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섬 숨, 쉼] ‘시험 잘 봔’ 대신 ‘뭐 먹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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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을 격려하는 든든한 응원군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저녁 뭐 먹고 싶어? 돼지고기 구워줄까? 싫어. 그럼 청국장 먹을래? 그것도 싫어. 그럼 뭘 먹겠다고? 매일 말해주겠다고 하면서 한 번도 말해주지 않았네. 미리 말을 해줘야 내가 준비를 하지.

아, 몰라. 지금은 생각 안나. 근데 엄마 알라딘 주제곡 듣자. 아, 알아 알아. 내가 요즘 이 노래만 듣는 거. 안다고 . 영화도 세 번 본거. 근데 좋잖아. 노래 너무 좋잖아. 뭐가 그렇게 좋으냐고? 몰라. 그냥 들으면 편안해.

14일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고등학교 3학년인 딸이 다니는 학교는 우리 집에서 걸어 다닐 만한 거리이지만 올해는 아침 학교 갈 때는 차에 태워 데려다줬다. ‘수능 특권’을 확실히 사용하겠다는 딸의 주장에 따라. 누구나 아는 일이지만  집과 학교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지각을 더 자주 하게 된다. 자명한 이 원칙을 지키느라 우리는 늘 지각의 경계선을 오갔다. 그 바쁜 와중에 우리의 대화 주제는 한결같이 ‘밥’과 ‘음악’이었다. 저녁을 집에서 먹는 딸에게 나는 ‘먹고 싶은 것’을 주문했지만 돌아온 말은 항상 ‘몰라’였다. 대신 딸은 내게 자신을 위로해주는 여러 장르의 음악을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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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을 격려하는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어제 엄마가 해 준 돼지갈비찜 맛있었지. 다음에는 목살을 전처럼 통마늘에 볶아줄까. 너 야채도 먹어야 하는데...... 알았어. 파김치는 내가 못하겠고 사온다. 집 앞에 콩나물해장국 맛있던데 한 번 먹자. 내가 포장해서 갖고 올게. 싫어? 그럼 돈가스 포장 어때?

엄마, 청하의 벌써 12시 듣자, 완전 좋아. 청하는 참 드물게 여성 단독 보컬이라. NCT DREAM의 덩크슛 듣자. 이거 가사 너무 유치하고 오글거려. 근데 좋아. 엄마, 여자 아이돌만 놓고 경쟁하는 프로그램이 퀸덤 이야. 여기서 박봄이 막 울었다. 박봄 알지, 엄마 요즘 2NE1 의 ‘그리워해요’ 좋다고 했네. 박봄이 거기 출신이라. 엄마, 이것도 한 번만 봐봐. 여자아이들의 라이언 뮤직비디오. 정말 훌륭하지 않아.

날마다 밥을 먹고 음악을 듣는 사이 계절은 바뀌었고 수능은 코앞이다. 항상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음악 이야기만 하지만 시험이 다가오며 딸의 얼굴은 부쩍 상했다. 아침에 일어날 때 마다 근육이 아니라 뼈가 아프다는 딸의 모습이 참 안쓰럽다. 이 모습을 보며 그러니까 미리 열심히 좀 하지, 시간을 좀 효율적으로 사용하면 좋을 것 같은데, 성적이 왜 이래 등등의 말은 차마 꺼낼 수 없다. 수능이 아니라 수능을 치르는 딸이 내겐 소중하기 때문이다.

이 때 문득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삼년 전 먼저 수능을 치른 아들. 그때는 아들보다 수능 결과에 더 관심이 많았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 아들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니 늘 우리는 부딪혔고 갈등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딸의 수능을 함께 하며 내가 많이 변한 것을 느낀다. 변명하자면 나도 엄마역할이 처음인지라 처음부터 완벽하지 않고 갈수록 성장하는 것이다.

수능이 끝나면 딸이 전화 올 것이다. 그럼 나는 “시험 잘 봔” 하지 않고  “뭐 먹을까”  하겠다. (이렇게 결심하지만 실제상황이 닥치면 시험 잘 봔? 할 수도) 그리고 저녁에 사랑하는 나의 허운데기 공주가 후련한 마음으로 선곡한 노래들을 들으며 맛있게 저녁을 먹겠다. 그 다음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겠다.

수능을 치르는 모든 아들, 딸들. 그리고 그 아들, 딸들과 함께 한 부모님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 홍경희 제주교재사 대표 ( http://jejubook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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