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교대생이 만들어준 최고의 어린이날 "

 
▲ '곰 언니' 주변을 맴돌다 드디어 사진찍기에 성공한 지민이
 
 

어린이날 아침, 잠에서 깨어보니 9시 30분을 조금 지난 시각이었다.
“어이쿠, 늦잠을 잤네!”

눈을 비비고 일어나 보니 아이들은 벌써 깨어 있었다. 일년에 딱 한 번 있는 어린이날인데 엄마아빠가 늦잠을 자다니, 아이들(7세,2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한라체육관에서 어린이날 행사가 있으니 아침 9시 30분까지 오라고 며칠 전부터 애들이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신신당부를 했는데, 거기에 가기는 다 틀렸다. 올해는 둘째도 있고 해서 꼭 어린이날을 챙겨주고 싶었는데...

그렇다고 집에만 있을 수는 없으니 일단 밖으로 나가자는 집사람의 의견에 따라 11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에 집을 나섰다. 일단 집을 나서기는 했는데, 막상 밖엘 나와 보니 갈만한 데가 없었다.

“제주는 문화시설이 부족해요. 특히 아이들이 갈 만한 곳이 없어요.”
제주가 고향인 아내가 한 마디 했다. 아내의 말에 동감이 간다. 제주에는 관광지는 많은데, 문화시설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어린이날 아침에 아이들 데리고 갈만한데가 마땅치 않다.

 
▲ '방울토마토 화분심기'에 참여하기 위해 줄을 서있는 모습
 
 
“교대에서 어린이날 행사를 한다던데, 거기 한 번 가볼까요?”
“그거 좋은 생각인데, 이 참에 교대 구경도 하고...”
집에서 먼 거리도 아니고 해서 제주교육대학으로 가기로 했다.

제주교육대학 정문을 들어서니 녹음이 우거진 교정에 아이들과 부모들이 손에 손을 잡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교정 여기저기에 행사 코너가 마련되어 있었고, 코너마다 아이들과 부모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생후 17개월째인 둘째는 곰 인형 복장을 한 언니로부터 눈을 떼지 못했다. 큰 아이는 평소 좋아하던 비누거품놀이 코너로 제일 먼저 향했고 그 다음에는 페이스페인팅을 했다. 얼굴에 태극무늬를 그리고나더니 깡총깡총 뛰면서 ‘토마토 화분 심기’ 코너로 가 조그마한 화분에 손수 방울토마토 한 그루를 심었다.

“이거 집에 가져가서 키울래.”
“그래. 토마토 열리면 지민이(동생)랑 나눠 먹어라.”
평소에도 딸기며 토마토를 키워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첫째 강민이가 이곳에 와서 소원을 풀게 되었다. 모든 비용은 무료였다.

아이들은 최고의 어린날을 보내고 있었다. 여기 저기 돌아다니는 중에도 둘째 지민이는 여전히 곰 외투를 입은 언니를 찾느라 두리번거렸다. 지민이 눈에는 ‘곰 언니’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에 우리 부부도 덩달아 신이 났다. 푸른 나무들로 잘 가꾸어진 교정에서 열리는 어린이날 행사는 여느 놀이공원의 행사 못지않았다.

 
▲ 두더지가 어디에 숨어 있는지 늘 궁금했었는데...
 
 

“여기 오길 잘했다.”
“그러게요, 좋네요. 아이들도 좋아하고.”

어린이날 아침, 늦잠을 자는 바람에 갈곳이 없어진 상황에서 무작정 밖으로 나섰는데, 뜻밖에 좋은 시간을 보내게 되어 주최측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좋은 행사를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다는 생각에 학생 한 명에게 시민기자임을 밝혔더니 행사를 주관하는 총학생회부회장(양준혁, 컴퓨터교육과 05학번)을 소개해 주어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모든 행사가 무료로 이루어지는데, 비용은 어떻게 마련했습니까?”
“학교측에서 지원을 받고요, 부족한 부분은 저희들 개인비용으로 충당했습니다.”
아직 학생 신분이라 주머니 사정이 그리 넉넉치 않을 텐데 자기 돈 들여가며 행사를 준비했다는 말에 고마운 마음이 더했다. 행사준비나 진행에 있어서 외부인사는 초청하지 않았다고 했다. 모든 행사를 학생들이 다 준비하고 진행한다고 했다.

“그랬군요. 덕분에 오늘 아이들이랑 즐거운 시간 보내고 있습니다.” 행사 준비하는데 힘들지는 않았습니까?”
“좀 힘들긴 했지만 학우들과 친해지는 계기도 되고 해서 좋았습니다.”
코너마다 쏟아지는 제주교대학생들의 밝은 웃음과 서비스는 흠잡을 데 없는 만점짜리였다. 그들은 아무런 대가 없이 그 곳에 모인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최고의 어린이날을 선물하고 있었다.

“이렇게 좋은 행사를 마련해 주어서 고마운데요, 아이들에게 바라는 게 있다면요?”
“제주에는 문화시설이 부족해서 오늘 같은 날 갈 만한 데가 없잖아요. 그래서 저희들이 이런 행사를 준비했는데요, 아이들이 오늘 하루 저희랑 같이 즐겁게 놀고, 앞으로 밝고 순수하게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 내 손도 만들어 주세요!!! 핸드프린팅을 기다리는 고사리 손들...
 
 

총부학생회장 양준혁씨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아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오니 집사람이 어디 갔다가 이제 오냐고 야단이다. 이만이만해서 이제 오는데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우리 강민이가 남들 앞에서 무대에 올라가 춤을 추었는데, 아빠가 그걸 봐야지 지금 뭐하고 돌아다니느냐고 한 소리한다.

“뭐, 강민이가 무대에 올라가 춤을 췄다고?”
평소에 부끄러움이 많고 자신감이 없어서 남 앞에 나서기를 꺼리는 강민이가 오늘은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무대에 올라가 춤을 췄단다. 오늘 강민이 기분이 무척이나 좋았나 보다.

점심때가 되어 교문을 나서면서 다시 한 번 젊은 학생들의 마음이 고맙게 느껴졌다. 아이들을 위해서 시간들이고 돈 들여 행사를 준비하고, 순서순서마다 아이들과 하나 되어 웃고 놀아주었던 학생들이 고마웠다.

어린이날 특별히 갈 곳이 없는 지역사정을 생각해서 이런 행사를 마련했다는 학생들, 나중에 졸업을 하고 선생님이 되어 교단에 섰을 때도 아이들과 부모들을 헤아리는 지금의 마음을 잃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 아이들이 좀 많아서요... 한 번에 움직이기는 리어커가 최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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