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원희룡-구성지 협약으로 출발 한계 극명…“실효성 확보 법제화로 뒷받침”

 

제주도가 제주도의회 인사청문에서 ‘부적격’ 의견을 낸 김성언 정무부지사에 대해 임명을 강행하면서 또 다시 ‘인사청문회 무용론’이 제기되고 있다. 현실적으로는 인사권에 대한 견제 장치가 없어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 도민의 대표가 ‘부적격’이라 해도 임명 강행…“통제 받지 않는 단체장 인사권”

제주도는 도의회 인사청문회가 끝난 이튿날인 지난달 31일 ‘부적격’ 의견에도 김성언 정무부지사 예정자을 임명하겠다고 언론에 공표했다. 타이밍도 절묘했다. 제377회 임시회 제2차 본회의가 끝난 직후였다. 회기 중 의회의 반발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달력을 한 장 넘겨 11월1일에는 원희룡 제주도지사 직접 임명장을 수여했다. 이 과정에서 ‘부적격’ 의견을 제시한 제주도의회에는 일언반구 없었다.

청문회를 이끈 강철남 인사청문특위 위원장부터 발끈했다. 곧바로 성명을 내고 “어차피 임명할 것이라면 인사청문을 왜 요청했느냐”며 임명장을 받은 김성언 정무부지사보다는 인사권자인 원희룡 지사를 정조준했다.

강철남 위원장은 특히 “인사청문회는 그냥 넘어가는 인사치레가 아니다. 인사청문회를 통과의례로 전락시킴으로서 의회의 노고를 물거품으로 만든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고, 김성언 정무부지사 임명을 철회하라”고 날을 세웠다.

시민단체에서도 강도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도민 무시’, ‘인사 폭거’라는 따가운 질책이 뒤따랐다.

◇ 청문대상 확대는 원희룡 지사 작품…결과는 ‘마음대로’ 청문 확대 진정성 의심

아이러니 하게도 제주도 고위공직자와 공공기관장 인사청문 대상을 대폭 확대시킨 장본인은 바로 원희룡 지사다. 민선 6기 제주도지사에 취임한 첫 해인 2014년, 당시 구성지 제주도의회 의장과 협의를 통해 인사청문 대상을 확대하는 안을 공동으로 발표했다.

그렇지만 인사청문회 운영 과정에서 도의회의 ‘부적격’ 의견에도 임명을 강행하는 경우가 늘며 원희룡 지사의 진정성이 의심받기 시작했다. 인사회 ‘따로’, 임명 ‘따로’ 현상이 점점 익숙해진 풍경이 되기 시작했다.

주요 공직자에 대한 인사청문 제도는 17개 광역 시·도 중 2006년 제주특별자치도가 가장 먼저 도입했다. 제주특별법은 정무부지사는 청문절차를, 감사위원장은 청문을 거쳐 본회의 동의까지 받도록 하고 있다.

이후 제주도와 도의회는 2014년 8월 이지훈 전 제주시장의 자진사퇴 후 고위공직자의 도덕성과 업무수행 능력을 철저히 검증하고 협치 행정을 구현하기 위해 행정시장에 대해서도 인사청문을 실시하기로 전격 합의했다.

이와 함께 청문대상을 제주개발공사와 제주관광공사, 제주에너지공사, 제주국제컨벤션센터, 제주연구원 등 ‘빅5’ 산하기관장까지 확대했다.

당시 이 같은 합의는 법적 근거가 없었음에도 파격적인 결단으로 평가됐다.

그렇지만 실제 인사청문회가 진행되면서 이같은 ‘협치 행정’ 취지는 실종되기 시작했다. 인사청문 적격-부적격 검증결과와 상관없이 임명을 강행한 사례는 원희룡 지사 취임 후 수차례 반복됐다.

민선 6기에서는 제주국제컨벤션센터 대표이사와 제주에너지공사 사장을 인사청문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았음에도 임명을 강행했다.

민선 7기 들어서도 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번 김성언 정무부지사 임명은 도의회의 ‘부적격’ 의견을 거스른 세 번째 사례로 기록된다.

◇ “청문결과 구속력 갖도록 법제화로 뒷받침해야” 제도개선․보완 시급

통과의례로 전락한 인사청문회 제도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단순한 협약이 아니라 법적인 근거를 하루빨리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래야만 적격과 부적격에 대한 도의회의 판단이 구속력을 갖기 때문이다.

그나마 제주도는 ‘제주특별법’에 인사청문회 제도의 근거를 두고 있지만 여기에는 대상이 정무부지사와 감사위원장으로 한정되어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양 행정시장과 ‘빅5’ 기관장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법적 근거 없이 도지사와 의장의 협약에 의한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조례 제․개정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5년 지금은 국회의원이 된 위성곤 의원이 ‘행정시장 인사청문회 실시에 관한 조례안’을 발의했지만, 상위법 위반 논란에 막혀 처리되지 않고 폐기됐다.

현재 국회에는 지방공기업법 일부개정안(김광수 의원 발의)과 지방자치법 일부개정안(황주홍 의원 발의) 등 지방의회 인사청문회 규정을 담은 5개 법안이 발의돼 있지만 법안 처리가 늦어지면서 지방의회 차원의 조례 제정 등 후속조치가 뒤따르지 못하고 있다.

제주도는 제주특별법 개정을 통해 한발 더 앞서나갈 수 있음에도 지금까지 6차례 제도개선을 추진하면서도 고위공직자 및 산하 기관장에 대한 인사청문 근거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인사청문회가 정쟁의 도구로 악용되거나 신상털이식, 흠집내기식으로 흐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이런 법제화 작업은 필수적이다.

박외순 제주주민자치연대 집행위원장은 “지방자치 발전을 위해서는 집행부와 의회 간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바로 세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도지사 인사권에 대한 견제와 균형, 공공기관장의 역량 검증이라는 인사청문회의 본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법적 기반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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