 기능을 습득하는 게 아니라 단편적으로 그때그때 익히는 기술이 손에 배려면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어야 함은 물론이다. 내공 없이는 되는 일이 없다.

꾸준하게 시종여일 눈 부릅뜨고 잘해야 잔재주에 능숙할 수 있을 것이지만, 중도에 끊어 버리면 그마저도 기회를 놓쳐 갈팡질팡 허덕이게도 되리라. 사람이 한 평생 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재주란 태생적으로 타고날 수도 있지만, 후천적 노력과 연마로 얻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이 잔재주란 것이 갖는 한계다. 이것저것 조금씩은 다하는 게 잔재주요 잔기술이다. 전문성에서 아득히 멀다. 이런저런 일을 가리지 않고 해야 하는 게 잔재주를 가진 사람이다. 일에 쫓기다 보면 저녁 먹을 시간도 없다. 그런다고 능력을 인정해 주지도 않는다. 기능일수록 전문성이 요구되는 건 말할 것도 없다. 굶어 가며 쇠가 빠지게 일을 해도 대접을 못 받으니 이런 딱한 노릇이 없다.

옛 어른들이 늘 입에 올리던 ‘백공이 밥 굶는다’는 말이 바로 여기서 나왔지 않나 싶다. 백공은 ‘팔방미인(八方美人)’을 이름이다.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 그러니까 다방면에 재주를 지닌 사람이란 뜻이다. 두루 재량을 발휘한다는 의미로 보면 더할 수 없이 좋게 들리는 말이긴 하다.

이것저것 조금씩은 다하는 게 잔재주요 잔기술이다. 전문성에서 아득히 멀다. 사진은 팔보채 요리. 출처=위키디피아.
이것저것 조금씩은 다하는 게 잔재주요 잔기술이다. 전문성에서 아득히 멀다. 사진은 팔보채 요리. 출처=위키디피아.

이 말에서, ‘미인’은 반드시 여성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팔방미인의 ‘八’은 ‘百’이나 ‘千’ 등과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분야를 뜻한다. 이를테면 중국음식에서 온갖 야채로 만든 요리를 ‘팔보채(八寶菜)’라 하지 않은가. 요즘 흔한 퓨전과 한 맥락으로 보면 된다.

흔히 쓴다.

“아이고 그 사름, 팔방미인이라부난 못허는 게 엇엉게.”
(아이고, 그 사람, 팔방미인이라서 못하는 게 없더군.)

이 말에는 속내가 따로 있다. 반드시 좋게 들리는 뉘앙스는 아닌 것 같다는 얘기다.

‘존재주 하민 저냑 못 얻어먹나.’ 이게 이만저만 까칠한 말이 아니다. 재주가 있음에도 저녁을 굶는다니.

그래서 나온 말이 있다. 호구지책(糊口之策).

‘입에 풀칠할 방도’란 뜻이다. 곧 먹고 살아갈 방도, 그러니까 밥 먹는 일이 너무 어려운 나머지 언감생심 생각지도 못하고, 그저 입에 풀질이라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사람들의 계책이란 의미다. 참 세상은 고르지 못하다. 공정이니 공평이니 정의니 하는 말은 함부로 내뱉을 것이 못된다. 얼마나 어려우면 호구지책이라 했겠는가 말이다.

“입에 풀칠할 방도라니,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런 방법을 생각해 냈을까요? 임시변통, 미봉책이나마 있기만 하면 다행이지요."

사방을 둘러보아도 아무 대책이 없으니 하는 말이 아닌가. 귓전으로 오는 이 말을 단박 한 손으로 지워 버리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그럴 수만 있다면…. /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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