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150. 솔개는 털뿐, 까마귀는 말뿐

* 소로기 : 솔개, 소리개. (제주에서는 흔한 여름새였으나 지금은 겨울에만 볼 수 있다.)
* 터럭 : 털
* 가마기 : 까마귀
 

솔개란 날짐승은 새 치곤 몸집이 우람하게 크다. 한데 막상 털을 뽑고 나면 몸통은 뜻밖에 작다. 온몸이 털로 감싸 있어 커 보일 뿐, 실제는 예상했던 것이 아니다. 겉보기와 사뭇 다르다.

까마귀는 까옥까옥 깍까르르 앙칼지게 울어댄다. 지저귐이 요란스럽다. 흡사 말 많은 사람을 연상케 한다. 사람이 말이 많으면 말발이 서질 않는다. 털을 뽑고 나면 생각보다 몸집이 작은 솔개나, 소리 내 울어대는 까마귀의 빈 울음처럼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이다. 사실, 외양과 실제는 아주 다르다. 사람의 일이 그러하다. 겉치레의 위세와 허세 말이다.
 
‘잡고 보니 털뿐이고, 귀 기울여 듣고 봤더니 말뿐’, 얼마나 거추장스러운가. 또 허황한가. 실제로는 아무것도 없으면서 겉모습만 요란한 모양이다. 아잇적에 많이 들었던 말이 떠오른다. ‘빈 수레가 요란스럽다’ 그리고 ‘빛 좋은 개살구.’
 
딱히 맞는 말이 있다. ‘외화내빈(外華內貧).’

경제활동을 들여다보면,
소득은 적은데 값 비싼 명품을 구입하는 등 지나치게 소비하는 사람이 있다. 그를 모르는 사람은 당연히 부자라고 생각하거나 부러워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의 생활을 외화내빈, 외화내허라 할 것이다.

소득 수준 이상의 소비를 낭비 또는 과소비라 한다. 제 주제를 모르고 행세하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다. 화려한 행각은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쓰다 보면 축나 결국 바닥나고 마는 게 재물(돈)이다.
 
상품의 과대포장, 이것도 분명 외화내빈이다. 어쩌다 무슨 선물세트를 받으면서 느끼는 것. ‘도대체 무슨 포장이 이렇게 요란한가? 따지고 보면 소비자가 내는 값 속에 비싼 포장비가 그 일부로 들어가 있는 게 아니냐.’

상품은 품질로 평가 받아야 함에도 그렇지 않은 세상이다. 내용을 돋보이게 하려고 지나치게 화려한 포장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렇게 과대포장을 한 뒤 상품의 가치보다 더 비싸게 파는 수가 많다. 소비자 입장에선 외화내빈이다. 그렇지 않은가.
 
문득 ‘속 빈 강정’이란 말이 생각난다. 강정은 애초 속이 텅 비도록 만들어진 과자다. 텅 비어양 제값을 하는 과자인데, ‘속 찬 강정’은 강정이 아닌데, 속 빈 강정을 실속 없다는 뜻으로 쓰는 건 문제가 있다. 실소할 일이다.
 
내친 김에 말이 확산하고 있다. 북핵과 그롸 관련해 진행되고 있는 외교 문제 말이다.

올해 들어 한반도 정세는 그야말로 숨이 가쁘게 내달려왔다. 충격과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일단 북한이 핵과 탄도미사일 실험을 중단했고, 불과 반년 사이에 세 차례나 남북 정상회담을 가졌다. 싱가포르에서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됐으며, 미 국무장관은 과거 정부는 집권기간에 한 번 가기도 힘들었던 북한을 네 차례나 드나들었다.

북한의 거듭된 핵‧미사일 실험으로 군사적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했던 한반도에서 평화를 꿈꿀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북‧러 정상회담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 그리고 북‧일 정상회담까지 예측할 정도로 활발한 주변의 외교적 움직임이다.

하지만 화려한 외교 무대 뒤에서 정작 북한 핵 문제는 외화내빈 속에 장기화의 늪에 빠지지 않을까 우려되는 국면이 없지 않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는 형국이다. 심히 우려된다는 의미다.

북핵 해결은 실마리가 잡힌 듯하면서도 여전히 갈 길이 멀고 험난하며 또 할 일도 많다. 급변하는 한반도의 안보지형 속에서 외교라는 현란한 흐름에 도취해 북핵이 외화내빈의 함정에 빠지는 우를 범해서는 절대 안된다.

너무 앞서 가지 말아야 한다. 조정자‧중재가 역은 좋으나 속도 조절이 필요한 시점이다.
 
“소로긴 터럭뿐, 가마긴 말뿐”이 돼선 안된다. 중요한 것은 겉이 아니라 내면이다. 손에 넣을 게 실속이 있어야 한다. 이왕이면 풍족해야지. 추수 뒤, 농부는 주름을 펴며 활짝 웃는다. 한 해의 고단함을 잊는다. 겉만 화려해선 안되느니. /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김길웅.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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