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149. 셰릴 빈트 저, 전행선 역, 정소연 해제, '에스에프 에스프리: SF를 읽을 때 우리가 생각할 것들', 아르테(arte), 2019.

출처=알라딘.
셰릴 빈트 저, 전행선 역, 정소연 해제, '에스에프 에스프리: SF를 읽을 때 우리가 생각할 것들', 아르테(arte), 2019. 출처=알라딘.

SF(Science Fiction, 과학소설)의 시대가 도래했다. 영화 쪽에서야 이미 많은 블록버스터급 영화들이 SF 장르에 속했다. 천문학적인 제작비로 화려한 볼거리를 자랑하는 영화들은 SF일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문학 쪽은 그렇지 못했다. 아주 오랫동안 한국 문단에서는 SF 소설은 비주류였다. 그런데 최근엔 이야기가 달라졌다.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한국 창작 SF가 상위에 올라가는 것을 쉽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한국 작가의 SF가 외국에서 호평을 받거나 출간된다는 소식도 자주 듣고 있다. 

가뭄에 콩 나듯 출간되던 SF 이론서와 연구서들도 경쟁하듯 세상에 나오고 있다. 물론, 이런 책들은 대부분 SF 개론서의 역할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셰릴 빈트의 <에스에프 에스프리>(Science Fiction: A Guide for the Perplexed)의 번역 출간은 한국 SF 출판문화가 한 계단을 올라서고 있음을 알린다. 연구와 이론 측면에서도 SF 역사와 정전, 주요 소재를 정리한 개론 수준을 벗어나 최근 연구 성과를 충실히 반영한 개념 중심의 단행본이라는 점에서 SF 팬과 연구자 모두에게 유익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저자인 셰릴 빈트 교수는 SF 분야의 양대 학술지 중 하나인 <과학소설연구>(Science Fiction Studies)의 현 편집장이기도 하다. 그러니 SF 연구의 최신 동향을 누구보다 민감하게 포착하고 있을 것이다.

저자는 먼저 SF 장르를 정의하는 일의 곤혹스러움을 그대로 드러낸다. 각기 저마다 다른 무늬와 결을 지닌 텍스트들이 모두 SF로 불린다. 이를테면, 누군가는 SF라고 하면 영화 <스타워즈>를 떠올린다. 하지만 SF가 '과학'소설임을 강조하는 어떤 이들은 이 영화는 SF가 아니라 판타지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SF 역사를 길게 보는 사람들은 오래 전의 유토피아 또는 환상 문학까지 소급하기도 한다. 또한 다른 문학 장르와 마찬가지로 SF 역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늘 변화를 거듭해오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SF 장르를 성급하게 정의하기 보다는 지속적으로 '범주화 과정'에 있다고 한다. 어떤 텍스트가 SF인가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은 저마다 다를 수 있고 그 답을 둘러싼 협상과 투쟁, 문화적 실천은 계속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F의 장르를 특징짓는 시학적 개념들은 SF를 이해하고 감상하는 데 유용할 수 있다. 초기의 SF 연구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다코 수빈의 정의다. 그는 SF를 '인지적 낯설게 하기'(cognitive estrangement. 이 책은 '인지적 소외'로 번역한다. 나는 노동의 '소외' 같은 용법과의 혼동을 피하고, ‘낯설게 하기’ 개념의 제안자인 러시아 형식주의자 쉬클로프스키의 용어를 환기하기 위해 이 번역어로 쓰려고 한다.)로 설명한다.

SF는 '노붐'(novum)이라 불리는 새로움을 도입하여 현실과 다른 점을 드러낸다. 그러나 이 낯섦은 환상 문학과는 달리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며, 독자들은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자였던 수빈은, 진정한 SF란 이상적 사회 변혁을 위해 현실을 반영하는 동시에 현실을 숙고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보았다. 수빈의 관점에서 영화 <디스트릭트 9>과 <아바타>를 비교하며 섬세하게 비평하는 대목은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이다. 

SF는 새로움이나 낯설게 하기만 있는 장르는 아니다. 주서영(이 책에서는 추서영으로 번역)은 오히려 SF는 ‘사실주의의 강화’라고 본다. 또한 SF는 이 장르를 특징짓는 반복적인 이미지, 소재, 배경, 플롯, 인물, 비유 들이 풍부하다. 이러한 SF 특유의 상호텍스트성(문화적 저장고 또는 네트워크)을 '메가텍스트'(megatext)라고 한다. SF 팬은 한 텍스트에서 기존의 유명한 작품의 흔적이나 장르 특유의 관습이나 그 변주를 더 섬세하게 포착할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독자들보다 더 재미있게 SF를 즐길 수 있다.

하지만 메가텍스트 역시 고정불변의 항목들은 아니다. SF 연구자들은 그보다는 ‘포물선’이나 유동적인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은 끊임없이 SF에 등장하지만 새롭게 변주되면서 장르에 활력을 불어 넣는다. 외계인 메가텍스트도 마찬가지다. 외계인은 제국주의적 침략자에서 인류를 진화시킬 신적 존재로, 다시 인간과 차이가 있지만 그저 동등한 존재로 그려진다. SF 메가텍스트가 과거의 어느 텍스트에서 유래하고 어떻게 변화해나가는지를 찾아보는 일도 SF를 이해하고 즐기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그러다 메가텍스트의 새로운 표현 방법을 찾게 되면 독창적이고 멋진 SF 작품을 써낼 수 있는 작가가 될지도 모른다. 

오늘날 SF는 이제 더 이상 자연과학만을 토대로 삼지 않는다. (엄밀한 과학적 합리성을 중시하는 SF를 일러 ‘하드 SF’라고 부른다.) 사회과학이나 인문과학처럼 폭넓은 지적 영역을 다루며, 사변적인 사고 실험을 중요하게 다루기에 ‘사변소설(Speculative Fiction)’로도 불린다. 그래서 SF는 단순히 우주 공간이나 미래에 흥미로운 모험 이야기를 펼쳐내는 장르만이 아니라 진지한 정치적 이념을 표현하는 장르로 발전해왔다. 여성 SF 작가들은 성차별에 반대하여 페미니스트 SF로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대한 인식을 뒤흔드는 이야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또한 SF가 백인 남성들의 전유물이라는 고정관념에 저항해 비백인 SF 작가들은 인종차별이나 오리엔탈리즘을 폭로하는 SF를 보여주었다. 

SF는 대중적 문학예술의 자리에 붙박여 있지 않았다. SF는 기술이 일상화될 만큼 포화된 사회의 문학으로 정의되는 동시에, 기술과학의 일상화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이를테면 ‘사이버공간’은 본래 사이버펑크라고 불리는 SF의 새로운 하위 장르에서 유래했다. 날마다 SNS와 웹 2.0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우리의 현재 삶이 SF 문화로부터 왔다는 것은 기억할 만하다. SF는 무엇보다 ‘변화의 문학’이라고 부를 수 있다. 새로운 기술과학의 도입으로 인한 우리 삶의 변화를 다루고, SF 장르 자체도 끊임없이 예술적인 변화를 꾀한다. 현기증 나는 변화의 시대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 SF를 가까이 할 일이다. 

▷ 노대원 교수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신문방송학 전공, 동대학원 국문학 박사과정 졸업
대산대학문학상(평론 부문) 수상 
2011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 당선
제주대학교 국어교육과 조교수 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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