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의 노동세상] (15) 이민호 군 2주기, 현장 실습은 어느새 제자리

11월 19일, 제주학생문화원 잔디 광장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2년 전 현장 실습 중 인재로 세상을 떠난 故 이민호 학생의 2주기에 맞춰 추모 조형물이 제막되는 날이다. 

2년 전, 필자가 속한 단체에서는 고등학생들과 함께 준비한 ‘제주에서 첫 번째, 청소년노동인권캠프’를 열었다. 새로운 시도를 위해 프로그램의 기획과 진행에 대한 전권은 함께 준비하던 고등학교 인권동아리 학생들이 가지고 있었다. 학생들이 주로 준비하고 나머지는 뒤에서 실무적으로 지원하는 역할이었다. 그 결과, 자칫 경직된 노동 인권을 이야기할 수도 있는 자리에서 자유롭게 노동 인권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 있는 자리가 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제주 동부권의 특성화고 1~2학년 학생 40여명이 모였는데 그간의 아르바이트를 통한 노동의 경험과 직간접적으로 겪은 불합리함, 해결하기 위해 냈던 해결책 등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1박 2일간의 학생들과의 캠프를 마무리하고 집에 도착한 차에 전화 한 통을 받았다. 10일 전 현장 실습 중 사고를 당한 서귀포산업과학고등학교 학생이 결국 사망했으며 부민장례식장에 빈소가 차려졌다는 비보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제주에서?

2017년 11월 9일 현장 실습 중에 사고가 났고 중상이라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철렁했다. 특성화고 현장 실습생의 사고는 이번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故 이민호 학생의 사망 사고 이전에도 전국에서 현장실습생의 죽음이 잇따랐다. 2011년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서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뇌출혈로 뇌사 판정 후 현재까지 투병 중인  김OO, 2014년 CJ제일제당 진천공장에서 사내 괴롭힘과 폭행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故 김동준, 2016년 서울지하철 구의역 스크린도어 보수작업 중 사망한 김군, 같은 해 현장 실습생으로 성남 패밀리레스토랑에 실습을 나갔다가 5개월 만에 괴롭힘과 성희롱 등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던진 故 김동균, 2017년 LG유플러스 고객센터 근무 중 업무 스트레스로 자살한 故 홍수연의 죽음이 있었다. 

학생들의 노동 인권 보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필자조차 ‘설마 우리 지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겠어?’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육지에 비해 산업체에 파견 형태의 현장 실습의 비율이 현저히 낮았고, 산업체로 가더라도 서비스업의 비중이 높으니 상대적으로 사고의 위험이 적을 것이라고 은연 중에 생각한 것이다. 타 지역에서 일어나는 잇단 죽음에 대해 우리도 무언가 대응이 필요하다고 막연하게만 생각하고 있던 찰나였다. 또래들과 함께 노동 인권에 대해 웃으며 이야기 하고 돌아온 찰나에 산업 재해로 목숨을 잃은 서귀포산과고 현장 실습생의 소식은 충격이었다. 

사망 직후, 故 이민호 학생의 사망 사고에 대한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제주지역 공동대책위원회가 제안됐다. 지역의 노동 단체, 농민 단체, 학부모 단체, 시민 사회 단체, 정당 등 26개 단체가 함께 뜻을 모아 활동을 시작했다. 

전국에서도 추모의 촛불이 들어졌다. 서울에서부터 인천, 광주, 전북, 전남, 대구, 부산까지 각 지역의 청소년과 시민들이 촛불을 들었다. 부민장례식장에는 여야 대표를 비롯하여 다녀가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정치인들이 붐볐다. 하나같이 유족의 손을 잡고 재발 방지를 위해 애쓰겠다고 했다. 

12월 1일, 문재인 대통령이 현장 실습생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을 공식석상에서 언급하고 김상곤 당시 교육부 장관이 현장 실습제 폐지를 선언한다. 나중에 보니 결국 반쪽짜리 폐지였으며 특성화고 학생들은 여전히 ‘학습 중심 현장 실습’이라는 명목으로 산업체에 조기 취업해서 일을 해야 취업을 보장받을 수 있는 구조에 머물렀다. 

사고가 잊혀 지면서 교육부의 정책은 다시 되돌이표

2019년 정부는 또다시 현장 실습 제도를 과거로 역행하는 방향을 잡는다. 교육부 장관은 故이민호 학생의 사망 사고 이후에 안전을 강조하다 보니 학생들의 취업률이 떨어졌고,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서 보완이 불가피 하다고 했다. 그러나 그 결과 산업체에게 부여한 최소한의 형식적인 안전 의무는 완화됐고, 오히려 현장 실습생을 받는 기업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친기업적 방향의 개정안이 나왔다. 

故 이민호 학생의 사망 이후 전국에 흩어져있던 현장 실습생 피해 유족들이 모였다. 정부의 후퇴된 정책에 대해 “제발 우리 아이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아달라”면서 대항했다. 2019년 1월에 서울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전국의 특성화고 교장선생님을 대상으로 열린 현장 실습 개선 방안 설명회에서 유족들의 울부짖었다. 이에 대해 참가한 교장 중 한 명이 유족들에게 오히려 소리를 지른다.

“이제 설명회 해야 하니 그만 좀 하세요” 

지난 2월 21일 직업계고 현장실습 보완방안 권역별 설명회가 열린 서울상공회의소에서 이민호 군을 포함한 현장실습으로 목숨을 잃은 유가족들이 단상에 올라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제공=김경희. ⓒ제주의소리
지난 2월 21일 직업계고 현장실습 보완방안 권역별 설명회가 열린 서울상공회의소에서 이민호 군을 포함한 현장실습으로 목숨을 잃은 유가족들이 단상에 올라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제공=김경희. ⓒ제주의소리

특성화고 현장 실습을 책임지는 교장의 입장에서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은 그저 쉽게 잊혀 질수 있는 것인가. 본인의 학교에서는 이와 같은 비극이 발생하지 않을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최전선에서 책임을 져야할 교장 선생님인데 말이다. 

학생을 값싼 노동력으로 착취하는 현대사회

너나없이 4차 산업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현대 사회가 유지되는 한 산업 사회를 지탱하는 노동의 필요성이 달라지지 않는다. 4차 산업을 지탱하지만 주인공은 되지 못한 노동은 계속 처참해야 하는가. 학생들을 값싼 노동력으로 투입하는 경우는 비단 한국만이 아니다. 아이폰을 생산하는 중국 폭스콘에서도, 애플워치를 만드는 콴타 컴퓨터에서도 현지의 직업학교와 결탁해 ‘인턴십’이라는 명목으로 10대 고등학생들의 노동력을 착취하여 논란이 됐었다.

기업은 값싼 노동력을 제도적으로 제공받고, 학생 노동자를 학습을 통해 노련하게 길들여 말 잘 듣는 성인 노동자로 배출시킨다. 그 과정에서 현장 실습생은 안전하지 못한 일터와 구조화된 폭력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스러져 가거나 불합리에 순응하며 일반의 노동자로 성장한다. 

故 이민호 학생의 죽음 이후, 이석문 교육감은 제주대책위와“제주도교육청은 학생을 노동력 제공 수단으로 활용하는 모든 형태의 산업체 파견형 현장 실습을 하지않는 것으로 확인”하는 것과 학생문화원에 추모 조형물을 세우기로 합의했다. 최소한 제주에서만큼은 현장 실습 제도를 통해 학생들을 노동력으로 착취하는 구조를 만들지 말자는 취지였다. 제주도교육청의 향후 직업계고 현장 실습제 운영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감시가 필요한 부분이다. 

다시는 비극이 없도록... 이민호 학생의 손을 잡고 잊지말자

학생문화원의 故 이민호 학생은 오른팔을 내밀고 있다. 그렇게 힘차게 내미는 팔은 아니다. 표정은 무표정하다. 그리고 어깨는 살짝 쳐져있고, 다리에도 힘이 풀려있다.

故 이민호 학생이 현장 실습생으로 겪어야 할 슬픔이 표현된 것이다. 무표정한 얼굴은 장시간 노동으로 인해 실습생의 고된 삶을 표현했고, 처진 어깨와 풀린 다리 역시 똑바로 서있을 힘조차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힘들지만 어렵게 뻗은 오른손은 다시는 본인과 같은 슬픔이 없도록 살아남은 자들에게 연대를 바라는 손이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지난 19일 제주학생문화원에서 열린 이민호군 추모 조형물 제막식에서 유족들과 이석문 교육감(맨 왼쪽)이 동상을 어루만지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11월 19일, 故 이민호 학생의 2주기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 함께 손을 잡았다. 故 이민호 학생의 부모님은 그해 겨울 이후, 자식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모든 현장 실습생의 부모를 자처했다. 전국을 다니며 현장 실습 제도의 문제와 개선을 위한 유족 이야기 마당 등의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해 겨울 현장실습생의 죽음을 잊지 않기 위해서 제주학생문화원에 방문해 민호와 그의 부모님의 손을 함께 잡아주시면 좋겠다. 

현장실습생의 잇다른 죽음은 2017년
이민호 학생의 죽음이전부터 이어져왔다.

학교는 취업률을 높이기에 급급했고, 
교육부는 전공과 관계없는 현장실습도 가능하게끔 했다. 
말은 현장실습이었지만 실제로는 조기취업이었고, 
기존의 노동자들과 똑같이 일을 해야했다. 
아니, 오히려 더 많은  일을 해야 했다. 

이민호 학생 역시 공장에 딸린 기숙사에 거주하면서 
비상 상황 때마다 불려 가야했다. 
홍수연 학생은 모두가 기피하는 해지방어 부서로 편입되었다. 
현장실습생을 구조적으로 괴롭히는 조직문화가 존재했고,
실습생들은 장시간 노동, 부당한 지시와 압박에 대하여 
거부하는 법을 배우지 못해 탈출하지 못했다. 

그동안 알려진.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모든 현장실습생의 죽음과 아픔을 추모하며 다시는 제2, 제3의 민호가 없도록 하겠다는 
우리의 다짐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

- 故이민호 학생 2주기 추모 전시내용 中

# 김경희는?

‘평화의 섬 제주’는 일하는 노동자가 평화로울 때 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노동자의 인권과 권리보장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공인노무사이며 민주노총제주본부 법규국장으로 도민 대상 노동 상담을 하며 법률교육 및 청소년노동인권교육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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