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世通, 제주 읽기] 152. 위외, ‘대장정’, 송춘남 옮김, 연변교육출판사, 2017.

 위외, ‘대장정’, 송춘남 옮김, 연변교육출판사, 2017. 제공=고명철.

1.
중국 심양에 있는 서탑가에 자리한 한 서점을 둘러보던 중 중국 소설가 위외(魏巍, 1920-2008)의 장편소설 ‘대장정’의 한글 번역본이 눈에 띄었다. 이미 이 소설은 한국에서 같은 번역자의 동일 제목으로 출간된 적이 있어 그리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동안 중국의 ‘대장정(大長征)’에 대한 것을 간헐적으로 들었고, 다큐멘터리로 만났던 역사적 실재에 대한 문학적 접근이 퍽 궁금하였던 터에 읽기 시작하였다.

내가 구입한 ‘대장정’은 중국의 길림성 연변교육출판사에서 상, 하 두 권으로 발행한 것인데, 작가 위외는 애초 중국인민해방군의 전신인 홍군(紅軍) 창립(1927) 60돌을 맞은 1987년에 ‘지구의 붉은 띠(地球的紅飄帶)’란 제목으로 이 작품을 발표하였다. 이 소설의 책머리에 언급됐듯이, “대장정은 문학적 언어로 장정을 다룬 첫 장편거작”으로, 20세기 전반기 중국 혁명의 과정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역사를 정면으로 다룬 대작으로 손색이 없다. 

2.
그러면, 우리는 중국의 대장정을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그리고 이것을 어떻게 알고 있을까. 감히 말하건대, 현재의 중국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장정을 중국인 못지않게 우리도 잘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이것을 두고, 즉 중국의 공산 혁명을 이해하고자 하는 것을 두고, 반국가적 혹은 반체제적 정치 입장이라면서, 아직도 시대퇴행적인 구태의연한 이데올로기적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면 우리는 여전히 냉전시대에 감금돼 있는 셈이다. 중국의 ‘대장정’을 냉전적 인식을 바탕으로 만날 게 아니라 현재의 중국에 이르는 역사적 도정에서 중국인들이 그들의 혁명을 어떻게 인식했고, 그것을 그들의 삶의 현장에서 어떻게 육화하고 있었던가, 그러면서 그들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갱신시키는, 즉 삶의 혁명을 이루는 것에 대해 어떤 경이적 순간을 살아냈던가……, 바로 이러한 것들을 우리는 만나볼 필요가 있다. 

모택동이 숨을 고르더니 침통하게 말했다.
"물론 우리도 큰 손실을 입었습니다. 우리가 출발할 때는 8만 6000명이었습니다. 지금은 7000명입니다. 7000명이 너무 적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적습니다. 하지만 동지들, 살아남은 7000명은 혁명의 씨앗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인민은 우리의 어머니이고 우리를 길러준 땅입니다. 씨앗이 이 땅에 떨어지기만 하면 뿌리를 내리고 싹이 트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중략) 지금 우리는 유격전으로 싸우지만 앞으로는 대규모로, 산을 무너뜨리고 바다를 메울 기세로 싸울 때가 올 거라고 저는 단언합니다."('대장정', 하권, 342쪽)

이 소설은 중국 홍군이 국민당의 장개석의 파상적 공격에 몰리면서 중국의 남부 장시성(江西省)을 1934년에 떠나 무려 368일 동안 대장정을 거친 끝에 1935년 중국의 북부 산시성(山西省)에 이르게 되는 시기를 다루고 있다. 이 대장정이 얼마나 위험하고 힘들었는지 출발할 무렵 약 8만 여 명에 이르는 병력이 도착할 때는 7000여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군사학 전문가 아니더라도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이 정도의 병력 손실이라면 엄청난 규모의 손실인 만큼 아무리 홍군이 대장정에 성공했을지라도 이후 혁명에 성공하여 중국 대륙을 통일함으로써 마침내 중화인민공화국을 창립(1949)할 것이라고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대장정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대체 이 대장정은 중국 혁명의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을까. 

위외의 ‘대장정’은 일종의 역사소설이다. 역사적 실재를 다루되 그것에 함몰되는 게 아니라 작가의 눈에서 포착되는 역사의 안팎을 작가 특유의 심미적 이성의 언어로 표현해낸다. 때로는 아주 미시적으로, 때로는 거시적으로, 이 중층적 작가의 시선을 통해 작가는 역사적 진실에 육박해들어간다. ‘대장정’이 그렇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그는 이 작품을 쓰기 위해 무려 1만 2000㎞에 해당하는 대장정을 두 차례 답사하면서 당시 역사를 재구성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은 당시 숱한 사건과 경험들의 철저한 사례와 고증을 바탕으로 한 역사의 기록으로도 손색이 없다. 소설의 형식을 빈 ‘대장정’의 기록으로 훌륭하다. 때문에 이 작품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기록문학의 성격이다. 대장정에 대해 산재한 온갖 기록들, 물론 여기에는 문서 기록뿐만 아니라 대장정에 참여한 중국인들의 구술도 해당한다. 흔히들 우리는 역사소설을 생각할 때, ‘소설’의 측면만을 상대적으로 비중 있게 다루다보니, ‘역사’의 측면을 소홀히 간주하기 십상이다. 역사소설에서 다뤄지는 역사를 허구의 측면으로만 바라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역사소설을 이렇게 생각할 수는 없다. 역사소설에서 허구가 중요하되 그 허구의 바탕을 이루는 역사의 실재를 주목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대장정’은 우리에게 익숙한 일반적 역사소설과 달리 역사의 실재에 보다 비중을 둔 기록문학의 성격이 짙다. 따라서 중국의 대장정에 대한 역사를 공부하는 차원에서도 이 작품은 적극 권장할만하다. 

3.
이와 관련하여, 이 작품에서 눈여겨 볼 것은 이 작품은 대장정을 일방적으로 미화하거나 신비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국의 가파른 협곡과 험준한 산, 순탄하지 않은 여정 속에서 국민당 군대와 맞서 싸워야 하는 홍군의 위대성만을 내세우지 않는다. 모택동을 비롯한 혁명 동지들은 국민당의 파상적 공격을 피해 게릴라식 공격과 저항을 하면서 승리와 패배를 경험하지만, 작가는 이 승리만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대장정은 순탄하지 않았고, 그 도정에서 홍군 내부는 심한 내홍을 겪기도 한다. 모택동과 주은래를 비롯한 홍군의 지휘부는 매사 의견 일치를 보았던 것은 결코 아니다. 공산당 내부의 권력 경쟁과 주요 사안에 따른 의견 충돌은 물론, 중국의 북부로 이동하면서 게릴라식 싸움을 할 게 아니라 국민당 군대에 맞서기 위해 남하하여 정규군과 같은 방식으로 싸울 것을 주장하기도 하는 등 홍군 내부의 의견은 마찰이 심할 적도 있다. 작가는 이 마찰과 갈등을 애써 봉합하지 않는다. 실제 대장정 가운데 그랬듯이, 작가는 이 갈등을 홍군의 지휘부가 어떻게 마주했고, 그것을 어떠한 방식으로 극복해갔는지를 세밀히 추적한다. 작가가 주목한 것은 이 내부의 갈등이 어느 특정한 혁명가의 탁월한 능력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라 혁명에 참여한 동지들의 민주주의적 치열한 토론의 과정 속에서 해결책을 찾았다는 점이다. 어떤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과정에서 내부의 치열한 민주주의적 토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새삼 성찰하도록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과정 속에서 대장정을 통한 모택동의 게릴라식 전략은 홍군뿐만 아니라 홍군을 지지한 중국 인민들로 하여금 혁명의 설득력을 지니도록 한다.  

그런데, ‘대장정’에서 또 눈여겨 볼 것은 사투를 건 대장정이 가능하도록 한 힘은 혁명을 반드시 실천하겠다는 불굴의 의지뿐만 아니라 그 강인함을 감싸고 있는 모종의 여유와 부드러움이 지닌 낙천성이다. 중국어에 ‘카이완시아오(开玩笑)’라는 말이 있다. 어떤 희생을 감내하면서도 대장정을 함께 하고, 끝까지 대장정을 포기하지 않도록 한 불가사의한 힘은 이 ‘카이완시아오’에 있지 않을까. 숱한 전장터에서 어제의 동료가 주검으로 눈 앞에 있고, 인간의 힘으로 도저히 버티기 힘든 매서운 자연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동료들 곁에 있어줌으로써 큰 버팀목이 되었던 힘은 ‘카이완시오’에 있지 않을까. 이것을 한마디로 번역하기는 힘들지만, 아무리 혹독하고 힘든 현실에서도 동료들과 함께 하는 가운데 긴장에서 해방된 순간 절로 생기는 웃음이 곧 ‘카이완시아오’라면, 이 웃음이야말로 어쩌면 대장정을 가능토록 한 힘의 근원일지 모른다. 그렇다. 동료들과 함께 하는 이러한 웃음이 불가사의한 대장정의 비결이리라. 그러고 보니, ‘대장정’을 읽는 내내 자꾸만 눈에 밟힌 중국어가 있다. ‘펑요(朋友)’가 그것이다. 우리말에 ‘벗’이란 단어가 이것에 가장 가까울까. 서로 흉허물이 없는 믿음을 바탕으로 형성되는 자연스런 인간 관계가 ‘벗’이 아니던가. ‘벗 끼리’는 수평의 인간 관계이고, 그래서 어떤 뜻을 함께 추구한다면 서로 동지(同志)가 되는 셈이다. 중국어의 ‘펑요’에는 이러한 인간 관계를 함의하고 있는 만큼 ‘대장정’에서 만나는 숱한 인물들은 중국 혁명에 동참한 ‘벗’으로서 그들 사이에 공유한 ‘카이완시아오’가 혁명을 이룩하는 힘으로 작용한 것이다. 

4.
21세기 중국의 위상은 하루가 달리 전방위적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우리는 중국을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혹시 아직도 20세기 냉전시대의 이데올로기적 인식에 우리를 가둬놓은 채 중국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냉철히 성찰해야 한다. 때문에 중국의 대장정에 거둔 혁명의 성취들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요구된다. 장편소설 ‘대장정’은 이러한 이해를 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줄 것이다.

▷고명철 교수

1970년 제주 출생. 광운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1998년 <월간문학> 신인문학상에서 <변방에서 타오르는 민족문학의 불꽃-현기영의 소설세계>가 당선되면서 문학평론가 등단. 4.3문학을 전 지구적 차원에서 새로운 세계문학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연구와 비평에 매진하고 있다.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문학(문화)을 공부하는 ‘트리콘’ 대표. 계간 <실천문학>, <리얼리스트>, <리토피아>, <비평과 전망> 편집위원 역임. 저서로는 《흔들리는 대지의 서사》, 《리얼리즘이 희망이다》, 《잠 못 이루는 리얼리스트》, 《문학, 전위적 저항의 정치성》, 《뼈꽃이 피다》, 《칼날 위에 서다》 등 다수. 젊은평론가상, 고석규비평문학상, 성균문학상 수상. mcritic@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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