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세계자연기금, 각 기관 연구진 30여명 투입...고래 장기 내부에서 1m 넘는 낚시줄 발견

길이 13m, 둘레 5.8m, 무게 약 12톤의 암컷 참고래 사체의 사망원인을 밝히기 위한 부검이 1월3일 제주 한림항에서 진행되고 있다. 대형고래에 대한 부검은 이번이 국내 첫 사례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제주시 한림읍 한수리위 위치한 한림항 방파제에 들어서자 대형 천막 3동이 눈에 들어왔다. 담당자의 신호와 함께 30여명이 일제히 천막 안으로 들어가 고래의 배를 가르기 시작했다.

해상에서 죽은 채 발견된 참고래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한 연구가 제주에서 처음 시작됐다. 일반 고래 부검은 적지 않았지만 대형 고래에 대한 부검은 국내에서 이번이 최초다.

세계자연기금(WWF)는 3일 오전 7시30분 제주시 한림항 선착장에서 이영란 해양보전팀장의 집도로 참고래 부검 및 해체작업을 진행했다. 

이 참고래는 길이 13m, 둘레 5.8m, 무게 약 12톤의 암컷이다. 참고래는 대왕고래 다음 가는 대형의 수염고래다. 길이 최대 27m까지 자라며 무게만 110톤에 달한다.
 
현장에는 김병엽 제주대 고래·해양생물보전연구센터장과 서울대, 한양대, 인하대 수의학과·해양과학 연구진 및 학부·대학원생 등 각 분야 전문가 약 30여명이 참석해 부검 전 과정을 함께했다.

고래를 덮고 있던 천막를 제거하자 아파트 4층 높이의 거대한 참고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부패가 상당 부분 진행됐지만 외형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가스빼기 작업을 위해 연구진이 칼로 몸체 곳곳에 칼집을 내자 매캐한 냄새가 진동했다. 이영란 팀장이 절개부분을 결정하고 곧바로 견갑골 제거와 복강 노출 작업이 이뤄졌다.

칼을 대자 10cm 두께의 살이 그대로 드러났다. 안쪽으로는 장기가 선명했다. 연구진은 각 부위별로 장기 적출작업을 진행하고 척추주변 근육을 제거하기 위한 사전 작업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위로 보이는 장기 지점에서 1m10cm 길이의 낚시줄이 발견됐다. 이는 고래가 유영을 하던 중 입을 통해 흡수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길이 13m, 둘레 5.8m, 무게 약 12톤의 암컷 참고래 사체의 사망원인을 밝히기 위한 부검이 1월3일 제주 한림항에서 진행되고 있다. 대형고래에 대한 부검은 이번이 국내 첫 사례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길이 13m, 둘레 5.8m, 무게 약 12톤의 암컷 참고래 사체의 사망원인을 밝히기 위한 부검이 1월3일 제주 한림항에서 진행되고 있다. 대형고래에 대한 부검은 이번이 국내 첫 사례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연구진이 부검과정에서 1m10cm 길이의 낚시줄을 발견했다. 이 줄은 고래 장기 내부 위 부근에서 발견됐다. ⓒ제주의소리
연구진이 부검과정에서 1m10cm 길이의 낚시줄을 발견했다. 이 줄은 고래 장기 내부 위 부근에서 발견됐다. ⓒ제주의소리

연구진은 고래 사체의 장기를 분류해 기생충과 질병, 잔류유기물오염물질(독성. POPS), 해양쓰레기, 먹이분석 등 5개 분야별로 연구 활동을 벌이기로 했다.
  
이를 통해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참고래에 대한 국내 연구 자료를 확보하고 대형고래의 사망 원인을 밝힐 계획이다.

통상 참고래는 겨울철 극지방에서 번식활동을 위해 적도부근으로 이동한다. 이 참고래는 태어난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아기 고래다. 연구진은 갓 젖을 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참고래는 일반적으로 6~7마리가 무리를 지어 이동한다. 연구진은 이 고래가 어미와 무리에서 이탈해 제주 해역으로 들어오게 된 경위와 이유를 밝힐 예정이다.

외국에서는 박테리아 등 바이러스나 패혈증으로 인한 사망과 해양쓰레기나 선박 충돌 등 외부에 의한 사고 등이 보고된 바 있지만 국내의 경우 관련 사례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영란 세계자연기금 해양보전팀장은 “대형 고래의 사체가 발견된 적은 있지만 대부분 유통이 이뤄져 부검은 이번이 국내에서 처음”이라며 “해양생물학적 연구 가치가 높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어린 대형고래가 어떤 경로로 제주 해역까지 이동하고 사망했지만 원인을 밝히려 한다”며 “다만 부패가 이미 많이 진행돼 어떤 결과를 얻을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길이 13m, 둘레 5.8m, 무게 약 12톤의 암컷 참고래 사체의 사망원인을 밝히기 위한 부검이 1월3일 제주 한림항에서 진행되고 있다. 대형고래에 대한 부검은 이번이 국내 첫 사례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길이 13m, 둘레 5.8m, 무게 약 12톤의 암컷 참고래 사체의 사망원인을 밝히기 위한 부검이 1월3일 제주 한림항에서 진행되고 있다. 대형고래에 대한 부검은 이번이 국내 첫 사례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참고래는 2019년 12월22일 오후 9시20분쯤 제주시 한림항 북서쪽 약 40km 해상에서 조업 중이던 여수선적 외끌이저인망 어선 H호(78t)에서 처음 발견됐다.

당초 제주대 연구팀은 밍크고래로 추정했다. 다만 외피가 부패돼 정확한 구분이 쉽지 않았다. 어류 전문가들 사이에도 참고래와 브라이드 고래일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와 서로 엇갈렸다.

해양생태계의 보전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20조에 보호종인 참고래와 브라이드 고래는 가공과 유통, 보관 등의 행위가 금지된다. 반면 밍크고래는 유통이 가능하다.

DNA 감식 결과 참고래로 판명나면서 최초 발견자에 대한 고래유통증명서 발급은 없던 일이 됐다. 해양경찰이 관련 법령에 따라 폐기물로 분류하면서 사상 첫 대형고래 부검이 현실화 됐다.

연구진은 부검이 끝나면 장기 등은 모두 폐기물로 분류하고 육지부로 반출해 소각 처리하기로 했다. 골격은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으로 보내져 약품 처리후 표본으로 제작될 예정이다. 

제주에서는 2004년 9월 제주시 애월읍 하귀리 가문동해안에서 브라이드고래 뼈가 발견된 사례가 있다. 이는 당시 국내에서 발견된 고래뼈 중 최대 크기였다. 현재 이 뼈도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에 전시 돼 있다. 

길이 13m, 둘레 5.8m, 무게 약 12톤의 암컷 참고래 사체의 사망원인을 밝히기 위한 부검이 1월3일 제주 한림항에서 진행되고 있다. 대형고래에 대한 부검은 이번이 국내 첫 사례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길이 13m, 둘레 5.8m, 무게 약 12톤의 암컷 참고래 사체의 사망원인을 밝히기 위한 부검이 1월3일 제주 한림항에서 진행되고 있다. 대형고래에 대한 부검은 이번이 국내 첫 사례다. ⓒ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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