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시선] 서귀포시 검열 의혹 ‘충격’...‘불복’ 선언 日아이치현과 대조

'서귀포 예비문화도시 기획전시' 개막식 당시 '노지가 미래다'라고 쓰인 흰색 천으로 가려진 4.3작품(왼쪽)과 일본에서 전시된 평화의 소녀상. 

4.3 70주년인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은 ‘봄’을 알리러 제주를 찾았다. 정확히는, “제주에 봄이 오고 있다”고 현재진행형으로 표현했다. 70년동안 제주도민이 “이 땅에 봄은 있느냐?”고 물은데 대한 일종의 화답이었다. 

그랬다. 제주도민에게 70년은 침묵의 세월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기억을 지워야만 했다. 

오고는 있지만, 한편으로 아직 ‘완연한 봄’은 아님을 시사한 문 대통령은 4.3을 역사의 자리에 바로 세우기 위한 눈물어린 노력을 일일이 열거했다. 그 앞 부분에 예술인들을 배치했다. 4.3이 금기시되던 시절, 4.3의 고통을 작품에 새겨넣어 우리를 망각에서 일깨워준 분들이라며. 

4.3연구의 물꼬를 튼 1970년대 대표적 문제소설 <순이삼촌>의 저자 현기영, 50편의 4.3 관련 연작을 완성해 <동백꽃지다>를 출간한 민중화가 강요배, 4.3을 다룬 최초의 다큐 영화 <레드헌트>를 연출한 조성봉 감독….

이어 문 대통령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4.3해결 노력을 언급한 뒤 4.3의 완전한 해결을 향해 흔들림없이 나아가겠다고 다짐했다.  

현직 대통령의 4.3 추념식 참석은 문 대통령이 처음은 아니었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이 테이프를 끊었다. 2006년 당시 위령제에 참석해 희생자와 유족, 제주도민에게 머리를 숙였다. 노 대통령은 이미 2003년 10월에도 과거 국가 폭력에 대한 잘못을 빌었었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가깝게는 1999년 4.3특별법의 국회 통과부터 20년 동안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4.3의 여정’은 한편의 파노라마였다. 굴곡은 있었지만, 기조는 달라지지 않았다. 진상 규명과 명예회복, 화해와 상생이라는 방향성을 유지했다. 그 결과 4.3은 어느덧 누구도 그 진실을 외면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이른바 태극기집회 참석도 마다하지 않는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 나경원 원내대표 조차 올해 ‘4.3정신’을 이야기하고, 4.3특별법 개정 지원을 약속했다. 

<순이삼촌>과 <동백꽃지다>, <레드헌트>는 저항의 산물이기도 했다. 당시 진실을 좇던 예술인들은 표현의 자유를 철저히 억압당했다. 유신말기 <순이삼촌>을 발표한 현기영의 경우만 해도 고문과 금서조치 등 큰 고초를 겪었다. 헌법에 명시된 ‘학문과 예술의 자유’는 조문으로만 존재했다. 억압에 굴복했다면 이들 작품은 세상에 나올 수 없었다. 

최근에도 표현의 자유 문제로 시끄러운 곳이 있다. 이웃나라 일본 얘기다. 

지난 8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평화의 소녀상을 전시했다가 일본 정부의 압박으로 사흘만에 전시가 중단된 아이치 트리엔날레에 이어 최근에는 가와사키 신유리 영화제 사무국이 역시 위안부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다큐 영화 주전장(主戰場)의 상영을 보류해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표현의 자유를 죽이는 행위를 했다”는 성명이 발표되고, 동료 예술가들의 보이콧 선언이 잇따랐다. 

아이치 트리엔날레는 논란 끝에 두 달 만에 전시를 재개했으나, 이번에는 일본 정부(문화청)의 보조금 취소 결정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 아이치현은 지난 24일 결정에 불복하는 이의신청서를 제출했고, 입헌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도 같은날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 전날의 아이치현 기자회견에는 지사가 직접 나서 결정 철회를 요구했다. 

아이치현이 이의를 제기한 바로 그날, 제주에서는 서귀포시 전시회 4.3작품 검열 의혹이 <제주의소리> 보도로 제기됐다. 지난 16일 개막식에서 주최측(서귀포시)이 초대작가 동의도 없이 4.3 관련 작품을 천으로 가려버리는 초유의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서귀포 예비문화도시 기획전시’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이번 전시는 올 하반기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도시 선정을 겨냥한 측면이 있다. 특히 서귀포시는 며칠 뒤 문체부 문화도시 심사위원들이 전시장을 찾을 때 한번 더 작품을 가리겠다는 뜻을 표명해 작가와 기획자를 아연실색케 했다.   

권위주의 시대도 아니고,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취재 당시 부서 책임자는 상황 파악도 안된 상태였고, 실무자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4.3희생자유족회장을 지낸 양윤경 서귀포시장은 상황을 파악해 보겠다고만 했다. 제주민예총이 긴급 성명을 내고 공무원 문책과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했지만, 한동안 후속조치가 없었다.

‘개막식 사달’이 난지 보름, <제주의소리>가 검열 의혹을 보도한지 일주일 만에 서귀포시가 내놓은 해명은 궁색했다. 양 시장은 유감을 표명했지만, 설명이 명쾌하지 않았다. 부서 책임자는 앞뒤가 맞지않는 주장을 펼쳤다.

해명 과정도 매끄럽지 못했다. 기자간담회 예고는 간담회 전날 일부 언론사에만 전달됐다. 평소 홍보가 필요하다 싶으면 시시콜콜한 것까지 웹자료실에 올리거나 문자메시지, 전화 연락까지 마다 않던 공보부서는 이번 양 시장의 입장문은 아예 올리지도 않았다. "시장의 지시가 있지 않고서야..."라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행정의 이해도 부족’ 탓으로 어물쩍 넘어갈 일이 아니다. 공무원의 단순 실수가 아닌 정황이 여럿 포착됐다. 
 
표현의 자유는 모든 인간에게 호흡할 공기를 공급해주는 것과 같은 숭고한 기본권이다. 더구나 4.3은 이제 표현의 자유를 운운하는 단계를 넘어  ‘완전한 해결’로 나아가는 단계에 이르렀다. 

아이치현 지사가 야당 의원들처럼 표현의 자유를 전면에 내세웠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일본인 입장에서 위안부 문제는 민감한 주제일 수 밖에 없다. 아이치현은 그걸 뛰어넘었으니, 결과적으로 자치단체가 극우로 치닫는 일본 정부에 반기를 든 모양새가 됐다. 

제주민예총의 표현을 빌면 반문화적, 반역사적 폭거가 자행된 지금, 일본을 부러워라도 해야 하나. <논설주간/상임이사>

* 소리시선(視線) /  ‘소리시선’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편집자]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