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제주형 도시재생, 길을 묻다](31) 음식커뮤니티공간 ‘케왓’
음식을 통한 제주역사·문화 알리미…원도심 골목상권·전통시장 연계 돋보여

제주시 원도심에 위치한 커뮤니티공간 '케왓'

음식은 인류의 장구한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인류 역사의 대서사시와 같은 존재가 음식이다. 대륙이건, 반도이건, 섬이건 모두 마찬가지다. 제주시 원도심에서 ‘음식’을 매개로 제주의 역사·문화 맛(味) 알리미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케왓’이다.
 
케왓은 제주시 원도심 산지천 인근에 위치한 지상 2층 규모 옛 유성식품(제주시 관덕로 17길27)건물에 조성된 제주음식 커뮤니티 공간이다. 지상 1층은 44.85㎡, 지상 2층 40.0㎡5며, 조리 공간 등의 공동이용 시설로 꾸며져 있다.
 
원도심 ‘코지왓’과 함께 주민 커뮤니티 공간으로 리모델링 돼 지난해 6월29일 공식 문을 열었다. 제주도시재생센터가 2017년부터 주민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이곳에서 운영해오다 공식적인 ‘음식 커뮤니티 공간’으로 탈바꿈 한 것.

원래 ‘케왓’은 마을주민들이 공동으로 야지(野地)를 확보해 지붕의 이엉을 잇는 재료인 새를 심어 공급하는 '공동 경영지'를 의미하는 제주어다. 원도심의 케왓은 이 같은 의미를 차용해 주민들이 음식을 연구하고 상호 교류하는 과정에서 커뮤니티를가 형성될 것을 기대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음식에는 다양한 에피소드와 상식들이 흥미로운 문화사와 함께 버무려져 있다. 단순히 배고픔을 이겨내기 위한 먹거리로만 치부할 대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음식에는 제각각 해당 지역의 문화·역사가 짙게 배어 있다.
 
사면이 바다인 제주에는 신선한 해산물로 만든 다양한 요리들이 많다. 거기에 반농반어(半農半漁) 하는 삶이 다수였던 제주사람들에게 해산물과 함께 땅에서 거둔 농작물도 주요한 음식재료였음은 당연한 일이다. 
 
케왓에서 만든 제주 전통음식. 전복을 넣은 톳밥과 전, 잔치상에만 올랐던 귀한 음식 독새기(계란)고기튀김, 콩국.
케왓에서 만든 제주 전통음식. 전복을 넣은 톳밥과 전, 독새기(계란)고기튀김, 콩국. 독새기고기튀김은 결혼식 등 잔치상에만 올랐던 귀한 음식이다.
나이가 지긋한 노인들이 손자들과 함께 케왓을 방문해 제주 전통 음식을 만들고 있다.
나이가 지긋한 노인들이 손자들과 함께 케왓을 방문해 제주 전통 음식을 만들고 있다.
칼칼한 갈치국을 보라. 단백질 함량이 높은 신선한 갈치에 파란 배추와 잘 익은 호박, 매콤한 고추를 넣어 끓인 갈치국은 예나 지금이나 사랑받는 제주음식으로 바다와 땅에서 손수 거둔 식재료들로 구성됐다.
 
몸국도 빼놓을 수 없다. 모자반이라 불리는 해조류인 ‘몸’을 주재료로 해 집안의 잔치나 장례식 등 주요 대소사에 몸국을 끓여내는 일은 오래된 관습 같은 큰 행사였다. 집집마다 대부분 키웠던 흑돼지를 잡아 돼지내장과 몸을 함께 푹 우려내면 그것이 몸국 국물이 되었고, 잡은 돼지고기는 집안과 마을공동체의 단백질 공급원이 됐다.
 
음식커뮤니티 공간 ‘케왓’은 이처럼 제주음식을 통한 지역의 역사·문화를 알리는 공간으로 점차 자리잡아가고 있다. 그러다보니 때때로 케왓 주변을 지날 때면 맛있는 냄새가 코를 자극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면 식당인줄 알고 들어와 메뉴판을 찾는 사람도 종종 있을 정도다.
 
도새재생센터가 운영해오던 케왓은 올해부터는 운영주체 공모를 통해 ‘베지근 연구소’가 맡게 됐다. 베지근 연구소는 제주시 원도심 주민들로 구성된 조직으로, 주민이 주체가 돼 원도심 활성화에 직접 참여하게 된 셈이다.
 
케왓은 ▲음식과 인문학 ▲따뜻한 접시 ▲제주의 자연, 부엌으로 들이다 ▲깨끗한 삼다수로 만든 제주 바다절임반찬 ▲우리가 몰랐던 제주 잔치음식 등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지난해부터 케왓 프로그램에 참가한 사람만 누적인원 500명을 훌쩍 넘겼다.

프로그램에는 가족과 친지, 친구, 지인 등 그야말로 다양한 계층과 연령이 참여하고 있다. 도민은 물론 관광객에 이르기까지 엄마와 아들, 아빠와 딸, 할머니와 손주, 연인, 친구 등 그야말로 참가 면면을 특정 지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시장 탐방 쿠킹 클래스 모습. 동문시장에서 제주의 역사와 문화가 교육된다.
원도심에서 나고 자랐다는 60대 여성 A씨의 경우엔 케왓에서 운영하는 모든 프로그램을 단 하나도 빠지지 않고 참여할 만큼 지역주민의 호응도 높다는 것이 도시재생센터 측의 설명이다.

주민들은 주민들대로, 관광객은 관광객대로 원도심 전통시장과 지역상권에서 장을 보고 음식을 배우는 동안 몰랐던 제주의 역사·문화를 배우게 되는 모든 과정이 원도심 활성화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그 때문인지 케왓은 최근 인근에 위치한 전통시장인 동문시장과 연계해 ‘시장 탐방 쿠킹 클래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시쳇말로 ‘대박’이다.
 
전통시장인 인근의 동문시장에서 음식 재료를 구하는데, 자연스레 지역경제에도 보탬이 되고 시장 상인들과도 소통하는 기회도 생긴다. 동문시장의 유래부터 제주 음식에 특정 재료가 쓰이는 의미, 제주도민이 소개하는 맛집 등 다양한 정보가 오가게 된다.

케왓이 시장 탐방 쿠킹 클래스 운영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시장 상인들에게 케왓은 ‘귀찮은’ 존재였다. 여러 명이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점포 앞이라도 가리게 되면 몇몇 상인들은 “장사에 방해되니 비켜 달라”고 혼나기도 했단다.

불과 몇 달만에 상황은 180도 바뀌었다. 제주 음식을 비롯한 동문시장, 원도심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접하는 참가자들의 만족도는 높았고, 시장 탐방 프로그램을 원하는 사람들은 갈수록 늘었다. 시장 탐방 프로그램이 진행될 때마다 시끌벅적하며 사람이 모이자 상인들도 마음을 열었다.

최근에는 케왓이 할 일이 줄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시장 상인은 물론 지역주민들이 해설사 역할을 자처하면서 참가자들에게 제주의 문화와 역사를 소개하는 역할을 대신하는 일이 잦아졌기 때문이다. 케왓이 제주시 원도심에 많은 생기를 불어넣고 있음을 여실히 볼 수 있는 사례다.
 
케왓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직접 만든 음식을 맛보고 있다.
케왓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직접 만든 음식을 맛보고 있다. 시식 시간에는 제주 전통 음식과 문화에 대한 설명도 같이 진행된다.
개선돼야 할 부분도 있다. 케왓 공간은 행정 소유기 때문에 수익사업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참가비도 대부분 재료값으로 사용된다. 운영을 위탁 맡고 있는 주민 모임 입장에서는 사실상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다.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자체 운영이 가능할 만큼 수익이 뒤따라야 한다. 케왓의 고민도 거기에 있다.
 
정지은 베지근 연구소 대표는 “음식을 주제로 다양한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현재 제주시 원도심에서 제주음식 쿠킹 클래스를 진행할 수 있는 인력 양성을 추진 중이다. 요리를 잘 하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요리를 직접 하지 못하더라도 음식에 깃든 제주이야기를 들려줄 해설사 등도 양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단순히 요리를 배우고 그 음식을 먹는 것 뿐만 아니라 장을 보기 위해 제주시 원도심과 시장을 돌면서 자연스럽게 제주의 역사와 문화를 배울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취지다. 음식을 통한 다양한 콘텐츠 개발에 속도를 내겠다는 입장이기도 했다.

신지영 제주도 도시재생센터 도시디자인팀장은 “케왓의 운영 주체를 민간에 맡기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고, 제주시 원도심 주민들로 구성된 베지근연구소가 공모에서 1순위에 낙점 됐다.”며 “지속적인 케왓 운영에 필요한 예산 마련이 힘들어 제주도개발공사 등 기업들의 사회공헌 프로그램과 연계하는데도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케왓에서는 영리사업이 불가능해 진행할 수 있는 사업이 다소 제한적이다. 행정이 주도하는 도시재생사업 대부분의 한계”라며 “케왓은 그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다양한 협의를 진행 중이다. 행정의 지원 없이 주민들이 힘을 합쳐 지속가능할 수 있는 ‘케왓’을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했다.
 
제주 음식의 특징은 ‘땅과 바다의 조화’다. 물질하는 바다도 밭이요, 집 앞 우영팟도 밭이다. 사면이 바다여서 사시사철 다양한 해산물은 주요한 식재료가 된다. 화산섬이란 지질학적 특성은 물이 고이지 않는 현무암 지대가 대부분이라 논농사 대신 밭농사가 주를 이룬다.
 
한계가 많은 척박한 환경이지만 제주선인들이 그것을 한계로 삼지 않고 되레 조화로운 삶을 살았듯, 케왓이 원도심 안에서 음식을 매개로 한 주민들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한걸음씩 더 내딛고 있어 기대가 크다. 원도심 주민들의 꿈이 케왓에 나날이 쌓여가고 있다. 
 
케왓이 진행중인 요리 프로그램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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