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제주형 도시재생, 길을 묻다](32) 원도심 유휴공간으로 사람들 모이는 이유

사람을 설레게 하는 공간이 있다. 감성이 묻어있는 공간이라면 특히 그렇다. 
 
원도심 내 눈여겨보지 않던 유휴공간에 생명을 불어 넣었더니,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고씨주택 제주책방, 그리고 디자인공장이 시민과 여행자, 창작자들까지 불러모으고 있다. 
 

고씨주택의 제주책방은 과거와 현재가 맞닿아 있는 원도심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사랑방 역할을, 디자인공장은 원도심의 새로운 산업 생태계 구축의 마중물 역할을 해내고 있다.

제주시 산지천 인근의 고씨주택은 비어있던 공간을 공공에서 매입해 시민공간으로 재탄생한 곳이다. 고씨주택 '제주책방' 전경
제주시 산지천 인근의 고씨주택은 비어있던 공간을 공공에서 매입해 시민공간으로 재탄생한 곳이다. 고씨주택 '제주책방' 전경
밖에서 바라본 제주책방.
고씨주택 제주책방은 산지천 인근에 자리한 원도심 명소가 됐다.

 

▲ 70년된 고씨주택 ‘제주책방’ 탈바꿈
 
제주시 원도심에 위치한 고씨주택(관덕로17길 27-1)은 해방 공간인 1949년에 지어진 70년 된 옛집이다. 전통적인 제주가옥에서 볼 수 있는 안거리(안채, 76.03㎡)와 밖거리(바깥채, 33.05㎡)로 구성됐다. 
 
제주도는 탐라문화광장 조성사업을 추진하면서 2014년 고씨주택을 매입했다. 도는 당초 이 주택을 허물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계획이 알려지면서 제일 먼저 지역 주민들이 주택 보존을 요구했고, 같은 해 제주문화재위원회에서도 일본식 건축기법이 혼용된 '과도기적 건축물'로서 고씨주택이 보존 가치가 있다는 의견을 내면서 우리 곁에 남아 있게 됐다. 
 
고씨주택은 좁은 올레길을 따라 들어와 문거리(대문) 안으로 들어서면 '제주사랑방'으로 단장한 안거리와 '제주책방'으로 꾸며진 밖거리까지 제주 전통건축의 평면 구성을 따랐다. 편의상 고씨주택 전체를 '제주책방'으로 부르고 있다. 
 
사랑방으로 쓰이고 있는 안거리에 들어서면 중앙부에 마루(상방)을 두고 있고, 왼쪽은 큰방과 뒷방으로 구성됐다. 큰방 1개로 쓸 수도 있고, 나눠서 작은 방 2개로도 쓸 수 있는 구조다.
 
또 마루 오른쪽에 방 2개와 부엌(정지), 고팡이 있다. 고팡은 곡식을 저장하는 창고인데, 제주 전통 가옥에서 볼 수 있는 형태다. 밖거리도 안거리처럼 제주 전통 가옥의 형태를 따르고 있다. 
 
방바닥에 다다미를 설치하거나 격자식 유리창문 등 일부는 일본 건축 양식을 사용했다. 이 시기에 지어진 건축물에서 나타나는 과도기적 현상이다. 
 
제주책방 안거리 마루와 좌측 방 모습. 제주 전통 가옥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고씨주택 안거리 마루와 좌측 방 모습. 고즈넉한 전통가옥의 정취를 느낄수 있어 많은 시민과 여행자들이 찾고 있다.
안거리(제주사랑방)와 밖거리(제주책방)로 구성된 고씨주택에서는 다양한 커뮤니티가 이뤄진다. 

보존이 결정된 고씨주택은 2016년 6월부터 2017년 1월까지 복원됐다. 복원된 이후 마땅히 사용 방법을 찾지 못해 1년여간 방치됐다. 

그러던중 제주도 도시재생센터가 지난해 4월 제주책방 겸 제주사랑방으로 시범운영을 시작했다.
 
밖거리에는 제주 관련 향토자료들과 제주를 콘텐츠로 한 도서들이 비치됐고, 안거리는 시민과 여행자들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지난 4월까지만 하더라도 고씨주택에 들어선 제주책방 방문자수는 월 300명 수준이었지만, 7월부터는 월 1000명 이상 방문하고 있다. 각종 SNS를 통해 제주책방이 입소문을 탄 것이 컸다. 
 
달라진 결혼문화로 스몰웨딩을 고씨주택 마당에서 치르고 싶다는 대관 요청이 올 정도로 젊은 세대들에게도 인기가 높은 공간이 됐다. 
 
이처럼 공공 유휴공간이었던 고씨주택을 제주책방으로 활용하면서, 자연스럽게 원도심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제주의 숨은 감성 '제주사랑방'과 '제주책방'을 품은 고씨주택이 큰 역할을 하는 셈이다.  
 
민간 유휴공간을 리모델링해 마련된 원도심 공유공간 '디자인공장'.

▲ “제주를 디자인하라” 12명 디자이너의 창작팩토리 

디자인공장(칠성로길 8)은 ‘원도심 공유공간’으로 출발했다. 원도심 유휴공간을 공유 디자인 공장으로 조성한 지하 1층(196.99), 지상 3층(218.97)공간이다. 도시재생 디자인 전문가들의 커뮤니티와 인큐베이트 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도시재생센터는 올해 건물 리모델링이 마무리되자마자 도시재생 디자인 공장 멤버 모집을 시작했고, 지난 3월 1기(9명)를 모집했다. 1기에 선발된 인원 중 3명은 협약을 포기하거나 연기했다.
 
도시재생센터는 올해 8월 2기 멤버 5개팀 6명을 추가 모집했고, 디자인 공장에는 현재 총 12명이 활동중이다.
 
12명은 시각디자인과 영상제작, 사진 촬영, 마케팅, 문화콘텐츠기획, 패션디자인, 놀이터 디자인, 공간·인테리어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됐다.
 
당초 디자인공장에서 활동하는 제작자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기도 했다. 명확하게 해야할 일이 정해진 것도 아니다. 그저 제주를 위해 일할 뿐이다.
 
제작자들은 내부 회의를 통해 제주를 위한 디자인과 기획 추진을 결정했는데, 때마침 제주도가 도시재생센터 측에 ‘칠성로 자율형 건물번호판 사업’을 의뢰했다.
 
디자인공장에서 제주와 제주시 원도심 등을 주제로 다양한 기획, 디자인 작업이 진행되면서 자연스레 디자인 관련 업계 관계자들이 제주시 원도심을 찾기 시작했다.

도시재생센터는 원도심을 위한 사업이기 때문에 디자인 공장의 창작자들에게 사업을 맡기기로 결정하고 실행에 옮겼다. 현재 원도심에 설치된 건물번호판은 디자인공장 소속 제작자들의 작품이다. 

최근 디자인공장 멤버들은 협동조합을 꾸리려 준비중이다. 각자의 사업을 별도로 운영할 수 있는 제작자들끼리 협동조합을 꾸려 제주를 위한, 원도심의 가치를 극대화할 디자인을 만들어 간다는 생각에서다.
 
도시재생센터는 디자인공장을 통해 원도심에 뿌린 씨앗이, 제주 디자인 관련 산업의 메카로서 원도심이 확실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창작자들끼리 협동조합을 꾸리고 그곳에서 창의적 디자인 작업이 이뤄지고, 경우에 따라서는 각자가 개별 디자인 사업자가 돼 다시 원도심으로 돌아올 수 있는 구조가 그려진다. 그들이 “제주를 디자인하라”라고 외칠 수 있다면 그것은 제주의 희망찬 미래다.
 
▲같은 듯 다른, 원도심에 생명 불어넣는 두 공간의 힘
 
제주책방과 디자인공장은 원도심의 유휴공간을 활용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다른 점이라면 제주책방은 도민과 관광객 등 누구나에게 열린 공간으로서 원도심에 사람을 불러 모으고 있다. 추억의 장소, 결혼식장, 회의장소 등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반면, 디자인공장은 소속 멤버 중심의 디자인 창작 활동으로 원도심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더 나아가 이들 각자는 디자인 관련 사업자가 돼 원도심으로 돌아와 또 다른 원도심 유휴공간을 채워나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안현준 도시재생센터 소통팀장은 “고씨주택은 한때 폐가여서 철거 위기에 처했던 곳이다. 원도심 공공 유휴공간을 시민들의 공유공간으로 탈바꿈 시키면서 지금은 원도심에서 가장 인기있는 공간이 되고 있다.”며 “제주책방에서 독서모임이나 회의공간, 스몰웨딩 등 각종 커뮤니티 활동을 하고 싶다는 대관 요청이 잇따르고 있을 만큼 관심이 높다”고 설명했다. 
 
안 소통팀장은 “최근 제주책방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이용자가 적었으면’, ‘지금 형태가 계속 유지됐으면 한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더 복잡해지지 않고 지금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해주었으면 하는 이용자들의 의견이다. 제주책방이 갖는 공간의 매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지영 도시재생센터 도시디자인팀장은 “디자인공장은 원도심에 있는 민간 유휴공간을 활용했다. 디자인공장 멤버들에게 사업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매칭하는 역할에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 팀장은 “디자인공장 멤버들이 스스로 공간을 가질 수 있을 만큼 성장하도록 지원하겠다. 이들이 디자인공장을 벗어나 원도심의 또 다른 유휴공간을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점차 확장돼 제주시 원도심이 제주 디자인 관련 산업의 중심지로 변하는 순간을 꿈꾸고 있다”면서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