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희의 예술문화이야기] 43. 2019 문화예술계를 보내며

12월 초에 국회에서 제주특별법 6단계 제도개선안이 통과되었는데, 그 안에 들어있던 ‘문화예술의 섬’ 조성 사업도 덩달아 통과되며 앞으로 일어날 변화에 기대를 갖게 한다. 올해도 다사다난했던 문화예술계를 돌아보며 다소 힘이 빠지던 상황에서 기대하지도 않던 소식이라 살짝 놀라울 정도이다. 

문화기획자이자 작가인 김해곤이 쓰기 시작한 ‘문화예술의 섬’이라는 표현이 제주의 문화정책에 반영된 것은 민정 6기가 출범하던 2014년이다. 이후 '문화예술의 섬'이라는 기치아래 여러 사업이 추진되었고, 추진 방향을 모색하는 연구보고서가 나오는가 하면, 낡은 도심을 재생하는 과제와 연계한 프로젝트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의욕과 현실이 충돌하며 추진하던 일들이 중단되거나 원래 계획과는 다른 방향으로 간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 전국적으로 진행된 많은 사업과 행사가 보여주었듯이 공적 자금으로 지탱되는 문화예술계의 한계, 즉 단발성으로 끝나버리고 이후에 자생력을 갖추거나 파급력을 지니지 못하는 상황을 어떻게 답습하지 않을까하는 고민이 더욱 필요해 보인다. ‘문화예술의 섬’의 법적 근거가 마련된 지금 과거에서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다. 

그래서 2019년 문화예술계를 돌아본다. 필자의 역량의 부족으로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에서 정리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미리 고백한다.

올해 3월부터 중단된 예술공간 이아의 창작 레지던시는 국내 미술계에 제주의 문화정책에 대한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창작 레지던시로 널리 홍보하며 국내외의 작가들의 주목을 받았고 2회에 걸친 레지던시 출신 작가들의 자부심도 상당했으나 예산을 깎겠다는 도의회를 설득하지 못하고 사라져갔다. 이에 도내의 일부 작가와 기획자들은 이 레지던시 중단을 두고 토론회를 열겠다, 성명서를 발표하겠다고 흥분했었다. 그러나 결국 일하느랴, 생활하느랴 바빠서 그냥 지나가 버렸다. 도에서는 이를 대체하고자 산양초등학교에 레지던시를 준비하고 있다는데, 내년 상반기에나 문을 연다고 한다.

산지천 갤러리는 사진전문 전시장으로서의 역할이 끝이 났다. 제주 한림출신 김수남 작가의 유족을 초대하여 개관식까지 열었지만, 이 역시 2년도 지나지 않아 일반 전시장으로 변모했다. 이 과정에서 사진계 인사들은 이런 저런 경로로 사진전문갤러리로 지키려고 노력했지만 무산된 듯하다. 이 갤러리는 올해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그룹전, 심지어 제주도립미술관 교육프로그램 이수자들의 과제로 만든 전시까지 들어오면서 예술공간 이아의 전시장과 유사하게 이런 저런 모든 전시에 사용되고 있다. 부디 이런 방향 설정이 예술계와 시민들의 거리를 좁히는 데 기여하고 문화를 향유하는 인구가 늘어나는데 기여하길 바란다. 

12월 초 산지천갤러리의 전시 장면. 사진=양은희 ⓒ제주의소리
12월 초 산지천갤러리의 전시 장면. 사진=양은희 ⓒ제주의소리

크게 눈에 띄지 않았지만 제주문예회관에서는 지난 10월 흥미로운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그동안 1주일간 전시실 대여를 하던 내규를 2주일로 늘리는 것이 어떠냐는 설문을 돌린 바 있다. 1주일 내에 설치, 전시, 철수를 해야 하는 빡빡한 일정으로 정작 전시기간은 4-5일에 불과한 데, 일부에서 꾸준히 타 지역처럼 2주일로 늘리는 것이 어떠냐는 의견이 제시되었었다. 익숙함의 힘이 컸었는지 다수의 답은 1주일을 선호했고 2주의 꿈은 당분간 실현되지 않을 것 같다. 문예회관에서 여유 있게 보여주고 관람하는 문화는 아직 요원하다.

프랑스 영화와 프랑스 미술이 눈에 띈 하반기였다. 세계화를 비판하는 지식인들이 종종 탈서구와 탈유럽주의를 표방하는 시대에 제주에 온 프랑스 문화는 눈길을 끈다. 프랑스에서 유학한 고영림 박사가 만든 제주프랑스영화제는 그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벌써 10년을 맞았다. 올해는 프랑스 영화 상영을 넘어 공모전을 추가하며 전 세계의 프랑스어 인구의 시선을 받기 시작했는데, 이런 영화제에 주한 프랑스 대사가 참석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몇천만원의 예산에 비해 파급력이나 효율성이 높기는 하나 개인의 헌신적인 노력을 넘어 지속가능한 시스템 구축이 절실해 보인다.  

프랑스영화제가 개인의 열정으로 유지되고 있다면 제주도립미술관의 ‘프렌치 모던’은 기획사에 의뢰해 만든 1회성 프랑스 미술 전시이다. 미술관 개관 1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를 자체적으로 만들지 못하고 기획사에 의뢰한 이유는 대충 짐작이 가지만 수억을 들인 이 전시가 자체 학예역량 강화에 얼마나 도움이 됬는지 돌아보는 시간이 요구된다. 미술사 역시 탈서구와 탈유럽주의의 시각을 지향하고, 구글의 ‘artandculture’에 들어가면 마네, 모네, 르노아르부터 반 고흐 등 수많은 유럽의 예술가들의 작품을 고화질로 감상할 수 있는 오늘날, 이 전시를 공공미술관에서 개최해야 하는 의미를 더 정교하게 제시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크다. 

-제주도립미술관의 ‘프렌치 모던’전 관객을 위한 포토존. 사진=양은희 ⓒ제주의소리
-제주도립미술관의 ‘프렌치 모던’전 관객을 위한 포토존. 사진=양은희 ⓒ제주의소리

내년에도 ‘문화예술의 섬 제주’의 불씨가 될 사업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제2회 제주비엔날레가 열릴 예정이다. 1년을 늦추고 여는 행사이니 만큼 이번에는 외부 기획사에 전체 예산을 맡기는 용역형 비엔날레가 되지 않기를 바래본다. 20억 매출을 이룬 아트페어 ‘아트제주’와 같은 기간에 열리면 더욱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도 같은데, 그런 협업이 가능한 환경이 절실하다.

이외에도 2018년 문화계를 강타했던 소위 ‘재밋섬 사태’가 해결되고 추진될 지, 문화재청이 문화재로 등록하려던 것을 저지하고 복합문화시설로 방향을 돌린 시민회관 리모델링 사업의 예산 확보도 귀추가 주목된다. 제주문학관 건립 사업, 제주영상문화산업진흥원 리모델링 사업, 실내영상스튜디오 조성 등에는 수백억의 예산이 투여될 계획이다. 

사실 이런 외형적인 인프라 구축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외관 속에 담아 낼 내용이다. 급속히 사라져가는 전통문화와 근현대의 제주의 문화와 예술의 기록과 자료 수집, 그 자료에서 제주의 가치를 연구하고 미래에 전달할 인재 양성, 그 가치를 해석하여 예술과 문화산업으로 승화시킬 기회의 제공, 완성된 예술과 콘텐츠를 도민과 전 세계에 널리 확산하는 적극적인 홍보 시스템이 절실하다. 이런 일들은 건물 없이도 당장 시행할 수 있고 해야 할 것들이다.  

*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필자 양은희는... 

양은희는 제주에서 나고 자라 대학을 졸업한 후 미학, 미술사, 박물관학을 공부했으며, 뉴욕시립대(CUNY)에서 미술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9 인천여성미술비엔날레>, <조우: 제주도립미술관 개관 1주년 기념전>, <연접지점: 아시아가 만나다> 등의 전시를 기획했으며, 여러 미술잡지에 글을 써왔다. 뉴욕을 현대미술의 눈으로 살펴 본 『뉴욕, 아트 앤 더 시티』 (2007, 2010), 『22개 키워드로 보는 현대미술』(공저, 2017)의 저자이자 『기호학과 시각예술』(공역, 1995),『아방가르드』(1997),『개념 미술』(2007)의 번역자이기도 하다. 전 건국대학교 글로컬문화전략연구소 연구교수. 현 스페이스 D 디렉터 겸 숙명여자대학교 객원교수.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