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연구소, 19일 구술채록집 ‘4.3과 여성’ 발간 기념 북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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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연구소는 19일 구술채록집 북콘서트를 개최했다. ⓒ제주의소리

“아버지가 ‘죽어도 한꺼번에 죽지 말라’고, ‘하나라도 살아남아야 한다’면서 그렇게 한 거지.”

어린 자녀를 동굴에 숨기면서 아버지의 떨리는 목소리와 표정을 82세 노인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선명한 붉은 피, 고막을 울리는 총소리, 한 순간에 생이별한 수많은 인연들까지. 겹겹이 쌓여온 비극이 슬프게도 익숙해졌기 때문일까. 제주4.3의 광풍에 휘말려 가까스로 살아남은 여성들은 담담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그래도 내 삶은 보람 있었다”,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

제주4.3연구소(이사자 이규배, 소장 허영선)는 19일 오후 4시 제주시 아스타호텔에서 구술채록집 ‘4.3과 여성, 그 살아낸 날들의 기록’(도서출판 각) 발간 기념 북콘서트를 열었다. ‘4.3과 여성, 그 살아낸 날들의 기록’은 연구소가 추진하는 ‘4.3생활사 총서’의 첫 번째 결과물이다. 책 속에는 4.3을 겪으면서 살아남은 제주 여성 8명(강숙자, 김연심, 박승자, 안봉순, 이문자, 이승례, 채계추, 홍춘호)의 구술 기록이 담겨있다.

이날 북콘서트 현장에는 증언자 홍춘호(82), 김연심(83) 씨가 직접 참여해 책에서도 밝힌 자신의 4.3 이야기를 들려줬다.

홍 씨는 4.3 당시 안덕면 동광리 무등이왓에 거주했다. 공출에 반발하는 주민과 면 직원의 충돌은 경찰의 학살로 이어졌고, 주민들은 한동안 산 속 동굴에서 피신 생활을 이어가야 만 했다. 

홍 씨는 “우리 아버지는 우리(형제)를 한 군데에 함께 숨기지 않았어. 어머니하고 둘째, 셋째 남동생을 함께 숨게 하고, 사촌 언니하고 나하고 바로 밑 첫째 남동생 이렇게 3명은 따로 숨게 했어. 아버지가 ‘죽어도 한꺼번에 죽지 말라’고, ‘하나라도 살아남아야 한다’면서 그렇게 한 거지. 그러면 우리는 아버지가 숨으라고 한데 가만히 숨어 있는 거야”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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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구술 채록을 맡은 조정희 씨, 증언자 홍춘호 씨, 허영선 소장.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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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춘호 씨가 4.3 당시 피난을 다녔던 장소들. ⓒ제주의소리

그러면서 홍 씨는 당시 피신했던 큰넓궤를 비롯한 장소들을 지도에 표시해 설명하면서 참가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확인한 장소만 12곳이다. 억새 껍질을 벗겨 빨대처럼 만들어 물을 마셨고, 동생 셋이 배고픔에 결국 아사했다는 이야기는 참가자들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현재 고향에서 동광4.3길 해설사 일을 하는 홍 씨는 “4.3 때 겪은 이야기를 지금이라도 이렇게 말하고 있고, 4.3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4.3 때 겪은 일을 얘기할 수 있는 것이 내 삶의 보람인 것만 같다. 마음이 조금씩 편안해지는 것 같다”고 피력해 큰 박수를 받았다.

김 씨는 4.3 당시 제주읍 도두리에 거주했다. 집을 나간 오빠 때문인지 대문에 빨간 딱지가 붙고 어머니는 경찰에 끌려가 매질을 당했다. 그리고 도두마을 주민 포함 소개명령으로 도두리에 모인 사람들이 수 차례 집단학살 당한 ‘돔박웃흠 사건’에 휘말린다.

김 씨는 “이리저리 울면서 돌아다니다 시체를 찾았어. 어머니는 석방증을 손에 쥔 채 어디 총 맞은 곳도 없고 보기 싫게 안 죽었는데, 큰언니 생각은 하면 정말로...철창으로 몸을 이리저리 찢어 버렸더라고. 업은 아이도 같이 죽고. 그 아기 조카가 막 (얼굴이) 잘 났는데, 이제 살았으면 칠십 셋이로구나. 동네에서 여자들까지 나와 시체를 마주잡고, 남의 밭에 밋밋(줄줄이) 공동묘지 하듯 묻었다”고 끔찍했던 기억을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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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자 김연심 씨와 구술 채록을 맡은 양성자 씨. ⓒ제주의소리

김 씨는 이후 부산 영도로 떠나 남항동 통조림 공장, 국제시장 양장점 등에서 일하며 고된 타지 생활을 겪었다. 결혼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와 서럽고 가난한 시집살이를 감내하며 6남매를 길러냈다. 

김 씨는 “사람은 절대 이녁 힘으로만 살지 못하는 거라. 더불어 살아야지. 좋은 일보다 궂은 일이 더 많은게 인생살이고. 그래도 속은 늘 자본주의로 살았어. 부모가 없는 자신에게 믿고 의지할 것은 돈의 힘이라는 걸 알았으니까. 부산 영도에서 살 때부터 나에겐 돈과 신용이 친정부모요, 재산이라고 생각했어. 그래도 4.3사건을 겪으며 억만금의 돈보다 사람 하나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늘 하면서 산다”고 전했다.

한편, 북콘서트 발표자로 나선 허호준 한겨레 기자는 “4.3 당시 모두가 겪었던 고통 위에 어린 소녀로서, 여성으로서 겪었던 고통은 처절했다. 그러나 그런 고통 속에서도 이들은 삶을 살았고, 가족과 마을을 일궜다. 구술채록집에 나온 이들의 기억은 왜 여성의 경험과 기억을 채록해야 하는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평했다. 

나아가 "여성들의 눈으로 본 4.3과 그 속에서의 일상은 어떠했는지를 통해 4.3을 경험한 여성들을 좀 더 이해하고, 그러한 수난이 없도록 역사의 교훈으로 남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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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콘서트 현장.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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