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시선] 국회 주문에도 국토부·제주도 역할 의문

“도민 갈등 해소를 위해 도민의견이 충분히 반영되도록 노력하고, 이를 감안하여 예산을 집행한다”

국회가 제주 제2공항 예산을 의결하면서 이같은 부대의견을 달자 시민사회는 적극적으로 의미를 부여했다. 한마디로 도의회의 공론화 절차를 국회가 인정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또한 공론화를 통한 갈등해소 절차가 완료되는 시점까지는 예산 집행이 중단될 것으로 전망했다. 나아가 제주도 역시 도의회 특위(‘제2공항 건설 갈등 해소를 위한 특별위원회’) 활동에 협조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낙관했다. 

특위가 지난달 특위 활동 기간 만큼은 기본계획 고시나 예산 편성을 보류해달라고 청와대와 민주당 중앙당에 요청한 뒤 국회가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조건을 걸었으니 시민사회가 잔뜩 기대를 거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구속력을 떠나 우선 국토교통부가 국회의 주문을 얼마나 무겁게 받아들이느냐는 문제가 남는다. 

상황이 달라졌는데 초를 치는 것 같아 이 말 만은 하지 않으려 했다. 솔직히 국토부는 믿기 어렵다. 도민사회에서 너무 신뢰를 잃었다. 포장을 걷어내고 보면, 국토부의 일관된 기조는 ‘강행’이었다. 잠깐 숨을 고를 때도 있었으나, 그건 정치권이 나설 때 뿐이었다. 

지난 2월 입지선정 타당성 재조사 검토위원회 활동기간을 2개월 연장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당·정협의회 합의사항 중엔 ‘제주도가 합리적, 객관적 절차에 의해 도민 등의 의견을 수렴해 제출할 경우 이를 정책 결정에 충실히 반영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의견 수렴 주체가 제주도로 돼 있어서인지, 김현미 장관도 토를 달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국토부는 절차란 절차는 다 거쳤다는 말만 반복했다. 국회가 진행 상황을 몰라서 도민의견을 충분히 반영하라는 주문을 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국토부가 이번에는 어떻게 반응할지 자못 궁금하다.   

제주도 또한 국토부 못지 않았다. 오히려 더했다. 심지어 특위 활동에 재를 뿌리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그래도 지난달에는 원희룡 지사가 “도의회 특위가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활동을 한다니 지켜보고 존중은 하겠지만…”이라고 말해, 적어도 어깃장은 놓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웬걸, 최근 특위는 활동 예산(제2공항 건설 갈등해소 방안 연구조사) 편성 조차 거부당했다. 결정은 학술용역심의위원회에서 내려졌으나, ‘원심(元心)’이 배제됐다고 보는 이는 드물다. 각종 위원회가 도백의 의도대로 움직였던 과거 사례를 들먹일 필요도 없다. 당일 오전 원 지사는 인터넷기자협회와 가진 간담회에서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세미나나 토론회, 사무비 수준이라면 문제가 안되는데, 특정사안에 대한 연구용역을 하겠다는데 찬성해 줄 수 있겠느냐”고 했다. 

도무지 물러서는 법이 없다. 어떻게든 갈등을 풀어보겠다는데 못이기는 척 지나갈 줄도 모른다. 

특위 구성은 도민 청원에 따른 막다른 선택이었다. 갈등의 골은 깊어만 가는데, 도정은 손을 놓고 있었고, 도의회 역시 제 역할을 하지 못해 비판이 고조되던 상황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특위를 띄운 도의회가 한발 양보해도 도정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지난달 도의회가 특위를 구성할 때 명칭에서 ‘도민 공론화’를 뺀 것은 의회 내부의 이견 탓도 있었지만, 다분히 제주도를 의식했기 때문이다. 의견 수렴의 방법으로 어느 한 가지를 고집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그동안 제주도는 공론화라는 단어에 집착한 나머지 “초법적” “월권”을 운운하기 바빴다. 그 바탕에는 “제2공항은 국책사업”, “추진주체는 국토부”라는 인식이 깔려있다. 

형식 논리에 갇힌, 아니 갇히고 싶었는지 모르는 도정 앞에서 이제 제주도민의 자기결정권은 언급하기도 지쳤다.  

이런 식이라면 이번 국회의 주문에도 제주도는 무관한 듯 무심한 표정을 지을게 분명하다. 도대체 도민 의견은 누가 구한단 말인가. 한 템포 늦었지만, 도의회마저 나서지 않았다면 도민들은 정말 처량한 신세가 될 뻔 했다. <논설주간 / 상임이사>

* 소리시선(視線) /  ‘소리시선’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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