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 헐 땐 네씩네씩, 놈이 일 헐 땐 비씩비씩
나 일 헐 땐 네씩네씩, 놈이 일 헐 땐 비씩비씩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길웅의 借古述今] 146. 내 일을 할 때는 네씩네씩, 남의 일을 할 때는 비씩비씩

* 네씩네씩 : 못 마땅하거나 간에 차지 않을 때 나타내 보이는 토라진 기색
* 비씩비씩 : 무성의해 지극히 소극적인 태도

먼저 ‘네씩네씩’과 ‘비씩비씩’, 이 두 말의 표현의 묘미부터 음미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우리말에는 음성상징으로 의성어와 의태어가 있다. 표준어에서 이 두 말이 발달돼 엄청나게 많이 쓰인다. 사물의 소리를 시늉한 ‘소리시늉말’이 의성어이고, 사물의 상태 또는 짓을 시늉한 ‘짓시늉말’이 의태어다. 쉽게 예를 들면, 찰랑찰랑은 물이 넘치거나 흔들리는 소리를 시늉한 의성어이고, 꾸물꾸물은 벌레가 기어가는 모습을 시늉한 의태어다.

위의 속담에 나오는 ‘네씩네씩’과 ‘비씩비씩’은 둘 다 짓시늉말, 의태어다. 곧 일에 임하는 사람의 태도와 자세 그리고 표정 따위의 기색을 빗대어 나타내고 있다. 둘 다 올바른 ‘짓’이 아니다.

읽어 보면 참 기가 막히게 감각적인 말이라는 걸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제주방언에는 이런 표현들이 아주 많다.

무시겐 봉당봉당 햄시?(뭐라고 봉당봉당 하느냐?)
너미 꽝꽝 해연 못 먹키여.(너무 딴딴해 못 먹겠다.)

‘봉당봉당’은 소리를, ‘꽝꽝’은 짓을 시늉한 말이다. 불만을 투덜거리며 하는 말을 거듭 되풀이하는 소리 ‘봉당봉당’(느낌이 큰 말은 ‘붕당붕당’) 그리고 너무 말라붙었거나 딱딱하게 굳어 있는 걸 ‘꽝꽝’하다라 한 표현은, 표준어는 물론 타 지방 방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제주방언 특유의 어감이 풍겨나는 고유의 토속어다.

‘와쌍바쌍 다 부셔불라’(와쌍바쌍 다 부숴 버리라)의 ‘와쌍바쌍’은 물건을 냅다 내동댕이치는 소리이니 소리시늉말이고, ‘에고 그 생이 고망더레 호로록 들어가 비었져’(그 새 구멍으로 호로록 들어가 비렸다)에서 ‘호로록’은 구멍 찾아 잽싸게 들어가 사라지는 모습이나 짓을 시늉한 짓시늉말이다. 표준어가 도무지 흉내 내지 못할 만큼 아주 감각적이다. 또 섬세하다.

오늘날에도 제주도민들에게 언어친화력이 매우 강하다고 한다. 제주사람들은 제주에서 사투리를 팡팡 쓰다가도 육지에 발을 놓는 순간, 서울이면 서울말, 전라도면 전라도말, 경상도면 경상도말을 척척 해대기로 평판이 나 있지 않은가. 언어 변신의 귀재인 셈이다.

출처=제주학아카이브.
남의 일을 함에 성의를 다하면 남이 자신의 일을 함에도 힘껏 나설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사진은 1984년 7월 10일 서귀포시 하효동에서 진행한 사또놀이.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장사(葬事)를 치르고 마을로 돌아오면서 마을의 한 어른을 선정하여 사또처럼 모셔 들이고 나서 흥겹게 노는 놀이이다. 출처=제주학아카이브.

이상한 얘기지만, 이런 빼어난 언어 적응력 때문에 과거 남파 간첩에 제주 출신이 많았다는 속설도 있다.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나 일 헐 땐 네씩네씩, 놈 일 헐 땐 비씩비씩’이라 했다.

내 일을 누가 하면서 좀 성가시면 토라져 성의 없다고 투덜거리다가도, 자신이 남의 일을 할 때는 무슨 구실만 있으면 잡아 늘어지기라도 할 것처럼 소극적인 태도가 되거나 그런 일이 탐탁지 않다는 기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함이다. 둘 다 환영 받을 만한 태도가 아니다.

참으로 이기적인 태도 아닐 수 없다. 남이 와서 자기 일을 하는 것은 간에 안 차 네씩네씩 하면서, 자기가 남의 일을 할 때는 영 마음에 들지 않다고 비씩비씩 비켜 서기 일쑤이니 말이다. 얼마나 자기중심적인가.

남이 내 일에 성의 없이 비씩비씩 않기를 바랄진대, 자신이 먼저 남의 일에 눈치나 봐 가며 불만의 기색을 드러내 놓고 네씩네씩 하지 않아야 하리라. 남의 일을 함에 성의를 다하면 남이 자신의 일을 함에도 힘껏 나설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속 보이는 일을 하면 눈에 난다. /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0 / 400
댓글 1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순 추천순 이 기사에 달린 댓글 1
선비 2019-12-14 08:46:55
놈의 일, 나 일, 고리지 말앙 해사는디.~~^^
59.***.***.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