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의 노동세상](16) - 직장 내 괴롭힘 없는 연말연시를... 

한해를 돌아보는 12월이 되었다. 올해 노동관계법령에서 이슈가 되었던 내용 중의 하나는 지난 7월 16일부터 시행된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다. 5개월이 지난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근로기준법에“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개념을 법률상으로 정의하여 사회적으로 직장 내 괴롭힘이 불법임을 규정한 것이다. 법상 명시된 직장 내 괴롭힘이란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라고 정의되어있다. (자세한 내용 : 2019. 7. 4, 김경희의 노동세상 - 인격 무너뜨리는 직장 내 괴롭힘...엄연한 '불법')

도내에서 발생하는 직장 갑질을 신고하고 함께 대응할 수 있는 온라인 공간인 ‘제주직장갑질119’가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으로 개설되어있다. 이 공간을 통해 지난 법 개정 이후 다양한 사례가 접수되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시행 이후에 도내 각 사업장에서도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교육이 진행되기도 하였으니 과거에 비해서는 법 시행 이후에 확실히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인지도는 더 높아졌을 것이리라 생각한다. 

높아진 인지도만큼 일하는 사람들이 겪는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제보도 광범위하게 접수되었다. 

후배에게 매일 술자리를 강요하고, 계산도 후배에게 맡기는 직속상사가 있었다. 후배는 얼마 안 되는 월급의 대부분을 술값으로 지출해야했고 몇 개월을 반복하다 상사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며 익명방에 제보하였다. 내용상으로는 명백한 직장 내 괴롭힘이었지만 해당 제보자가 직업군인이었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상이 아닌 별도의 구제방법이 필요한 경우였다.  

규모가 크지 않은 회사에서는 상사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이유로 하여 해고를 한다거나 임금삭감, 업무상의 불이익을 주는 경우들도 있었다. 소규모 사업장은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제도가 없는 경우도 있었다. 별도의 임금체불 진정이나 부당해고 구제신청 등을 통해 노동조건 저하의 사유가 갑질에 의한 것임을 밝혀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사무실 내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하여 주변의 동료가 목격을 하다가 제보한 경우도 있었다. 제보 이후, 괴롭힘을 당한 사람은 본인이 원해서 다른 부서로 발령되었는데 정작 괴롭힘을 제보한 목격자와 가해자는 같은 부서에 있으면서 관계가 너무 힘들다는 것이었다. 현재 법에서는 제3의 제보자에 대한 보호규정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사업주와 위탁계약을 맺고 사업을 운영하는 이들에게 사업주가 매출이나 실적강요를 반인권적인 방법으로 하는 곳이 있다. 온갖 강요와 폭언에 시달리더라도 이들은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되어 근로기준법상의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적용대상이 되질 않는다. 불공정거래법의 내용을 강화하거나 별도의 민‧형사적 절차를 통해 구제를 받을 수밖에 없다. 

한 달에 한 번 전체직원을 대상으로 특정종교를 강요하는 침해행위가 발생했지만 가해자가 사장이라서 직장 내 괴롭힘 제도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의 체계 내에서 다양한 문제가 모두 해결되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법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일하는 사람들이 본인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하여 “아니, 이거 직장 내 괴롭힘이 아닌가?”라는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거 직장 내 괴롭힘이 아닐까?”라는 질문은 본인이 대면하는 다양한 상황에 대하여 더 이상 개인의 결과물이 아닌 직장이라는 공간에서 제도적‧조직적인 기준으로 판단하는 변곡점으로 작용하게 될 질문이다. 

작년 12월, 제주공항에서 특수경비대로 2년 넘게 일하던 27살 청년노동자가 직장 내 괴롭힘의 과정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조금이라도  더 일찍 시행되었다면 결과는 달랐을까? 허망하게 아들을 잃은 아버지는 오늘도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활동을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직장 내 괴롭힘이 안정적으로 정의되기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연말연시가 다가오면서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할 수 있는 여지도 많을 것 같다. 송년회나 회식자리에서 술을 강요하면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될 수 있다. 2019년 12월, 직장 내 괴롭힘 없는 연말연시를 위한 방법을 고민해보았으면 한다.

# 김경희는?

‘평화의 섬 제주’는 일하는 노동자가 평화로울 때 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노동자의 인권과 권리보장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공인노무사이며 민주노총제주본부 법규국장으로 도민 대상 노동 상담을 하며 법률교육 및 청소년노동인권교육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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