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시선] 강창일 의원, 끝까지 아름답게 갔으면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2000년 1월11일 김대중 대통령이 제주4.3특별법에 서명할 당시 배석한 강창일 의원(당시 제주4.3연구소 소장, 왼쪽 사진)과 2020년 1월12일 의정보고회에서 마이크를 잡은 강 의원.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는 20대와 30대, 40대가 지금 국회에는 보이지 않는다”

어느덧 노(老) 정객으로 접어든 강창일 의원의 불출마 이유 중 하나는 세대교체, 물갈이였다. 하기야 그가 정계에 입문할 때가 50대 초반이었으니, 세월의 무게 만큼이나 엄청난 세상의 변화를 실감했을 것이다. 그 변화의 속도를 더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했을 수 있다.  

사실 그는 갈수록 움직임이 둔해졌다. 단순히 나이에서 오는 몸의 둔화를 말하는 게 아니다. 지역주민과의 접촉면이 점점 줄어들었고, 눈부셨던 의정 활동도 예전같지 않아졌다. 돌이켜보자. 초·재선 시절만 해도 국회의원에게 수여하는 웬만한 상은 휩쓸지 않았던가. 이러다보니 밑바닥정서는 ‘이제는 바꿀 때도 됐다’는 쪽으로 흘러갔다.   

여기에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등이 지배할 미래를 대비해야 하는 시점에 칠십을 바라보는 정치인의 역할은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4선 중진의 불출마 이유가 어디 이 뿐이랴. 20대 국회 활동을 갈무리하는 의정보고회에서 강 의원은 많은 속얘기를 토해냈다. 

‘식물 국회’를 한탄했고, 그 속에서 자괴감과 무력감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대한민국이 올스톱된데 대해 무한한 책임감을 느낀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불출마를 통해 정치 개혁을 위한 불쏘시개가 되겠다고 강조했다. 

명분과 모양새를 중시하는 정치인의 ‘말의 향연’ 쯤으로 평가절하 할 수도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밭을 갈아엎는 수준의 개혁 공천이 대세가 된 상황에서 강 의원의 입지가 전에없이 불안정하다는 분석은 많았다. 심지어 불출마를 기정사실로 여기는 사람들도 적지않았다. 

그럼에도 강 의원의 불출마는 박수받아 마땅하다. 어떤 배경에서든 결국 그 결정은 본인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때가 됐다고, 누구나 다 내려놓는 것은 아니다.   

공수신퇴(功遂身退)라고, 무릇 사람은 나서야 할 때와 물러나야 할 때를 잘 알아야 한다. 이게 하늘의 길(天之道)에 순명(順命)하는 것이라고 노자는 말했다. 

굳이 도덕경(道德經)을 들추지 않더라도, 물러날 때를 놓치면 사람은 추해지는 법이다.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에는 무리수가 따른다. 아름다운 퇴장이 오히려 빛을 발할 수도 있다. 

“박수받을 때 떠나는 아름다운 전통을 만들고자 했다”

강 의원 말마따나, 제주에는 그런 전통이 형성되지 않았다. 스스로 내려놓는 법이 거의 없었다.

2000년대 들어 현역 의원이 출마 자체를 안한 것은 6선을 지낸 고(故) 양정규 의원이 아마 유일할 것이다. 대부분은 당내 경선 혹은 본선에서 분루를 삼키거나, 법적인 문제로 발목이 잡힌 경우였다. 

더구나 강 의원은 제주 최초 4연속 당선의 주인공이다. 그 기록을 ‘5’로 늘릴 기회를 포기했다는 점에서 또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특정 정치인에 대한 품평(?)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도 이러한 지역 정치사와 맞닿아 있어서다. 

그렇다고 공과(功過)를 덮고 갈 수는 없다. 미래의 선량들은 그 선배들을 넘어서야 정치 발전을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가지씩만 든다면, 공은 4.3 해결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뛰었다는 점이다. 4.3은 원래 그의 전공이기도 했다. 4.3특별법이 제정되고, 진상조사보고서가 채택되고,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첫 번째 사과(2003년)가 이뤄질 당시 강 의원은 제주4.3연구소 소장이었다. 이를 발판으로 이듬해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여의도에 처음 입성할 수 있었다. 물론 탄핵 역풍 탓도 컸지만, 4.3 이력이 없었다면 집권여당의 후보가 될 수 없었을지 모른다. 

과로는 제2공항 등 지역 갈등 현안에서 중재자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대개 현안이라는게 정부 여당의 입장과 맞물려 있어서 운신의 폭이 좁다는 한계가 있지만, 세 명의 지역 국회의원 모두 무기력했다는게 중론이다. 강 의원은 맏형으로서 갈등 조정의 중심에 섰어야 했다.  

강 의원은 불출마 한다고 정치를 그만두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아울러 국회 밖에서 그동안의 경륜을 발휘해 문재인 정부의 성공과 정권 재창출에 힘쓰겠다고 했다. 

사실상의 정계 은퇴 선언인지, 아니면 훗날 뭔가를 또 도모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인지는 현재로선 본인 말고는 알 수 없다.   

이왕 ‘아름다운 전통’을 만들기로 했으면, 끝까지 아름답게 갔으면 좋겠다.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4.3에 천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일본에서 유학하고 한일의원연맹 회장을 지낸 일본통으로서 한-일 관계 개선에 모종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게 존경받는 원로가 절대 부족한 제주 사회에서 참 원로로 남는 길이 아닌가 싶다. <논설주간 / 상임이사>

* 소리시선(視線) /  ‘소리시선’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편집자]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