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제주도립무용단 창작 무용극 ‘이여도사나’

22일 열린 제주도립무용단 창작 무용극 '이여도사나'의 리허설에서 무대 인사 장면. ⓒ제주의소리
22일 열린 제주도립무용단 창작 무용극 '이여도사나'의 리허설에서 무대 인사 장면. ⓒ제주의소리

제주도립무용단(상임안무자 김혜림)이 11월 22~23일 창작 무용극 ‘이여도사나’를 들고 제주문예회관에 왔다. 지난 4월 26일 정기공연 ‘찬란’ 이후 7개월 만이다. 극본 경민선, 예술 감독과 안무 김혜림이다.

이여도사나는 2060년 불라국이라는 가상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그곳은 최고 통치자 ‘억심관’(배우 김기승)에 의해 엄격히 통제된 사회다. 어느 날 폭풍과 함께 물을 지닌 여인 ‘삼승’(현혜연)이 찾아온다. 불라국의 사람들은 삼승이 나눠준 물을 마시고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임신한다. 뱃속에서 나온 것은 바로 해녀의 태왁을 닮은 북. 주민들은 북을 치며 처음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하지만 변화를 용납하지 않는 독재자와 추종 세력은 저항하는 사람들을 탄압하고 끝내 학살한다.

작품 저변에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전체주의 사회인 디스토피아(Dystopia), 소수 권력이 다수를 감시·통제하는 ‘빅브라더’(Big Brother) 개념이 깔려있다. 그래서인지 최초 불라국 사람들의 무채색 복장은 비슷한 분위기의 영화 ‘이퀼리브리엄’ 속 그것을 떠올리게 하고, 깨어난 시민들의 편에 서서 싸우는 삼승은 마찬가지로 디스토피아 세상에서 독재자와 맞서는 영화 ‘매드맥스-분노의 도로’ 속 여성 지도자 퓨리오사와 겹쳐 보인다.

어쨌거나 이여도사나는 제주설화 ‘삼승할망’과 해녀의 성격을 접목시켜 디스토피아 서사에 녹여낸 흥미로운 구조를 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삼승할망에 대해 '제주도 무당굿에서 구연되는 서사무가로서, 서천 꽃밭의 생불꽃·환생꽃을 가지고 인간이 잉태·해산하도록 도울 뿐만 아니라 아이를 15세까지 기르는 생(生)의 신'이라고 설명한다. 이여도사나는 이런 삼승의 성격을 온전히 살려내면서 외형을 해녀로 설정했다. 제주해녀가 숨비소리를 내며 수면 위로 나오듯, 삼승은 물과 함께 등장해 물로서 민중에게 자유를 선사한다. 나아가 억압에서 해방시키는 구원자이자 절대 권력에 맞서 함께 싸우는 존재이기도 하다. 생명 잉태·해산이라는 본래 이야기에서 한 걸음 나아간 극적인 설화 활용법이다.

이런 기본 줄거리는 제주에서 흔히 보던 공연 문법을 탈피한 무대 연출과 주제를 반영한 안무와 만나면서 날개를 단다.

이여도사나는 사각형 기본 무대 안에 기다란 벽 세 개를 추가 설치하면서 공간에 제약을 가했다. 제약된 공간 안에서 무용수들은 역할에 맞는 안무를 선보이는데, 삼승을 만나기 전 블라국 사람들은 짧은 발걸음과 팔꿈치를 올린 경직된 동작으로 통제된 질서를 몸소 보여준다. 그와 달리 최고통치자 억심관과 수하들 그리고 삼승은 비교적 자유로운 선의 움직임인데, 억심관은 순간순간 동작마다 강력한 힘을 내포했다면 삼승은 상대방을 향해 다가가고 때로는 끌어당기는 부드러운 힘이다. 삼승과 만나 달라진 불라국 사람들은 뛰고 돌고 뻗는 역동적인 존재로 바뀐다.

기존 무대보다 좁아진 공간 안에서 프로젝션 맵핑(Projection Mapping) 영상과 한 곳에 초점을 맞춘 하얀 빛 줄기는 마치 감옥 같은 무대를 연출한다. 북을 잉태한 불라국 사람들의 생명력 있는 몸짓은 노란색 톤, 억심관과 불라국 사람들의 충돌을 앞둔 상황을 비롯해 긴장감 높은 순간은 흑백. 이처럼 이여도사나는 별다른 소품 없이 영상·조명 연출을 십분 활용하며 극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이끌어낸다. 무대 한쪽을 차지하는 커다란 이동식 벽은 권력자의 폭력과 학살을 상징하는 중요한 도구로 쓰인다.

제작진은 프로젝션 맵핑 기술을 사용해 영상 효과에 공을 들였는데, 무대 전체를 소화하고자 고성능 레이저 프로젝터를 동원했다. 무대 안의 벽은 극의 진행에 따라 위로 올라가고 내려오면서 관객에게 유동적인 공간감을 안겨준다. 벽에는 모션 캡쳐(Motion capture)를 연상케 하는 배우들의 몸동작이 비추면서 무대를 한층 더 꽉 채운다.

또, 연주단이 들어가는 무대 앞 안쪽 부분에 놀랍게도 물을 채웠다. 같은 장소에 열렸던 다른 공연들과 비교해도 파격적인 연출이다. 삼승의 첫 등장, 불라국 사람들의 잉태 등 실제 물이 가져다주는 질감은 기대 이상으로 생동감을 선사했다. 

이여도사나의 화룡점정은 음악이다. 국악과 양악, 장르에 얽매이지 않는 자신만의 예술 세계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해가는 전국구 밴드 '잠비나이'가 이여도사나의 음악을 맡았다. 격렬하면서 때로는 구슬프게, 여러 감정을 표현하면서 장르를 뛰어넘는 스타일은 2060년 판타지 세계를 구현하는데 제 몫을 한다. 더욱이 밴드가 무대 맨 뒤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이색 배치는 마치 관객을 향해 내리꽂는 강력한 소리를 만들어냈다.

도립무용단원들은 작품을 이해하는 부분이나 무대 위 육체적인 역할까지 상당히 많은 역할을 부여 받았다. 때로 압박으로 느껴지는 모습이 보였지만, 단원들의 열연으로 무대가 완성될 수 있었다.  

다만, 자기 의견을 낼 수 없는 일반 불라국 사람들과 달리 최고 통치자 억심관은 유일하게 목소리를 낸다는 설정임에도 관객 입장에서는 그만한 존재감을 체감하기 어려웠다. 억심관과 결전을 앞둔 불라국 사람들의 북 치는 동작을 실제 연주 소리와 동일하게 맞춘다면 더욱 힘이 느껴지지 않을까 싶다. 학살 이후 마지막 6장은 설명과 달리 상당히 절제, 축소된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여도사나를 만든 기술적 요소들은 올해 기자가 제주에서 본 수십 편의 연극, 뮤지컬, 오페라 등의 공연에서 좀처럼 보지 못한 시도다. 디스토피아와 제주설화를 연계한 점 역시 제주 문화 콘텐츠화에 있어 의미 있는 작업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 제주에서 공연 예술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여도사나는 볼 만 한 가치가 있다고 추천한다.

22일 첫 공연을 앞둔 리허설에서 김혜림 안무자는 시종일관 매서운 눈으로 무대를 확인했다. 이여도사나는 김 안무자가 제주에 와서 본인의 구상을 온전히 담아 만든 사실상 첫 '창작물'이다. 그래서일까. 지극히 주관적인 인상이지만 작품 시작부터 끝까지 많은 것을 담아서 보여주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행여나 그것이 부담으로 남아있지 않기를 바란다.

도립무용단의 이여도사나는 23일 오후 7시 30분 공연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