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피뎀-정당방위 구체적 진술 오락가락...검찰 “법정서 새롭게 주장 다듬은 것”

기억이 파편화 돼 있다며 수사과정 내내 모르쇠로 일관했던 고유정이 법정에서 태도를 바꿔 적극적인 변론에 나서면서 오히려 진술이 뒤바뀌는 자기모순에 빠졌다.

검찰이 이 점을 파고들어 우발적 범행이 아닌 계획범죄에 대한 근거를 연이어 제시하면서 법원 판단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정봉기 부장판사)는 4일 오후 2시 제201호 법정에서 살인과 사체손괴·은닉 혐의로 구속 기소된 고유정(37.여)을 상대로 6차 공판을 진행했다.

검찰은 이날 고유정이 2019년 5월25일 범행 당일 제주 모 펜션에서 전 남편 강모(37)씨를 살해한 동기와 계획적 범행, 혈흔 분석을 통한 범행 방식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계획범죄를 입증할 졸피뎀에 대해 고유정은 최초 경찰 수사에서 복용 사실을 묻는 질문에 반알 정도 먹은 것 같다고 진술했다. 반면 법정에서는 전 남편이 빼돌렸다며 딴소리를 했다.   

향정신성의약품 중 수면제 성분인 졸피뎀은 키 160cm, 몸무게 50kg 내외인 고유정이 키 180cm, 80kg의 건장한 피해자를 어떻게 살해했는지 설명해줄 주요 증거 중 하나다.

고유정은 범행 8일 전인 5월17일 주거지인 충북 청주에서 수십 km 떨어진 청원군의 한 병원에서 졸피뎀을 처방받았다. 이날 약국에서 수령한 졸피뎀은 10mg 알약 형태로 모두 7알이다.  

검찰은 고씨가 범행 당일 음식물에 졸피뎀을 넣어 피해자에게 먹도록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후 피해자의 정신이 몽롱한 틈을 타 미리 준비한 흉기로 살해한 것으로 판단했다.

고유정은 수사과정에서 전 남편이 펜션에서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당시 방에 머물렀던 아들(6)은 피해자와 카레를 먹었고 피고인은 먹지 않았다며 전혀 다른 진술을 했다.

식사후 벌어진 범행에 대해서도 고유정의 진술은 오락가락이었다. 당초 고유정은 범행 상황을 묻는 경찰 질문에 흉기를 찌른 지점이 기억나지 않고 당시 눈을 감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반면 검찰이 법정에서 혈흔분석 결과를 토대로 범행 지점과 피고인의 자세, 동선을 설명하자,  펜션 다이닝룸에서 피해자를 1차례 찌르고 주방을 거쳐 현관으로 도망쳤다고 말을 바꾸었다.

전 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고유정이 4일 오후 1시30분 제6차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제주교도소 호송차량에 내려 제주지방검찰청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전 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고유정이 4일 오후 1시30분 제6차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제주교도소 호송차량에 내려 제주지방검찰청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검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혈흔 분석 결과를 토대로 고유정이 펜션 내 다이닝룸에서 9차례, 주방에서 5차례, 현관에서 1차례 등 최소 15차례 흉기를 휘두른 것으로 추정했다.

이 근거로 정지이탈흔을 내세웠다. 정지이탈흔은 흉기로 신체에 찌르거나 뺄 때 동작이 갑자기 멈추는 시점에서 몸 밖으로 튀는 독특한 혈액 흔적을 의미한다.  

검찰은 “피고인이 혈흔 분석 결과를 의식해 법정과정에서 경찰 진술을 번복해 새롭게 자신의 주장을 다듬은 것으로 보인다”며 “피고인의 주장은 검증 결과와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강조했다.

고유정측도 이를 의식한 듯 9월2일 2차 공판에서 요청했던 펜션 내 현장검증도 스스로 철회했다. 당초 변호인측은 펜션에서 자신과 피해자의 동선을 설명해 정당방위를 입증하려 했었다.

범행 직후 피고인이 고도의 평정심을 유지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고유정과 펜션 업주와의 통화 내역도 처음 재판을 통해 공개됐다.

통화는 고유정이 피해자를 살해한 5월25일 오후 8시10분부터 9시50분 사이 3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최초 통화에서 고유정은 웃음을 보이며 아이를 재워야 한다면서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오후 9시20분 통화에서는 고유정이 전화를 받지 않았다. 피해자 사망직후로 추정되는 오후 9시50분 통화에서는 고유정이 태연하게 업주에게 클린하우스의 위치까지 물어보자 방청석에는 야유가 빗발쳤다.

고유정 변호인측은 “피고인은 살해와 시신훼손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그동안 성폭행 피해를 일관되게 진술했다”며 “아이를 위해서 애써 침착한 모습을 보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졸피뎀에 대해서는 “유산 등에 대한 경험이 있어 불면증을 호소했고 그 과정에서 처방 받은 것”이라며 “마취제도 아닌 졸피뎀 때문에 피해자가 대응하지 못했다는 검찰 주장에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4시간에 걸친 재판이 끝난 후 피해자의 동생은 “고유정이 더 이상 아이를 방패삼아 이용하지 않기를 바랐다”며 “고유정의 끊임없는 거짓말 속에서 형의 명예만큼은 꼭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

피해자측 강문혁 변호사는 “피고인측은 검찰의 증거조사와 상관없이 일방적 진술만 이어갔다”며 “이번 공판으로 검찰측 공소사실이 충분히 입증된 것으로 생각된다”고 평가했다.

재판부는 18일 오후 2시 201호 법정에서 결심공판을 열어 검찰측 구형과 고유정의 최후 진술을 듣기로 했다. 다만 의붓아들 살인사건이 추가 기소되면 일정은 변경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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