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147. 남도 원님으로 살고 신하로 산다

더욱이 조정의 관리라면 임금을 섬기는 신하로서 언제나 제 품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함은 말할 것이 없다. 신하다운 덕목을 갖춰야 신하로서 자리가 빛난다. 사진은 영화 '광해' 속 한 장면. 출처=네이버 영화.
더욱이 조정의 관리라면 임금을 섬기는 신하로서 언제나 제 품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함은 말할 것이 없다. 신하다운 덕목을 갖춰야 신하로서 자리가 빛난다. 사진은 영화 '광해' 속 한 장면. 출처=네이버 영화.

* 놈도  : 남도
* 원 : 원님
* 살곡 : 살고
* 신 :: 신하(臣)

옛날 제주인들에게는 야심이 있었던 것 같다. 그걸 딱히 야심이라 할 것은 아닌 것 같지만. 조금 넓게 보아 이를테면 꿈, 희망, 이상, 포부, 성취동기 따위로 말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꿈 개념인 건 틀림없지 않을까 싶다.
 
비록 밭 갈고 고기 잡으며 사는 농부요, 어부 신세이긴 해도 남에게 까닭 없이 굽히려 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제가 잘 났다고 우쭐거리는 자는 못 봐 주는 반항적 기질이 있었다. 혹여 이런 뚝심이 있었기에 열악하기 짝이 없는 환경에서 한 평생을 살 수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이고, 놈사 아멩허민 그만 못헐 건가. 놈 허는데 나도 원님 되곡 신하 되지 못하카부덴, 사름 기영 괄시허지 마라 이.”
(아이고, 남이야 아무려면 그만 못할 건가. 남도 하는데 나도 원님 되고 신하도 되지 못할까 하는데 사람 그렇게 괄시하지 말아라.)
 
입에 오르내리던 말일 테다. 원님 하고 신하가 된 자가 권세를 누린다고 신분을 뽐내며 거들먹거리면 그냥 보고만 넘기진 못했던 것이다. 반발심이 생겨 ‘나도 언젠가는 자네만한 벼슬에 오를 수 있다’고 노골적으로 항변하기도 했을 것이 아닌가. 어투가 비아냥거림이다. 기분이 몹시 상하니 그럴 수밖에.
 
물론 깨놓고 나서지 않고 뒤에 숨어서일망정 ‘나쁜 사람, 건방진 친구’라고 욕지거리를 해댔을 것이다. 어쩌면 그런 반항심이 자신의 신분 상승에의 의지 여하에 따라서는 진취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자극제가 됐을 법도하다.
 
여기서 ‘원과 신’은 고을 원님과 임금 밑의 신하로 국가의 녹을 먹는 벼슬아치를 말한다. 관직에 앉은 자가 제 신분을 지나치게 자랑하고 다니는 것은 서민으로서도 눈 뜨고 못 볼 눈꼴사나운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순순히 지나칠 수만은 없는 일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 ‘놈도 원 살곡 신 산다’이다. ‘놈’은 곧 이 말을 하는 ‘나’로, ‘너만 원이고 신인 줄 알지만, 나도 그만한 관리로 살 수 있다’ 한 것이다.

지나친 자기과시는 그야말로 어느 시대나 목불인견(目不忍見), 눈 뜨고 못 볼 일이다. 그것도 어지간하면 하거니와 정도가 지나치면 용납하기가 어렵다.
 
더욱이 조정의 관리라면 임금을 섬기는 신하로서 언제나 제 품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함은 말할 것이 없다. 신하다운 덕목을 갖춰야 신하로서 자리가 빛난다. /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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