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B하나은행, 사전 통보도 없이 인도적 체류 외국인노동자 계좌정지 논란

인도적 체류허가를 받아 제주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 A씨는 최근 수 년째 사용해 온 KEB하나은행 계좌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정지돼 곤혹을 치러야 했다.

계좌가 무단으로 정지됐음을 인지한 시기는 지난해 12월 말쯤으로 사전 공지도 없이 갑작스레 이뤄진 조치였다. 미처 알지 못한 A씨는 의료비 지급이 불가능 해 긴급한 의료처방마저 제때 받지 못할 위기를 겪어야 했다.

마땅히 의지할 곳 없는 이국만리 땅에서 영문도 모른채 자신의 계좌가 묶인 것이니 A씨의 당혹감은 당황을 넘어 두려움으로 이어졌다. 

은행 측에 바로 전화를 걸어 계좌 정지 사유를 문의했지만, 담당 창구의 직원은 "계좌정지의 이유를 모르겠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A씨는 사흘 뒤 국내 난민인권단체의 도움을 받아 은행에 방문해서야 계좌정지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A씨의 국적이 FATF(Financial Action Task Force, 자금세탁방지국제기구)에서 지정한 '이행취약국가'였기 때문이라는 답변이었다.

하나은행이 FATF '자금세탁방지 및 테러자금조달금지 제도'와 관련 업무 유의사항을 담아 발송한 공문. 제공=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
하나은행이 FATF '자금세탁방지 및 테러자금조달금지 제도'와 관련 업무 유의사항을 담아 발송한 공문. 제공=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

하나은행 등에 따르면 금융정보분석원은 지난해 10월 25일 FATF '자금세탁방지 및 테러자금조달금지 제도'에 중대한 결함이 있는 고위험국가 2곳과 이행취약국가 12곳에 대한 업무 유의사항을 공문으로 발송했다. 공문은 고객확인업무를 철저히 준수하라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문제는 하나은행이 A씨의 국적이 이행취약국가라는 이유만으로 본인에게 사전 연락도 없이 계좌를 막아버리면서 불거졌다. 가장 기본적인 사전 공지 의무조차 저버린 것도 문제지만, 합리적인 이유 없이 특정 국가 출신의 고객에 대한 차별 대우를 한 셈이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 제3호는 출신 국가를 이유로 용역 공급·이용과 관련해 배제·구별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를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하나은행의 조치는 명백한 불법이다. 

문제 제기가 이뤄진 이후 하나은행 본부 담당자는 사전 고지의무 불이행에 대한 실수를 인정하고 계좌정지를 해제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계좌 정지 사유와 이 문제가 단지 담당자 개인의 실수인지 여부에 대한 근거와 관련해서는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답변하지 못하고 있다.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과 천주교 제주교구 이주사목센터 등 외국인 인권단체 등은 이 문제에 대해 7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들 단체는 "FATF 성명서와 관련된 공문은 단지 계좌 이용 시 직원들의 주의 의무만을 규정하고 있었을 뿐이다. 이 성명서를 기초로 구체적으로 특정 출신 국가의 고객들에게만 계좌 이용 중지를 한 것은 일반 고객과 특정 출신 국가의 고객을 합리적인 이유 없이 차별 대우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만약 특정 출신 국가의 고객을 동등하지 않은 비교 집단으로 보더라도 사전 고지의무와 설명의무, 피해예방의무를 생략한 것은 합리적인 이유없는 차별이자 재산권 침해에 해당된다"고 주장했다.

이들 단체는 "이와 같은 일이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으나, 그 피해는 외국인들이 입고 있어서 문제제기가 있으면 그 사건에 대해서만 시정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며 "인권위는 은행이 계좌 이용 정지에 관한 약정을 준수했는지 조사하고, 특정 출신 국가의 고객에 대한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 및 재산권 침해에 관해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울 것을 권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제주의소리]는 해당 사안과 관련 하나은행 측과 수 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하나은행 자금세탁부 담당자는 "해당 건에 대해선 본사 홍보실을 거쳐달라"고 주문했고, 홍보실은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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