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시선] ‘국민과의 대화’ 동상이몽...의회 역할 막중

“정부는 제주도민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

그젯밤, 제2공항과 관련한 대통령의 한마디가 어김없이 격론을 몰고왔다. 

해석은 극과 극으로 갈렸다. 크게 보아 제주도민의 자기결정권을 강조한 말이라는 주장과 ‘이미 이뤄진 제주도민의 선택’을 존중하겠다는 의미라는 주장으로 나뉜다. 전자는 공론조사의 정당성을 인정받게 됐다는 논리로, 후자는 제2공항 건설에 쐐기를 박게 됐다는 논리로 이어졌다. 

당장 이튿날 제주도의회 도정질문에서 동상이몽 식의 신경전이 펼쳐졌다. 급기야 원희룡 지사는 대통령께 직접 진의를 물어보겠다고 했다.

두 주장 사이에 접점은 없어 보인다. 디테일을 기대할 수 없는 ‘국민과의 대화’를 마무리하는 발언이어서 더 듣지 못한게 아쉬울 따름이다. 

방송이 끝나기 무섭게 양쪽이 극단으로 맞서는 모습은, 대통령의 말 마따나 제2공항이 제주에서 가장 큰 갈등사안 임을 보여준다. 이는 곧 누군가의 중재 필요성을 시사한다. 

이제 제주도민이 기댈 곳은 의회 밖에 남지 않았다. 시민사회는 특위 출범을 제주도 자치역사상 새로운 이정표가 될 가능성이 높다며 모처럼 힘을 불어넣고 있다. 

예정지 결정부터 헤아려도 벌써 4년이다. 갈등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궁극적으로 제2공항 문제가 어떻게 정리되든 간에 이대로는 후유증이 클 수 밖에 없다. 떠올리기 싫지만, 강정이 아른거리는게 현실이다.   

도의회가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 것은 늦었지만 잘한 일이다. 한편으로는, 어쩌면 의회가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보여줄 절호의 기회일지 모른다.

그동안 ‘갈등 해소 특위’를 구성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우선 너무 무기력했다. 아무리 표를 먹고사는 존재라지만, 이 눈치 저 눈치 보느라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꿈쩍도 않는 도정의 등을 떠미는 것 말고는 사실상 한 일이 없었다. 의회 무용론까지 고개를 들었다.  

그 중심에 절대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있었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렸다. 의장은 독야청청 저 혼자 톤을 높이는 경우가 많았다. 소속 의원끼리 따로노는 볼썽사나운 모습도 자주 연출됐다. 도민 청원을 받든 결의안 채택은 자칫 물건너갈 뻔 했다. 지금도 잡음의 소지는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도정에 대한 공론조사 요구는 우이독경에 가까웠다. 원희룡 도정은 “제2공항은 국책사업” “공론조사는 월권”이라는 입장에서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명분과 형식에 집착한 나머지 변화의 여지를 주지 않았다. 사실 명분이라면 대표적인게 ‘도민 숙원’ 일텐데, 도민들의 바람과 요구는 고정불변한게 아니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가 그걸 말해준다.  

이런 도정에게 제주도민의 자기결정권은 사전 속에나 존재하는 거대담론으로 인식되는 것 같았다.   

공론화 추진에 따른 의회의 예산 지원 요청을 일언지하에 거부하거나, 특위 활동에 재를 뿌리는 듯한 태도는 일종의 치졸함마저 느끼게 한다. 

원 지사가 용어 정리를 시도하면서 “숙의형 공론조사에 해당하는 사안은 당연히 권고안을 존중하겠다”고 한 말도 다소 어폐가 있다. 지금까지 제주에서 숙의형 공론조사를 벌인 사례는 외국인 영리병원이 유일하다. 원 지사는 공론조사위원회가 제주도민의 압도적 반대를 토대로 채택한 권고(불허)를 무시했다. 

시쳇말로 제도적 근거를 가진 공론조사 결과까지 정무적인 판단에 따라 거스를 수 있다면, 주민 갈등을 없애자는 공론조사를 끝내 거부할 이유가 있나.   

제2공항 갈등 해소에 있어 파트너를 잃어버린 의회는 그만큼 큰 짐을 지게 됐다. 이제 제주도민이 기댈 곳은 의회 밖에 남지 않았다. 시민사회는 특위 출범을 제주도 자치역사상 새로운 이정표가 될 가능성이 높다며 모처럼 힘을 불어넣고 있다.  

의회로선 추락한 위상을 만회할 더 없이 좋은 기회일 수 있다.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앞으로는 좌고우면하지 않길 바란다. 오직 도민만 바라보고 뚜벅뚜벅 갔으면 한다. 무소의 뿔처럼. <논설주간 / 상임이사>

* 소리시선(視線) /  ‘소리시선’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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