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이별, 그리움...제주 시인 고주희가 말하다
사랑과 이별, 그리움...제주 시인 고주희가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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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집 ‘우리가 견딘 모든 것들이 사랑이라면’ 발간
출처=알라딘.
출처=알라딘.

제주 시인 고주희는 최근 첫 시집 ‘우리가 견딘 모든 것들이 사랑이라면’(파란)을 발간했다. 시인은 66편의 작품 속에 사랑과 이별,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흩뿌려 심었다. 

“내가 당신이, 당신이 내가 되던” 함덕 서우봉과 “다시는 못 볼 것처럼 손에 힘을 준” 그와의 추억이 생생한 협재를 기억하듯, 시인은 애틋한 마음을 풀어낸다.

“손을 맞잡았을 뿐인데 폭죽들 터지고 하얀 산철쭉, 밤의 혼종으로 두 줄의 분홍 시가 쓰였다”며 봄날의 사랑을 고백하지만, 어느 샌가 새와 비행기가 충돌하는 끔찍한 사고 ‘버드 스트라이크’에 빗대 이별과 기다림의 고통을 담담히 읊어본다. 

영국의 가수 ‘스팅’, 영화 ‘문스트럭’과 ‘빅 피쉬’, 소설 ‘욥의 아내’ 등 다른 예술로부터 얻는 영감도 자신만의 감성으로 녹여낸다. 고주희의 작품들은 선명하게 다가가기 보다는 마치 안개 속을 헤치는 듯 상상력과 감성을 자극하는 분위기가 흐른다.

버드 스트라이크
고주희

다시 눈뜨는 고통이 시작되었다

물컵에 말라붙은 지문들이 사라지고
어디서부터 길을 잘못 든 건지 경로를 그려 본다
물결이 흔들리는 창 너머, 철새들
최악의 방정식, 최단 거리의 침묵, 눈도 마주치지 말고
같이 무너지기로 하자

시작을 말았어야 했지만
굳이 용서를 구하진 않겠어요

한 사람을 평생 사랑할 생각만으로 난 기뻤는데
종종 아는 길이 아름다운 사람 하나를 망친다

지름길로 안내하는 착한 사람들
송곳니로 가장 연약한 부위의 살점만을 뜯을 때
둘 중의 하나는 죽어야 끝나는 이 싸움
어머니, 전 이미 죽은 지 오래됐어요
잠시 살아난 척 울어 본 거랍니다

가짜 피를 흘리면서도
이렇게 너를 기적처럼 사랑했으니
최단의 고통으로 돌아가기 위해
나, 아무 말 지껄이고 처음 온 길을 계속 걷는다

다시, 긴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책 해설을 쓴 김수이 문학평론가는 “고주희의 첫 시집은 ‘사랑은 어떤 일을 하는가’에 대한 내밀한 증언이며, 그녀의 삶에서 사랑이 수행해 온 몫에 관한 경이롭고 고통스러운 성찰”이라며 “첫 시집은 ‘당신을 앓는 나’가 가학적인 치유의 역설을 이행해 가는 과정에서 쓴, 상실의 체험에 관한 섬세한 심리 진술서의 성격을 지닌다”고 표현했다.

시인은 책머리에서 “음악 속에서 우리는 잠시 떨리는 악기일 뿐. 눈물 너머, 약간의 천국이 있기를”이라고 함축적인 소감을 밝혔다.

고주희는 제주에서 태어났고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지난 2015년 ‘시와 표현’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파란, 168쪽,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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