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시선] 주차전쟁 반복돼도 근본처방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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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등반로 들머리 일대에서 주차전쟁이 되풀이되고 있으나 근본처방은 나오지 않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소설가 김현경은 최근 <이 구역의 미친 자는 나요!>라는 글에서 ‘조선 시대 덕후 베스트 5’를 소개했다. 덕후는 전문가 못지않게 어떤 분야에 몰두하거나 대단한 열정을 가진 사람을 뜻한다.  

김 작가가 2위로 꼽은 이는 ‘여행 덕후’ 정란(鄭瀾, 1725~1791년)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전국 곳곳을 여행하고, 산에 올랐으며, 직접 여행기를 썼다는 것이다. 정란은 생애 마지막 목표인 백두산과 한라산 여행을 당시로는 노인이던 50대 후반에 했다고 했다.  

조선시대 덕후들에겐 벽(癖·병든), 광(狂·미친), 치(痴·어리석은) 따위의 부정적인 호칭이 따라붙었다고 한다. 정란이 얼마나 여행에 미쳤길래 훗날 덕후의 반열에 올랐는지는 모르겠다. 허나 분명한 것은 여행 덕후 조차 버킷리스트에 올려둘 정도로 당시 한라산 여행은 결코 쉽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랬다. 조선시대 명산 유람은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었다. 오죽하면 걸어둔 그림을 보면서 그림 속을 유람하는 와유(臥遊)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무엇보다 교통이 불편했고, 또 그럴 여유도 없었다. 더구나 한라산 여행은 제주밖 사람이면 물부터 건너야 했다. 

한라산은 여행 자체가 어렵다보니 기행문도 귀할 수 밖에 없었다. 제주도에서 위리안치(圍籬安置) 되었다가 유배에서 풀린 우국지사 면암 최익현이 한라산 등반 후 남긴 ‘유한라산기(遊漢拏山記)’도 그 중 하나다. 문장이 빼어날 뿐만 아니라 산세와 지형지물에 대한 탁월한 안목을 드러냈다고 하니 덕후와는 다른 차원의 설명이 필요하다.  

면암이 한라산에 오른 건 1875년(고종 12년) 3월. 이 때만 해도 명산 유람은 소수 특권층의 전유물이었다. 곡식 장만도 어려웠던 시절엔 일종의 사치였던 셈이다. 

몰라보게 교통수단이 발달하고, 다들 조금씩은 여유가 생겨서일 게다. 건강을 챙기려는 이른바 힐링 욕구도 한몫 했을 터. 요즘 한라산은 설경을 감상하려는 등반객들로 꽤 북적인다. 특히 주말이나 휴일엔 등반객이 넘쳐날 지경이다. 

여가선용, 무에 나쁠게 있나. 문제는 한라산 들머리가 불법 주정차 차량들로 난장판이 된다는 점이다. 

지난 28일 성판악 초입 모습은 그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수많은 차량이 한꺼번에 몰려 성판악 진입로는 물론 5.16도로 일대가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했다.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오가는 차량들의 교행 조차 어려워졌다. 이 와중에 몇몇 운전자는 주요 길목에 차량을 세워두고는 장시간 산행에 나서는 바람에 극심한 혼잡이 빚어졌다. 자치경찰은 현장을 정리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주차전쟁은 이곳에서만 벌어지는게 아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영실도 사정은 비슷하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에 혀를 차게 된다.

이쯤되면 문명의 이기(利器)가 초래한 역설 같기도 하지만, 사실은 명산을 너무 쉽게 오르려는 건 아닌지 각자가 되새겨 볼 일이다. 느긋한 마음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도 괜찮지 않느냐는 것이다. 

공자 가라사대, 지자요수 인자요산(知者樂水 仁者樂山)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는 말이다. 왜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는지 그 깊은 뜻까지 헤아려보지 않았으나, 적어도 일부 얌체족들의 행위는 인자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정작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다. 등반객만 탓할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내년 2월부터 시행하기로 한 정상 탐방예약제가 근본 처방이 될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성판악의 경우 하루 1000명으로 제한한다고 하나 주차전쟁을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보다 못한 한 공무원이 ‘5.16도로 제주시 기점 인근 주차장 조성, 공영버스 배치’ 등 여러 방안을 담은 대책을 조심스럽게 제안했으나 씨도 먹히지 않았다는 말을 건네들었다. 웬만해선 움직이지 않는 공직 사회의 민낯을 또 보게 된다.    

하루 앞으로 다가온 경자년 새해를 한라산 정상에서 맞이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논설주간 / 상임이사>

* 소리시선(視線) /  ‘소리시선’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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