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52 마주보기 청소년 연극 페스티벌 마무리...“참여 폭 확대 등 과제 남겨”

제주 극단 예술공간 오이가 주최하고 주관한 ‘제1회 52 마주보기 청소년 연극 페스티벌’(마주보기 페스티벌)이 2일부터 3일까지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올해 처음 시작한 마주보기 페스티벌은 정규 교육과정 여부에 관계없이, 연기와 연극을 좋아하는 모든 10대 제주 청소년들이 참여할 수 있는 경연대회 겸 축제로 기획됐다.

총 17개 팀이 신청해 예선을 거쳐 7곳이 본선에 진출했다. 6팀은 도내 중·고등학생들이 모였고 나머지는 초등학생이다.

중·고등학생 팀에서 다섯 곳은 미국 극작가 닐 사이먼의 ‘굿닥터’ 속 에피소드들을 하나씩 골라 무대에 올랐다. 한 팀은 소설 '어린왕자' 속 한 구절을 연기했다. 김효진·김민준·양혁준(작품 제목 : 물에 빠진 사나이), 문새롭·고채원(세경아 네 사모님), 김경표·윤현석·임지성(김말단), 한승우·임재규(압구정날라리), 김민경·박지호·강지우(의지할 곳 없는 신세), 정윤태·고우석(제일사때)이 참여했다. 

초등학생 최현지·전혜진은 본인과 가족 이야기를 손수 제작한 ‘롤링 페이퍼’ 소품으로 보여준 ‘작은공연예술가’로 큰 박수를 받았다.

심사는 임형택(서울예대 교수 겸 극단 서울공장 대표), 김정희(한국연극협회 제주도지회부회장), 전혁준(예술공간 오이 공동대표) 세 명이 맡았다.

심사 결과 1등은 김말단, 2등은 작은공연예술가, 3등은 제일사때가 받았다. 인기상은 압구정날라리에게 돌아갔다. 특별상은 극심한 사회 갈등을 겪는 오늘 날 제주를 몸짓으로 표현한 작품 ‘탐라 그대로가 아름다워’를 축하 공연한 볍씨학교 김보윤, 김은수, 김수현, 김한결, 양사랑, 김다연, 박표상, 이제원, 한수민이 받았다.

1등에게는 100만원 상당의 문화상품권과 상장이 수여됐다. 2등은 30만원, 3등은 20만원, 특별상은 30만원, 인기상은 10만원 상당의 문화상품권이다. 수상 없는 본선 진출 4팀에게도 문화상품권 10만원 어치가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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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진행한 제1회 '52 마주보기 청소년 연극 페스티벌' 참가자들이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제공=예술공간 오이. ⓒ제주의소리

# 경쟁 너머 보고 느끼는 시간

이틀 동안 진행한 마주보기 페스티벌은 단순 경연대회를 탈피한 연극 축제를 표방한다. 때문에 본선 경연을 치른 첫 날에 이어 둘째 날에는 토론, 축하공연, 시상식으로 꾸몄다. 토론에서는 청소년들이 어떤 환경에서 연기를 배우고 임하는지, 각자 환경에서 가장 절실한 점은 무엇인지 이야기하는 소통의 시간이었다. 

▲서울 대학로 등 유명 작품을 청소년들이 접근하기 좋은 곳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도 교사와 함께 연극을 보고 이야기 나누고 싶다 ▲무대 위에 서는 기회가 더 많았으면 한다 ▲학교에서 연극 동아리 활동을 전혀 지원하지 않는다 ▲학원이 아닌 학교에서도 체계적인 연기 지도를 받고 싶다 ▲제주도에 예술고등학교가 생기면 좋겠다 같은 목소리가 쏟아졌다.

심사위원들은 기교 대신 건강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인재가 대학 입시에서 높이 평가받고 발전 가능성 역시 높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래서 평소 일상 생활에서부터 발성, 자세에 신경을 쓰라고 당부했다.

축하 공연은 예술공간 오이의 ‘소통’과 볍씨학교의 ‘탐라 그대로가 아름다워’를 선보였다. ‘소통’은 세월호 사고의 트라우마를 겪은 여성과 그 여성을 작품 소재로 접근하는 작가 지망생 남성의 비정상적인 관계를 통해 진정한 소통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참가 청소년들에게 전문 극단의 연극을 직접 보고 느끼는 기회가 됐다. ‘탐라 그대로가 아름다워’는 대사를 극히 제한한 연기와 몸짓만으로 제주 속 갈등 상황을 보여줬다. 15분 남짓 짧은 공연이었지만 제주 공동체의 충돌과 고민을 보여준 또래 배우들의 연기는, 학원 연기에 익숙한 청소년들에게 분명한 자극이 됐다.

1등 수상작 김말단에서 소심한 말단 공무원 역을 맡은 윤현석(제주제일고 2) 군은 “연기를 배운지 얼마 되지 않았고 경연대회 무대도 이번이 처음이다. 첫 날 경연 날이 가장 인상 깊을 줄 알았는데, 마지막 날 제주사회의 문제점을 보여준 볍씨학교 친구들의 공연을 보고 많은 것을 느꼈다”며 “편안한 분위기 속에 심사위원 선생님들이 많은 조언을 해주셔서 좋았다. 나처럼 연기지망생을 포함해 다양한 학생, 청소년이 함께 하면 더욱 재미있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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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마주보기 페스티벌 참가 청소년과 심사위원들의 토론회 모습. ⓒ제주의소리

# 경연대회 이상을 꿈꾸는 청소년 연극 축제

제주 안에서 유일하다시피 한 청소년 대상 연극 행사는 제주연극협회 주관 ‘제주청소년연극제’를 꼽을 수 있다. 22회라는 긴 역사와 전국대회 참여라는 장점이 있지만 순수 경연대회라는 한계가 있다. 

마주보기 페스티벌은 각자 준비한 작품을 꺼내 경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선배 연극인들의 작품을 다함께 보고 느끼면서 연극 발전을 위해 각자의 고민까지 공유했다. 제주청소년연극제의 한계를 어느 정도 극복하려는 시도에서 첫 번째 마주보기 페스티벌이 가지는 족적은 의미가 있다. 더욱이 예술공간 오이가 주최·주관을 도맡아 책임졌고, 행사 비용도 대부분 극단 자체에서 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녹록지 않은 제주 연극계 사정을 고려하면 대담하면서 가치 있는 행보다.

물론 아쉬운 점 역시 명확하게 드러났다. 

한 달 남짓 공모 기간이 짧았고 참가 조건을 2인에서 5인으로 제한했기에 참여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참가 제한 나이를 잘못 판단하는 등 진행 과정에서 일부 미숙함이 있었다. 이런 이유들이 모여, 본선 진출 7팀 가운데 5팀이 같은 연기 학원의 수강생들이었다. 다섯 팀이 닐 사이먼의 ‘굿 닥터’ 에피소드를 하나씩 맡은 이례적인 상황은 이런 배경에 기인한다. 큰 탈 없이 행사를 마무리했지만 주최·주관 기관인 예술공간 오이 측은 “이번에는 실패한 행사”라고 냉정하게 평가하면서 내년에는 문제점을 꼼꼼하게 보완하겠다는 입장이다.

오상운 예술공간 오이 공동대표는 “경연과 일반 공연을 구분하고, 일정을 일찌감치 알리는 동시에 참가 인원 숫자도 변화를 줄 예정이다. 비단 연극뿐만 아니라 무대 위 모든 예술은 가능하게끔 확장하는 방안도 고민 중이다. 무대와 연기를 꿈꾸는 모든 청소년들을 위한 ‘축제’라는 취지에 부합하도록 준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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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보기 페스티벌 참가 청소년들이 메모를 남겼다. ⓒ제주의소리

심사위원을 맡은 임형택 교수는 “연기 학원 수강생부터 재기 발랄한 초등학생, 발달장애인까지 다양한 구성을 볼 수 있어 의미가 컸다. 마주보기 페스티벌이 긴 호흡으로 이어가서 학원뿐만 아니라 지역 동아리, 학교 밖 청소년, 대안학교까지 다양하게 참여하는 행사가 됐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임 교수는 “현재 한국 사회 교육은 정보·지식 전달 위주의 교육이다. 우리 사회, 자연 그리고 인간이 무엇인지 상상하는 것이 부족하다. 연극을 비롯한 음악, 미술 같은 예술은 그런 상상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데 대부분의 국내 학교에서는 도외시 됐다. 청소년들이 자기 발달을 꿈꾸고 상상하는 건 그 시기에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마주보기 페스티벌이 제주 청소년들이 상상력을 발현하는 기회로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제주연극협회 제주청소년연극제 심사위원이자 대안교육가로 활동 중인 고동원 제주연극협회 감사는 “마주보기 페스티벌이 경연 위주의 대회 아닌 아이들이 연극을 즐기고 자기 생각을 표출하는 마당이자 축제로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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