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음지의 이웃 이주노동자] 전문가들 "시대착오적 '불법체류' 프레임 벗어나야" 제언

제주시 외곽 한적한 농촌에서 한창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 모습. 음지에 철저히 가려져 있어 인권 사각지대에 놓이는 등 불법체류 노동자들에 대한 논의를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 제주의소리
제주시 외곽 한적한 농촌에서 한창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 모습. 음지에 철저히 가려져 있어 인권 사각지대에 놓이는 등 불법체류 노동자들에 대한 논의를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 제주의소리

흔히 '불법체류자'로 명명하는 '미등록 외국인 이주노동자'가 제주에도 어느새 1만여명이 자리잡고 있다. 마땅한 대책도 없이 쉬쉬하는 사이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찾아온 이주노동자들은 지역 산업 전반에 뿌리내렸다. 사실상 걷잡을 수 있는 수준은 이미 넘어선 셈이다.

누구나 인식하고 있지만 쉽게 접근할 수 없었던 '이주노동자 이슈'를 지역사회에서 툭 터놓고 논의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당면한 현실을 인정하고 실질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가 2019년에 이어 2020년에도 '미등록 외국인 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탐사 보도할 예정이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E-9(비전문취업)과 H-2(방문취업) 등 취업비자로 제주에 체류중인 외국인은 각각 3957명, 785명이다. E-7, F-4 등도 취업이 가능한 비자이지만, 이 경우는 전문성이 있는 일부 직종에 한정된 것으로 그 수가 미미하다. 단순노무직으로 취업한 이들은 대부분 E-9과 H-2 비자 발급자다.

같은 기간 제주지역의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1만3517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산술적으로 통계에 잡히는 외국인 노동시장의 3배를 넘어섰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들이 종사하고 있는 대다수의 현장은 장시간 노동과 낮은 인건비, 잦은 산업재해 등 열악한 조건을 지닌 곳이다. 특히 내국인도 꺼려하는 지역 깊은 곳의 1차산업 현장이 이들의 주 활동지다. 이주노동자들이 내국인을 대신해 지역 내 3D업계를 지탱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주시 외곽 한적한 농촌에서 한창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 모습. © 제주의소리

'불법체류'라는 부정적 프레임에 묶여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산업 현장에서의 역할과 필요성이 일체 무시되고 있었다는 점은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굳이 분류하면 행위 자체에는 반도덕성·반사회성이 없음을 의미하는 '행정범'의 영역에 속한다. 그러나 '불법'이라는 두 글자는 반사회성이 강조되는, 마치 '형사범'으로서의 뉘앙스를 더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실제로 아무런 의식 없이 반복적으로 사용돼 온 '불법체류자'라는 명칭은 이미 전세계적으로 퇴출되고 있는 용어다. 최근 '불법체류자'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라는 국제적 표현으로 대체되고 있다.

전세계 모든 이주 노동자들은 국제법 상 '이주노동자권리협약'의 보호를 받는다. 노동력의 국제적 이동에 따른 노동자의 권리를 국제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국제노동기구(ILO)를 중심으로 체결된 이 협약은 부적법 상태에 있는 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이주 노동자가 향유할 권리, 노동자들의 국제적 이주를 인도적이고 적법한 적법하게 촉진하는 조치 등이 폭넓게 담겼다.

'미등록 이주노동자(unregistered migrant workers)'라는 표현은 이 이주노동자권리협약의 필요성이 제기됐던 1975년부터 사용돼 온 단어다. 유엔이 1994년 국제이주에 관한 결의를 도출할 당시에도 '미등록 이주노동자'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로 한 문서가 채택됐으며, 2009년 유엔 고위급 회담에서는 '불법(illegal) 이주노동자'라는 용어를 반드시 피해야 한다는 결의가 있었다.

반면, 대한민국의 '재한외국인 처우 기본법' 제9조 등에는 오늘날까지 '불법체류외국인'이라는 단어가 버젓이 사용되고 있다. 이미 국제적으로는 40여년 전부터 가치 중립적인 용어를 사용토록 권고했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낯 부끄러운 일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UN 인종차별철폐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에는 '불법체류' 용어를 지양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불법체류라는 용어에서부터 이주노동자들을 법적·제도적 보호에서 제외해 편견과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가 담겼다.

한국기자협회와 국가인권위가 제정한 인권보도준칙 제5장에도 '체류 허가를 받지 않은 외국인에게 범죄자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울 수 있는 용어 사용에 주의한다'고 명시됐지만, 아직도 용어 사용에 있어 관행적인 표현을 답습하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제주시내 공사 현장에서 작업에 나선 외국인 노동자들. © 제주의소리

현장의 전문가들은 이주노동자들을 음지로 몰아넣다보니 갖가지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제도권으로 끄집어내 해결 의지를 가져야만 기형적으로 변질된 노동시장이 양성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외국인노동자 관련 업무를 수행하는 출입국·외국인청의 경우 이주노동자에 대한 단속과 송환 업무만으로도 허덕이고 있다. 현재로서는 단속인력 추가 확보와 강제송환자 임시 보호시설 확충이 숙원 과제인 것으로 전해졌다.

지방자치단체와의 협업 역시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지만, 사실상 제주도정이 맡고 있는 영역은 없다시피 하다. 외국인 노동자 관련 제주도정이 담당하고 있는 업무는 상담센터·쉼터 운영 등 보조적인 지원업무에 불과할 뿐, 미등록 이주노동자 문제에 있어서는 손을 놓고 있다.

[제주의소리]는 2020년 새로운 한해를 시작하면서 외국인 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전문가들의 현장 목소리를 엮었다. 

◇ "음지서 보호받지 못하는 이주노동자...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우 필요"

난민 문제를 비롯한 외국이주민 인권 활동을 벌이고 있는 신강협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 소장은 "이미 이주노동자들이 산업 인력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을 일괄적으로 쳐서 내보내면 제주 경제가 돌지 않는 상황에 이르렀다"며 "이제 외국인청과 제주도가 협의해 산업구조를 어떻게 현실화시키 것인가 논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소장은 "무사증으로 제주에 들어온 노동자도 여러 분류가 있다. 일반 노동자로 식당에 종사하거나 농사를 짓는 분들, 공사현장으로 가는 분들이 있고, 또 하나 심각한 것은 매춘을 하는 여성들도 있다"며 "법적 보호도 안되고 음지에서만 활동하다보니 강력사건과도 연루되는 실정"이라고 했다.

그는 "체류 자체가 불법이라 하더라도 삶과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우와 보호책이 있어야 한다. 이들이 미등록 외국인이라하더라도 노동환경을 안전하게 구성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며 "국제사회에서 비인권적이라고 낙인 찍히면 불안정한 노동구조에서 헤어나올 수 없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 "이상주의적 단순 접근 안돼...지역 갈등 고려해야"

익명을 요구한 학계 전문가는 외국인 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도 이상주의적 관점으로 단순하게 접근해서는 안된다고 경계했다.

지역 내 노동 관련 다양한 운동을 벌여 온 A교수는 "진보적 입장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받아들이면 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낼 수는 있지만, 일단 수용한다고 결정할 경우 상당한 사회적 갈등을 일으킨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들을 받아들인다고 가정할 시 '다문화정책'을 취할 것인지, '동화정책'을 취할 것인지에 따라 문제가 다르다. 이들을 한국 문화와 동화시킨다면 문제가 덜하겠지만, 다문화정책 기조를 유지하면 각자가 지니고 있는 종교나 가치관 등을 인정해줘야 하는데, 현장에서는 쉽지 않은 문제"라고 우려했다.

A교수는 "인권적 기준으로 하면 다문화정책으로 가는 것이 맞을 수 있겠으나 현실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단적인 예로 우리나라가 이슬람 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여 존중해줄 수 있겠는가"라며 "이미 이상주의적 접근과 현실주의적 접근에서 마찰이 발생하는 경우가 세계 곳곳에 있었다. 다문화정책을 폈다가 역풍을 맞은 독일 같은 나라가 대표적 사례"라고 진단했다.

또 "제주만 하더라도 동남아인이 들어왔을 때, 서양인이 들어왔을 때, 중국인이 들어왔을 때 각각의 입장이 달라진다. 노동시장 관련해서도 특정 사용자에게만 고용되는 '노동허가제'인지 자체적으로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고용허가제'인지에 따라 다르다"며 "획일적인 답을 내겠다는 식으로 가면 안된다. 구체적인 안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특별자치도 걸맞는 출입국-노동정책 필요...차별적 대응 철폐"

이주노동자 인권 운동에 몸 담아온 고기복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센터장은 "출입국 정책은 보수적으로 잡는 것이 맞지만, 제주의 경우 현실적인 측면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제도권 틀 안으로 끌어들이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제주의 경우 행정당국이 의지를 갖는다면 특별자치도로서의 취지를 살려 해법을 마련할 수 있다"며 "다른 나라의 예를 들면 지방정부가 외국인 이주노동 문제를 제도권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세금을 내게한다든가, 운전면허증을 부여하는 등 합법적 틀 안에서의 정책을 도입하는 곳이 있다. 당장에 미국만 하더라도 각 주(state)별로 이주노동자에 대한 처우 근거가 다르다"고 설명했다.

고 센터장은 "제주는 농어촌지역에 이주노동자가 굉장히 많다. 계절적 수요로 인해 농번기 때는 유입됐다가 농한기 때는 이 노동자들이 건설업으로 빠져나가기도 한다"고 진단하며 "보수적인 출입국 정책과 맞물려 이미 들어온 노동자에 한해서는 최대한 인권을 보호하는게 맞다는 입장이다. 지방정부의 의지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특히 그는 그동안 사회적으로 등한시됐던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바라보는 시선이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 센터장은 "인권은 비교대상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 모두의 고유한 권리다. 내 자식이 귀하면 남의 자식도 귀하다는 관점 하에 한국 사람이 귀하듯 이주노동자들도 귀하다. 이주노동자들 역시 한 가족을 부양하는 사람이고, 누군가의 가족"이라며 "노동권·건강권 등 모든 부분에 대해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적 부분을 철폐해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 "산업 현장서 필요로하는 이주노동자 수요, 합법적 사례 선순환 시급"

제주지역 이주민의 적응을 지원하고 있는 천주교 제주교구 이주사목센터 김상훈 사무국장은 "1만여명의 이주노동자가 제주지역에 체류중이라고 하는데, 지금까지 아프다며 도움을 요청한 사람은 몇몇 있었어도 배가 고프다거나 잘 자리가 없다며 찾아 온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1만명 모두 지역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것 아니겠나. 그만큼의 수요가 지역에서 필요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사무국장은 "산업 현장에서는 현실을 얘기한다. 이미 일손을 필요로 하는 주민들과 이주노동자 서로 간 공생하는 현실로 가고있다"며 "양 쪽에 다 도움이 될 수 있는, 합법적인 사례로 선순환시킬 수 있는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농번기와 맞물려 단기비자를 발급하는 등의 실체적인 대안을 제시해왔던 그는 "이미 출입국청, 제주도정 등 행정당국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실태조사가 이뤄지고 있으며, 이들이 없으면 제주의 1차산업이 버틸 수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면서 "이제 조사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대책이 나와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또 그는 "제주도는 무사증 제도 때문에 육지부의 다른 지역과 차이가 있다. 이주노동자들이 더 쉽게 들어올 수 있고, 난민 신청자도 다른 지역보다는 많은 편이다. 특히 이들은 제주에만 머물 수 있다. 지역적인 특성을 고려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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