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비운 한해, 겨울 돌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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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광의 제주 산책] 14. 돌담 너머 섬사람들의 대화

제주에 돌담은 마음을 비운 수도승과 같다.
인연을 접고 출가한 몸이
무엇을 더 바랄건가.

바람을 막지 않고
시선을 막지 않고
소리를 차단하지 않는
그 돌이 제주돌이다.

남쪽바다 바람소리가 담장에서 들려오고, 
비가 올 때도 구멍 송송한 담장 안으로 스며 
촉촉하게 젖어고,
밤하늘에 별들도 
그 돌담에 퍼질러 앉아 전설을 만들어내며.
그것이 설문대할망의 이야기 인지도 모른다.

이웃집 굴뚝에 연기가 나나
감귤은 제대로 크고 있나
엄마가 물질하러 나간사이 아이는 제대로 밥은 먹나 
혹시 누군가 급한 일이 생겼는데도 이웃으로써 
모르고 있었나!..

그런저런 우리네 삶들이 담장을 매개체로 연결되어
달밤에 오가는 사람의 그림자도 무심한 듯 다듬어지지 않는 돌들의
모임에서는 화제가 된다. 
돌들의 괸당들이 모여 서로 얽히고 섥혀 있는 것이다.

사진=정은광. ⓒ제주의소리
사진=정은광. ⓒ제주의소리

어제는 주변 따스한 곳에
이른 동백이 벌써 피어 있었다.
소설 대설의 이 추운 날에 거기는 동백꽃이 피었다는 말이예요?
하고 육지 사람들은 묻는다.

마당의 잔디밭에도 조금씩 수선화 싹이 올라오고.
아마 한 달 후 2020년 1.2월이면 법환리나 보목리의 따스한 바람결에 
하얗고 파란잎새의 선들선들한 수선화 꽃대공이 올라 올 것이다.

봄비에 맞으며 가장 먼저 가고 싶은 곳은 오름이거나
추사 유배지의 수선화 꽃들이다.

쌉 싸르한 바람결이 옷깃을 세울 때 
수선화가 피면, 꽃이 맑고 생기가 돌아.
내 마음에도 이른 봄을 맞이한다.

우리들은 한해 두해 살아가며, 
모두가 작은 전설이 되어 가지만
아니 한라산은 오는 구름과 가는 구름과 대화하고 
담장 안에 도란도란 핀 꽃이나 이웃들의 속닥한 이야기는 
항상 “혼자옵서예~”가 된다.

마음을 허물기 어렵지만
제주사람은 담장을 낮추어 서로 마음을 나눈다.
지금도 누군가 하늘에 별을 따라 육신과 이별을 했을 때
낮고 바람구멍이 송송한 담장은 그들의 마음울타리가 되어 서로 돕고 
모이고 힘을 합쳐 작은일 큰일 등 함께 초상을 치른다.

섬사람의 담장넘어 하는 “무사?(무슨 일 있어~)” 이 말은 
마음으로 위로를 하는 이웃의 정이다.

육지를 떠나온 사람들에게 친구가 되어주고
마음으로 위로해줄 사람은 돌담에 속을 다 비운 이웃 괸당들이다.

인간은 마음으로 연결되는 동물이고
마음은 사랑으로 연결되는 꽃향기이며
꽃은 바람으로 향기로 한 번씩 흔들리고
서로가 부족함을 보듬는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듯.
돌담사이에서 부는 바람은 
이 밭 저 밭가에서 
세월의 등 뒤로 뛰어논다.

 

# 정은광은?

정은광 교무는 원광대학교에서 원불교학을 전공하고 미술과 미학(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원불교 사적관리위원과 원광대학교 박물관에서 학예사로 근무하며 중앙일보, 중앙sunday에 ‘삶과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다년간 우리 삶의 이야기 칼럼을 집필했다. 저서로 ‘그대가 오는 풍경’ 등이 있다. 현재 원불교 서귀포교당 교무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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